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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짜쿵] 나의 '첫 경험'
2004.6.29.화요일
딴지 섹스 칼럼
나는 올해 스물 아홉 살 먹은 여자다. 맞다. '아무것도 몰라요'하면서 내숭을 까기에는 너무 먹어버린 나이이다. 그나마 육개월 앞으로 다가온 서른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무척 평범하다. 그럭저럭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았으며 몇 번의 이직 끝에 현재의 회사에 자리를 잡았다. 미스 리 혹은 미스 박으로 불릴 만한 위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아래에 직원들을 쫙 거느리고 있는 커리어 우먼도 아니다. 매달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적금이며 생활비를 쪼개어 생활하느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며 여가 시간에는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본다. 사귀는 남자는 없으며 따라서 당분간은 결혼 계획도 없다. 나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여자이며 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여자다.
처음 섹스 칼럼을 쓰리라는 결정을 내렸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무슨 밤의 여왕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밤의 황제를 만나본 것도 아닌데 과연 그런 걸 쓰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섹스는 밤의 여왕이나 황제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누구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기로 했다. 평범한 여자의 평범한 섹스 칼럼. 꼭 누구처럼 뉴욕에 살고 바이브레이터를 열심히 고르고 게이 친구가 있어야만 섹스 칼럼을 쓸 자격이 주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주 야한 섹스 테크닉을 전수해 줄 것이란 기대는 말자. 나는 테크닉이라는 걸 잘 알지도 못하며 포르노에서 본 기술들을 어설프게 써먹는 남자들을 좋아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다만 대한민국의 평범한 미혼 여성인 내가 알고 느끼는 섹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이며 따라서 이 글은 보편적이 아닌 아주 개인적인 형태의 섹스 칼럼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이라는 것에 대단히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눈도 첫 눈 사랑도 첫 사랑 키스도 첫 키스. 그 중에서도 처음의 하이라이트는 아마 첫 경험 일 것이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남자들의 첫 경험 상대로는 누나들이 가장 많았고 여자들의 첫 경험 상대는 단연 '오빠 믿지?'라는 멘트를 휘날리는 오빠들이다(오빠들에 의해 첫 경험을 한 여자들은 누군가에게 누나가 되어 첫 경험을 하게 해 주는 것이다).
호적상으로는 처녀지만 생물학적 의미(처녀막의 존재 유무)에서는 처녀가 아닌 나 역시도 첫 경험이 있다. 다만 오빠의 손에 이끌려서 지저분한 골목 안에 있는 여관에서 첫 경험을 치른 다음 질질 짜면서 '나 정말 사랑하는 거 맞지?' 혹은 '오빠 나 책임져야 해'라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섹스를 하기 훨씬 이전부터 섹스에 대해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성교를 하는 생명체 중에서 생식이 아닌 다른 이유로 섹스가 가능한 유일한 동물이 인간인 만큼 나는 섹스가 즐길 수 있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즐기려면 거기다가 사랑같은 무거운 돌덩이를 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잡은 첫 경험의 디데이는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일단은 섹스 상대를 물색해야 하므로 시간이 충분한 방학 기간으로 잡았으며 대학교 2학년인 이유는 그냥 스무살이 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다는 건 좀 촌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드디어 2학년 여름방학이 되고 나는 나의 첫 경험을 함께 할 근사한 파트너를 찾았다. 당시 나는 학교 근처에 있는 원룸에서 자취를 했었는데 그 건물에는 우리학교 학생들이 대거 포진 해 있었었다. 그 중에서 나와 친한 무리들이 몇몇 있었는데 마침 지방에서 안군이 자기가 아는 남자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사진을 보니 키도 크고 약간 마른형에다 얼굴도 잘 생겨서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 날 이후 며칠 간의 전화통화로 약간 친해진 녀석은 드디어 몸이 달아서 서울로 상경했고 난 그 녀석의 사진보다 훨씬 근사한 외모에 무척이나 흡족스러웠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녀석은 키아누 리브스를 좀 닮은 듯 했는데 아무래도 첫 경험이 그녀석이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스크린에서 키아누 리브스를 볼 때면 살짝 흥분이 된다.
아무튼 방학이라 친구를 만나러 온 녀석은 나를 소개받아서 겸사겸사 며칠은 개기다가 갈 모양이었고 급할 게 없었던 나는 천천히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늘 셋이서 놀다가 어느 날 안군이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고 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녀석을 내 집으로 끌어들였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옷 중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까만 슬리브 원피스를 입고 빨간 매니큐어까지 바른 나는 연신 녀석에게 눈웃음을 치며 술을 권했다. 소주에서 맥주로 다시 양주에서 맥주까지 마시자 내 예상대로 녀석은 완전히 맛이 갔다. 술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만큼 쌘데다가 거사를 앞둔 나는 거의 취하질 않았고 슬슬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순간이 왔음을 느꼈다.
나는 녀석과 함께 침대까지 가는 것에는 성공을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녀석이 나에게 처음이냐는 질문을 한 것이었다. 어설프게 거짓말을 했다가는 어차피 하는 도중 다 뽀록이 날 것 같아서 나는 처음이라고 솔직하게 말을 했다. 그러자 아까까지만 해도 순순히 침대로 와서 나를 안고 키스까지 했던 녀석의 태도가 돌변했다. 태도가 돌변한 이유는 첫 경험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속으로는 기가 막혔지만 나는 계속 괜찮다고 했다. 나는 사랑 같은 건 믿지도 않고 하고싶지도 않다는 말까지 했으나 녀석은 쉽사리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정도로 쉽사리 물러 설 것이라면 몇 번씩이나 실패를 해서 다시 바른 빨간 매니큐어가 아깝고 여태까지 퍼 마신 술이 억울했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녀석의 옷을 벗겼고 잔뜩 흥분해 있던 녀석의 본능은 이성을 눌렀다.
첫 경험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다시는 이 짓을 하면 성을 간다' 싶을 정도로 아팠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해야 이걸 하면서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눈을 까뒤집고 에로틱한 신음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는 이게 좋아지는 순간이 오기는 올 것일까?
여자들은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 많은 경험을 하기 전에는 서로의 성생활에 대해 일체 얘기를 하지 않는다. 누구와 잤다는 둥 얼마나 좋았다는 둥 하는 건 내 나이가 되어서도 하기 힘든 얘기들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첫 경험이 이렇게 아프고 별로라는 것을 아무도 말 해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섹스가 그렇게 아프다는 것에 상당히 놀랐었다. 내가 알고 있던 섹스는 전부 영화 혹은 TV에서 보던 게 전부였고 그 안에 있는 여자들은 남자가 그저 귓가에 휙 하고 바람만 불어도 쓰러졌으며 삽입이 시작되고부터는 거의 너무 좋아서 정신이 나가버렸다는 듯이 소리를 질러댔지 아무도 이렇게 아프고 또 삽입 자체가 힘들다는 것은 보여주지 않았었다.
지금와서 생각을 해 봐도 나는 나의 첫 경험을 이렇게 내가 능동적으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 백 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첫 경험을 했더라면(대학교 1학년 때 실제로 그럴 기회가 있었으나 나는 거부했었다. 그를 무척 좋아하는 상황에서 거부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섹스라는 것을 무척 무겁고 심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직도 세상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순결, 즉 처녀막을 가져다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첫 사랑에게 순결을 바친 그녀가 과연 섹스 그 자체로 행복해지는 날이 빨리 올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있어 섹스는 사랑의 또 다른 언어이며 표현이자 행동이지 기쁨과 쾌락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도 좋지만 가끔은 사랑이 없이도 가능한 것이 섹스이다. 꼭 육체적인 쾌락과 정신을 결부시킬 필요는 없다. 음식을 먹으며 정신적인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듯 나는 섹스를 다른 무언가를 위한 목적으로서의 수단으로 이용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나를 사랑하게 하기 위해 혹은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하는 섹스는 아무런 의미도 기쁨도 주지 못한다.
실제로 나는 내 주변의 많은 여성들이 섹스를 단지 섹스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많이 봤다. 그게 사랑이건 돈이건 나는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남자와 섹스를 했기 때문에 그 남자는 내 것이 되어야 하며 다른 여자를 만나서도 안되고 나만을 바라봐야 한다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섹스는 섹스가 아니다. 섹스는 단지 섹스일 뿐이지 섹스의 이후는 없다. 섹스는 그 차제로 충분한 것이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나가는 다리도, 통과해야 하는 터널도 아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하자고 하니까 혹은 이 남자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는 원 나잇 스탠드를 위해 남자를 꼬셔서 침대에 눕는 여자보다 초라하다.
나는 발정 난 암코양이처럼 이 남자 저 남자 옮겨다니는 걸레가 아니라 다만 초라하고 싶지 않다. 내가 섹스를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섹스를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이다. 섹스를 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내 것이 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또 상대방이 나에게 책임감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왜냐면 나 역시 섹스를 했다고 해서 내가 상대방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책임감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딴지칼럼 도라짱(niflhe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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