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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에 신경을 쓰며 먹는 스테이크는 맛도 없고 몸에도 좋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벌레 먹고 볼품없는 채소나 과일도 그것이 유기농산물이라면 상쾌한 기분에 맛까지 좋게 느껴질 것이다. 막 주말농장에서 솎아낸 상추를 씻어, 그 자리에서 구운 삼겹살을 한번 싸먹어보라. 주말농장을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 맛’을 못 잊어 해마다 농장을 다시 찾는지도 모른다.

주말농장에서 재배한 채소는 얼마나 안전할까? 농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농장에서는 봄농사를 준비하기 전 관리인이 토양살충제를 한 차례 뿌린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작물이 자라는 동안 농장 관리인이 잘 자라라고 몰래 농약을 친다”고도 말하는데, 억측 같다. 화학비료를 밑거름으로 쓰지 않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농장 한쪽에 밭에서 뽑아낸 풀 따위를 모아 버리는 곳이 있는데, 관리인은 거기에서 만들어진 퇴비를 이듬해 봄에 밭에 넣고 써레질을 한 뒤 땅을 구획짓는다.

지난해 봄농사를 지을 때는 땅이 매우 거름지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작물이 아주 잘 자랐다. 열매채소들이 병에 걸렸지만 거름 부족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데 가을이 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배추농사를 짓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학비료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비료 색깔과 모양으로 보아 어떤 밭엔 순질소질 비료, 어떤 밭엔 복합비료(질소·인산·칼륨 성분을 혼합한 비료)가 뿌려져 있었다.

왜 화학비료를 쓰는 것일까 의아했는데, 곧 의문이 풀렸다. 비료를 쓴 밭의 배추는 우리 밭의 배추와 크기부터가 달랐다. 나는 배추를 심기 전 유기질 비료를 한 포대 밭에 뿌렸다.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배추는 속이 제대로 차지 못해 마치 반결구배추(속이 반만 차는 배추) 품종을 심은 것처럼 보였다. 크기도 다른 밭 것의 절반에 불과했다. 수십년 농사를 지은 아버지는 “비료를 주지 않고 기른 배추는 질겨서 못 먹는다”고 충고하셨다. 고집대로 그냥 길러 김장까지 하긴 했지만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옛날 화학비료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배추농사를 지었을까? 어릴 적 배추밭에서는 늘 똥 냄새가 났다. 잎채소에는 질소 성분이 가장 많이 필요한데, 썩은 인분뇨는 가장 구하기 쉬운 천연 질소 거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키운 배추를 날로 먹고 얼굴이 퉁퉁 붓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배추는 그만큼 재배가 어려워서 많이 심지도 않았고, 김장을 할 때도 배추보다는 무 김치를 훨씬 많이 담갔다고 한다. 화학비료 사용이 일반화되기 전 배추김치는 남자들의 밥상에만 올랐다고 기억하는 노인들도 있다.

‘금비’라고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예전에는 화학비료값이 비쌌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도 우리는 방학숙제로 퇴비를 내야 했다. 화학비료는 식물의 생장에 꼭 필요하지만 땅에는 부족한 성분을 인공으로 만든 것이다. 그것으로 키운 농작물이라고 해서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땅과 물을 오염시키고 땅힘을 떨어뜨린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 10배나 화학비료를 많이 쓴다고 한다. 화학비료를 안 쓰고도 배추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올해는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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