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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0. 08:06:44
농촌이다보니 우리집 마당 한켠에는 실외화장실이 하나 있다. 이 집 주인도 농사를 짓지 않은 터라 땅속에 탱크만 묻고 위는 슬래브를 친 상태여서 겉으로 보기엔 창고 같다. 지난봄 이사 와서 집수리를 하면서 이곳 지하탱크를 빗물탱크로 사용하려고 화장실과 마당의 수도에 관을 연결하여 수도꼭지를 달았다. 이른바 빗물이용시설을 설치한 것이다. 펌프와 지붕에서 내려오는 처마홈통을 탱크까지 연결하는 비용과 탱크에서 화장실로 연결하는 관로 등을 합하여 약 50만원 정도 들였으니 꽤 경제적으로 설치한 셈이다.
집에 빗물이용시설을 하게 된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어린시절 비만 오면 처마 끝에 양동이들을 놓아두고 빗물을 받으셨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비 갠 뒤, 모아두었던 빗물로 이불 호청을 하얗게 빨아 널던 어머니의 모습과, 그뒤 독일 유학 시절 여러 생태단지를 돌아보면서 그네들 마당 한켠에 어김없이 놓여 있던 나무물동이를 기억한다. 아주 작은 시작이지만 그 속에는 물을 아끼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가정집에서 세탁·화장실·세차에 수돗물의 약 50%를 사용한다고 한다. 특별히 이러한 용도의 물은 빗물을 모아서 사용한다면 많은 양의 수돗물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도시에서 빗물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빗물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과 이를 고려한 저장조의 용량 등 세심한 주의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개발되고 있는 기술로 충분하며, 또 다행히 빗물이용에 대한 인식 확산을 위해 여러 연구프로젝트나 사회운동이 함께 병행하니 빗물이용이 그리 먼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집의 화장실 정화조가 빗물탱크로 변신한 것은 작은 의미에서의 프런티어 사업이다. 내년 여름 마당 한 가득 자라는 고추며 방울토마토에 싱그러이 빗물을 뿌리며 장난치는 아이들을 그려본다.
이태구/세명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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