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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책

오직 독서뿐

Escaper 2025. 11. 1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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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오직 독서뿐! 온 세상이 책을 멀리하는데 오직 독서뿐이라니, 무슨 말인가? 아이들은 글자를 익히고 사물을 인지하기도 전에 게임기를 놀리는 재간부터 배운다. 글도 기계 장치로 배우고, 생각도 기계에 의존한다. 버튼만 누르면 답이 바로 나온다. 서랍에 넣어 두었다 꺼내는 것처럼 없는 것이 없고 못할 일이 없다. 반응 속도를 얼마나 단축하는가가 기업들의 지상 과제다. 삶의 속도는 날로 가파르게 빨라진다. 행복지수도 그러한가?

순간을 못 참아 하루가 멀다 하고 잔혹한 범죄가 사회면을 장식한다. 멀쩡하던 사람이 획 돌면 짐승처럼 변한다. 내면은 갈수록 황폐해져서, 약물에 의존하는 삶이 부쩍 늘었다. 꾸준히 오래 해서 얻어지는 것들에 대한 신뢰는 이미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남 탓, 세상 탓만 한다. 어째서 그런가?

삶은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는데, 속도만 가파르게 빨라지니 생각할 틈이 없다. 원하는 반응이 즉각 나오지 않으면 그 잠깐을 견디지 못한다. 진득함은 사라지고 경박함이 춤춘다. 떠멱여 주기만 바라고, 스스로 곱씹어 소화할 생각은 없다. 이런 반복 속에서 삶은 공허하고 허황하다. 젊은이는 빨리 가려고만 하지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늙은이는 퇴직 후의 수십 년 앞에 막막하고 망망하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제 삶을 해쳐 남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제껏 우리는 바쁘기만 했지 한 번도 스스로를 돌아본 적이 없다. 

이제 일상은 비탈길을 굴러 내려오는 수레와 같다. 속도를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한다. 어떻게는 충돌 없이 평지까지 도달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세우려 들면 그 순간에 뒤집어지고 만다. 삶은 그래서 요행의 연속이다. 운 좋게 성공해도 한순간에 어찌 될지 알 수 없어 불안하다. 세상은 무섭지 않은데, 나와 맞대면하는 것이 두렵다. 화려한 스펙도, 남이 선망하는 학력도 내 자신 앞에서는 안 통한다. 맛난 음식을 탐하는 사이, 혈관이 막히고 소화기관에 깊은 병이 들었다. 차를 타고 더 빨리 더 빨리 하는 동안 근육이 굳어 제 발로는 걷지도 못하게 되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처방은 무엇인가? 오직 독서뿐! 책 읽기를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 책만 읽으면 될까? 된다. 어떻게? 그 대답은 옛 선인들이 이미 친절하게 다 말해 두었다. 왜 읽고, 어떻게 읽고, 무엇을 읽을까? 여기에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이 책은 허균, 이익, 양응수, 안정복,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홍석주, 홍길주 등 아홉 분 선인의 글속에서 독서에 관한 글을 추려 내 옮긴이의 생각을 덧붙인 것이다.

모아 놓고 읽으니 반복되는 얘기가 있다. 소리 내서 읽는 낭동의 위력, 정독의 한 방편으로 권장되는 다독의 효과, 의심과 의문을 통해 확장되는 생산적 독서 훈련 등이 그것이다. 한결같이 강조하고, 예외 없이 중시했다.

각 사람마다 개성적 시각도 보인다. 허균의 글은 중국 명대의 청언淸言에서 골라낸 내용이다. 문인의 아취雅趣가 느껴진다. 양응수의 글은 『성리대전性理大全』에서 독서에 관한 격언만 골라서 편집했다. 책 읽는 자세를 다잡게 만든다. 이익의 글은 독서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과 위험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안정복의 글은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예시가 실감난다. 홍대용은 독서의 단계를 꼼꼼하게 설정해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박지원의 글은 맛난 비유와 핵심을 찌르는 가르침으로 가득하다. 이덕무는 따뜻하면서 엄격하고, 친절하지만 매섭다. 그는 특히 어린이 독서에 관심이 많았다. 홍석주의 글은 묵직한 깊이가 있다. 공부하는 사람이 새겨 명심해야 할 말이 많다. 홍길주는 일상의 예시를 통해 의표를 찌르는 예지가 빛난다. 이분들 말고도 많은 선현들이 독서에 관한 글을 남겼지만, 다 망라하자면 한이 없다. 다산 정약용의 독서론은 다른 책에서 이미 소개한 적이 있어 여기서는 제외했다.

독서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것이 틀림없다. 우리의 삶이 독서와 멀어질수록 더 그렇다. 도대체 책을 안 읽고 사람이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귀 밝고 눈 맑은 젊은이의 예지는 게임으로는 결코 습득되지 않는다. 빨리 가고 싶은가? 속도를 늦춰라. 서두를수록 목표에서 멀어진다. 책을 통해서만 생각은 깊어진다. 책 안에 원하는 대답이 있다. 책을 어찌 멀리할 수 있겠는가? 읽기는 또한 쓰기와 맞닿아 있다. 잘 읽어야 잘 쓴다. 잘 쓰려면 많이 읽고 제대로 읽어야 한다.

한 단락 한 단락을 날마다 세 끼 밥 먹듯 새겨, 정신의 균형과 건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013년 5월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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