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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책

패니 힐 Fanny Hill

Escaper 2020. 1. 16.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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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748년에 출간된 소설. 영국 작가 John Cleland이 40세에 완성.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eBook으로만 만날 수 있다.

이 책이 문학으로 읽히면 성인이요, 포르노로 읽히면 아직은 '애'이니라.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인공인 여성의 성 경험을 남성 작가가 묘사했다는 것. 작가가 여성이었으면 더 생생했을 듯.

아래는 책소개와 출판사 서평.


 

책소개

“진실,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진실”
영문학사에서 가장 에로틱한 소설’,
‘18세기 에로티시즘 문학의 고전’,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악명 높고 가장 많이 읽힌 포르노그래피 소설’

1748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되지만 음란하다는 이유로 판매금지되어 무려 215년 동안 지하 세계에서 해적판 형태로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해 온 소설이다. 이후 1963년에 미국에서 또다시 정식 출간되어, 3년 동안의 유명한 외설논쟁을 거쳐 1966년에 비로소 판매가 허용된다. 현재는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펴내는 세계문학 전집과 펭귄 클래식 시리즈에 포함되는 등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인간의 은밀한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노골적으로 까발린 소설이지만, 고도의 비유와 상징을 총동원하여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을 피하면서 천박하지 않은 에로틱 문학의 대표작이 되었다. 이 책의 한국어판은 1965년 신아문화사에서 처음 나온 이후 1999년 두 출판사에서 번역된 바 있지만, 현재는 모두 절판되었고, 그마저도 축약본 형태이거나 번영의 질이 좋지 않았다. 이번에 전문을 완역하여 전자책으로 새롭게 펴내게 되었다. 문학작품에 검열을 없애는 단초를 제공한 그 유명한 소설을 지금 만나보자.


출판사 서평

<패니 힐>은 영국의 소설가 존 클레랜드(John Cleland, 1709~1789)가 그의 나이 40세 때 출간한 소설로, ‘영문학사에서 가장 에로틱한 소설’, ‘18세기 에로티시즘 문학의 고전’,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악명 높고 가장 많이 읽힌 포르노그래피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시골 출신의 15세 고아 소녀가 런던으로 가서 매춘부가 되어 몸을 팔아 돈을 벌다가, 처음 관계를 맺고 사랑하게 된 남자와 결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 성적인 묘사가 주를 이룬다.

저자인 클레랜드는 학교를 중퇴하고 동인도회사에 입사하여 12년 동안 인도에 머물게 되는데, 그때 한 친구가 ‘성기’를 직접 지칭하는 음란한 단어를 쓰지 않고 매춘부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겠느냐는 도전을 받고 이 작품의 초고를 썼다고 전해진다. 그 후 영국으로 돌아와 부채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랠프 그리피스(Ralph Griffith)라는 출판업자의 요청(20기니를 받았다고 전해진다.)을 받고 인도에서 썼던 초고를 재집필하여 ‘쾌락에 관한 한 여인의 회상’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된다.

‘진실,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난교, 여성끼리의 섹스, 자위, 마조히즘, 복장 도착, 남성 간의 성행위를 담고 있어, 출간 즉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지만, 곧바로 판매 금지된다. 그런데 1749년 당시 판매 금지 처분을 내린 추밀원은 그에게 오히려 음란서적을 쓰지 않는 조건으로 연금 100파운드를 지급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그런 음란한 소설을 썼다고 판단하여 내린 결정이지만, 작가로서 지닌 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은 아닐까?

당시 판매를 금지했던 한 주교는 ‘내가 지금까지 본 책 중에서 가장 음란한 책’이라고 비난했는데, 그 이유 때문인지 이 책은 1963년 미국에서 정식 출간되기 전까지 무려 215년 동안 해적판 형태로 지하 세계를 떠돌게 된다. 클레랜드가 작품에서 말했던 것처럼 ‘세련된 취향을 가진 훌륭한 분들도 비록 저속한 편견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누드화나 나체 조각상이 자기 집 계단이나 응접실에는 맞지 않는 장식품이라고 여기면서도, 자기 개인 밀실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놓아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200년 동안 <패니 힐>은 초기에 불어로도 번역되고, 종종 노골적인 삽화가 들어간 책으로 나돌기도 했는데, 1786년 초 미국의 한 인쇄업자가 영국인 판매상한테 해적판을 사들여 미국에 소개하면서 영어로 된 20개의 판본이 존재할 만큼 지하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계속 유지한다. 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은밀히 주고받으며, 또 소장가가 서가 뒤에 비밀스럽게 소장하면서 계속 유통되는데,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나 19세기 대통령 후보였던 사무엘 틸던(Samuel J. Tilden) 등도 복사본을 소유했다고 전해진다.

첫 출간 이후 무려 215년 뒤인 1963년 미국에서 출판업자인 퍼트남(G.P. Putnam)의 아들에 의해 정식 출간(초판본으로 무려 3만 부를 찍었다고 한다.)된다. 그런데 한 여인이 10대인 자기 아들이 포르노그래픽 소설을 샀다고 화를 내며 매사추세츠 주의 ‘외설문학 감시 위원회(Obscene Literature Control Commission)’에 고발하면서 또다시 판매 금지 처분을 받게 된다. 그 뒤로 퍼트남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 작품은 1966년까지 미국에서 검열과 음란물의 정의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이 작품이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 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을 만한 작품이냐는 것이 논란거리였다. 지금도 음란성을 판단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데 당시에는 더욱 그랬다. 1964년 미국 연방 대법관이었던 포터 스튜어트는 ‘나는 외설에 대한 정의를 내릴 생각도 없으며 그것이 지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보면 안다.’라는 말을 통해 그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토로한 바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1) 성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2) 명백하게 역겨운 것이어야 하며 3) 사회적인 가치가 전혀 없는 것임을 입증해야만 수정 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음란물로 인정했는데, 패니 힐은 1)과 2)에는 해당하지만 3)에 해당하는 것을 입증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해서 이 작품은 1966년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6대3으로 승소하게 되면서 비로소 지하 세계에서 주류 문단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 작품의 의미는 단순히 탁월한 비유와 묘사로 터부시 되었던 금기를 깨뜨렸다는 것에 있지 않다. 2012년 존 클레랜드의 자서전을 쓴 그래드필더(Gladfelder) 교수는 이 결정에 대해 ‘어떤 사람은 좋게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나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일종의 수문을 여는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재판 이후 문학작품에 대해 검열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수많은 ‘야한’ 작품들이 봇물 터지듯 출간되었다.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만, 미국에서 더 이상 문학작품에 대해 검열하지 않게 된 것은 바로 이 작품 때문이었다.

이 책의 한국어판은 지금까지 세 종류가 있었다. 1965년 신아문화사에서 처음 나왔고, 1996년 새론문화사에서 최초의 완역본이 나왔고, 1999년 예림미디어에서 축약본이 나왔다. 세 판본을 모두 검토해본 결과, 신아문화사는 일본어 중역의 성격이 짙고, 아무래도 당시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야한(?) 내용은 모두 삭제된 채 발행되었다. 반면 새론문화사에서 나온 것은 완역본이지만 직역으로 인해 번역의 질이 좋지 않았고, 예림미디어에서 나온 것은 셋 중에 가장 매끄러운 번역이긴 하지만, 중간 과정을 생략해서 한마디로 단순한 ‘야설’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을 다시 출간하게 된 것이다.

처음 출간된 이후 2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책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그리고 아직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성애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을 해방으로 여기는 사람들과 그건 단지 남자들의 성적 만족을 위한 원시적인 수단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는 사람들로 나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랜 시간 살아남아 지금은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펴내는 세계 문학 전집이나 펭귄 클래식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다. 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 작품은 아주 노골적인 성애 장면만 다루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더럽다거나 불쾌하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는다. 이처럼 인간의 은밀한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노골적으로 까발린 소설이 천박해지지 않고 긴 생명력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영문학자들은 이 작품을 단순한 저질 도색소설이 아니라 에로틱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하는데,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노골적이면서도 노골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노골적인 장면을 묘사하고 있지만, 고도의 비유와 상징을 총동원하여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단순한 ‘야설’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독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250년이라는 시간을 지하 세계에서도 굳건히 버텼고, 지금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것이 사회, 문화, 문학적인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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