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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3 00:22:30
우리집 현관은 항상 흙투성이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들어오는 길에 그 흔한 블록이라도 깔아볼 만한데 바쁜 일상을 핑계로 한 나의 게으름 때문인지, 아니면 이곳 전원에 살면서 흙이라도 마음껏 밟아볼 욕심인지 아직껏 우리집 마당은 맨흙 그대로다.
맑은 날은 그런대로 괜찮다. 그런데 요즘처럼 눈이라도 쌓였다 녹으면 신발 밑창에 두껍게 달라붙는 진흙 때문에 가끔 난처한 경우가 있다. 올 겨울 우리집에 손님이 왔을 때 함께 온 꼬마가 새로 산 빨간 부츠에 진흙이 묻자 울상을 지으며 엄마에게 흙을 떨어달라고 떼를 쓴 적이 있다. 물론 아이 엄마는 아이의 울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집에 가서 닦아주겠노라며 아이를 달래 우리 모두 난처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 도시에서 흙을 밟아보기란 여간해서 쉬운 일은 아닌 듯싶다. 도시에 있는 우리네 아파트단지를 들여다보아도 회색 주차장 일색과 각양각색의 깔끔하게 단장된 보도며 집 앞 골목길까지 평평하게 깔린 아스팔트길이 우리에게서 흙냄새를 잊게 한다. 그러기에 어느덧 흙은 지저분하고 귀찮은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나마 요즘 다행히도 물이 스며들지 않는 도시의 도로포장으로 인한 열섬현상이나 도시홍수 등의 문제점들이 거론되면서 일부 주차장을 잔디주차장으로 조성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우리네 주거공간에서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주차장만이라도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푸른 잔디 주차장으로 만드는 것이 도시속 땅에 숨통을 터 주는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서울시에서도 토양포장 제한에 관한 조례를 수립 중에 있다고 하니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지구는 반지름이 약 6000㎞에 이르지만 그 가장 거죽에 10~30㎝ 두께로 깔린 토양은 부식질을 함유하고 있어 먹이사슬의 1차 생산자인 식물을 위해 자양분을 공급해주는 기초가 된다. 또한 그 위에 떨어지는 낙엽은 토양속 미생물이나 곤충, 벌레 등에 의해서 식물과 결합할 수 있는 형태의 미네랄 자양분으로 변화한다. 이렇듯 건강하고 성숙한 토양은 기후적 보호 구실뿐 아니라 장소에 따라서 부식질 형성을 활성화시켜주기도 하는데, 뿌리가 뻗어 있는 지면층에는 성숙하지 않은 토양에 비해 40배 이상의 많은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모든 생명체의 기반인 땅이 숨 쉬어야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우리들도 건강하게 숨쉬고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내의 볼멘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여전히 아이들은 신발 바닥에 신발보다 더 두꺼운 진흙덩이를 달고 당당히 현관을 들어선다.
이태구/세명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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