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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을 캐다

Escaper 2023. 2. 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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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삐둘키가 무엇인지 아는가? 밭에 내다심은 콩이나 땅콩 씨앗이 막 싹을 틔울 무렵, 씨앗을 파먹고 온통 헤집어놓는 산비둘기를 내 고향마을에서 부르는 말이다. 마음이 삐뚤어져 ‘삐둘키’라 한단다. 우리가 대상에 부여하는 이름엔 이렇게 느낌이 실려 있다. 알량한 농사지만 주말농장을 하다보니 ‘비가 온다’ 하지 않고, ‘비가 오신다’고 하는 뜻을 이제 알것 같다. 지난주 두어 차례 내린 비로 씨앗들이 파랗게 싹을 틔웠다. 열무는 제법 무,성해졌고, 상추와 쑥갓 그리고 나팔꽃 씨앗도 떡잎이 벌어졌다. 감자도 싹이 올랐다.

주말농장에 특별히 관리할 것이 없어, 지난 일요일엔 산나물을 뜯으러 갔다. 농업협동조합이 주최하는 농촌마을체험 행사에 참가한 것이다. 어린이는 참가할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가족모임이나 동호인 모임이 단체로 참가한다면 가능하다기에 주변의 아는 사람을 총동원했다.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가족들이 주축이 되고 옆집 정원이네, 고양숲사랑 회원들, 그 밖에 알고 지내는 출판사 식구들 3명까지 포함해 어렵사리 단체 요건이 되는 30명을 채웠다.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구병리 마을까지는 버스로 4시간이나 걸렸다. 구병리의 산나물캐기 행사는 올해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두 번째 손님이었다. 그러다보니 어설픈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애초 우리가 가게 돼 있던 곳도 제천쪽이었는데, 아직 산나물이 올라오지 않아 급히 행사장소를 바꾸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도 산나물엔 워낙 초보자라서 별 불만은 없었다.

산나물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드디어 산행이 시작됐다. 이장님에 의해 갑작스레 불려나온 백운산장 아저씨가 우리를 안내했다. 참가자의 절반이 어린이들이라 산 속으로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우리는 그저 길가에서 뜯을 수 있는 산나물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것은 산나물이라고 해서 특별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짚신나물은 도시의 공터에서도 자주 볼 수 있던 것이다. 강원도에서는 망개나무, 경상·전라도에서는 명감나무라고도 부르는 청미래덩굴의 새순, 광대싸리와 다래, 둥굴레의 새순도 다 산나물의 목록에 있었다. 사실 야생의 취나물을 뜯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입이 벌어졌다. 농협쪽이 나눠준 장바구니는 우리가 뜯은 산나물에 비해 너무 컸다. 그러나 으름덩굴의 꽃과 그 은은한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어른들은 즐거웠고, 아이들은 개울 속 무당개구리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참가 가족들에게 빠짐없이 나눠준 선물과 메밀부침개 안주에 넘치도록 내놓은 옥수수 막걸리. 손두부를 만드시던 한 아주머니는 우리가 산나물 캐기에 쫓겨 두부 만드는 것을 구경하지 못하자 몹시 서운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산에서 내려오자 모두에게 두부 한모와 비지를 직접 퍼담아주셨는데, 또 오라고 몇번이라 손을 잡았다. 행사 참가비는 교통비까지 포함해 1인당 1만5천원이었다. 혹 적자는 아니었을까? 돌아오는 동안 우리는 내내 구병리 마을 사람들의 정에 취해 있었다. 한때는 모든 이들이 갖고 있었을 그 따뜻한 마음은 분명 ‘흙’에서 나온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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