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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세상만사를 이분법으로 보는 어떤 내 친구는 나와 같은 세대를 “중고등학교에서 <농업>을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도시에서 자란 이들이야 <공업>이나 <상업>을 배웠지 <농업>을 배웠을 리 없다. 의대생이 농대로 옮겼다고 해서 신문에 나고, 농업고등학교라곤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요즘 기준으로 보면, <농업> 과목을 배웠다는 것보다 더 딱 떨어지는 촌놈의 증거가 있을까 싶다.
물론 학교 공부란 게 삶의 현장에서는 별 쓸모가 없는 경우가 많다. 시클라멘, 피튜니어, 베고니아같은 서양의 식물 이름을 시험 때문에 열심히 외우기는 했으나, 내가 그 식물들의 생김새를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내가 다른 식물에 대해 아는 것도 대부분은 학교 공부 덕이라기보다는 아버지 밑에서 농사 실습(?)을 하면서 배운 것들이다. 그래도 감자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론과 실습을 두루 갖춘 편이다. 감자는 심는 철에 따라 봄감자 가을감자로 나뉘는데, 일정 기간 휴면기가 있다. 그래서 가을감자를 캐서 ‘휴면타파’를 하지 않고 바로 겨울 하우스에 심으면 제대로 싹이 트지 않는다. 싹트지 않은 상태로 감자를 저장할 수 있는 것도 휴면기 덕분이다.
강원도 고랭지에서는 5월은 넘어야 감자를 심는다. 내 고향 전라도에서는 어미닭이 막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들을 거느리고 마늘밭에 산책을 다니는, 아직 찬기운이 조금 남은 이른 봄에 감자를 심었다. 그래서 감자라면 당연히 ‘하지’감자였다. 중부지방에 있는 우리 주말농장에서는 3월 마지막주 주말에 감자를 심으라는 연락이 왔다. 모두가 한꺼번에 심어야 관리인이 씨감자를 준비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서는 처음 심는 식물이라, 구획 지어진 터의 흙덩이를 괭이와 쇠갈퀴를 이용해 가늘게 부수어 밭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씨감자를 작은 것은 두 조각, 큰 것은 서너 조각으로 잘라 10cm 깊이로 땅을 파고 묻으니, 감자심기가 간단히 끝났다.
이것도 <농업> 시간에 배운 것인데, 같은 땅속식물이긴 하지만 고구마는 덩이뿌리(근경)이고 감자는 덩이줄기(괴경)다. 고구마는 뿌리가 부푼 것인데, 감자는 땅속줄기가 위로 솟아오르면서 거기에 감자가 달린다. 따라서 감자는 북을 주어야 한다. 앞으로 두어번 북만 주면 특별한 관리가 없어도 100일 뒤에는 감자를 캘 수 있다. 그날, 우리 식구는 단순히 몇알 감자가 아니라 땅 속 보물을 캐게 되겠지.
육식으로 산성화되는 몸을 중화시키는 알카리성 음식이라고 해서, 요즘은 감자가 스테이크에 딸려 나오는 필수품이 돼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감자는 가난한 자들의 음식이었다. 19세기 초, 전농지의 40%에 감자를 심고, 국민의 절반이 감자만 먹고살던 아일랜드에서는 1830년대부터 감자에 병이 들어 흉작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1840년대 중반까지 100만명이 굶주려 죽고 300만명이 이민을 떠나야 하는 대참극이 빚어졌다. 그 무렵 영국인들은 아일랜드의 ‘감자기근’을 나몰라라 했는데, 아일랜드인들은 지금도 그 일로 영국인들에게 원한을 갖고 있다고 한다. 감자를 심으며, 아직도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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