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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열며
신비주의와 새로운 물리학의 결합은 인류를 새로운 길 위로 데려다놓는다.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는, 말뜻 그대로 우리의 언어 너머에 있다.
― 마이클 탤벗Michael Talbot
당신은 지금 우리가 혼란스러우면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시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곧 닥칠 지진을 감지한 동물들이 불안해하듯이, 당신도 거대한 변화의 전조를 느꼈을 것이다. 그 요동은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경험하도록 우리를 흔들고 밀어낸다. 우리는 공간적으로 분리된 견고한 육체로부터, 진동의 세계 속에서 다른 진동체들과 상호 의존하며 살아가는 에너지적 존재로 변성되고 있다.
물리적・정신적 에너지의 특성과 작용 원리 ― 주파수, 진동, 공명, 파동, 발진, 주기, 옥타브, 스펙트럼 등등 ― 에 대한 지식들은 더욱더 늘어만 간다. 우리는 의식과 에너지가 밀접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 하나가 상승하거나 하강하면, 다른 하나도 그렇게 된다. 이런 관념들이 앎과 행동, 성취를 위한 최신 기법의 핵심임을 깨닫는 약간의 도약이 이미 일어났다. 쉽게 말해서, 매 순간 당신이 몸・감정・마음 안에서 발생시키고 있는 에너지 진동 (주파수)은 이상적인 삶을 실현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높고 빠르고 선명한 진동은 운 좋고 순탄한 삶을 선물하겠지만, 낮고 느리고 혼탁한 진동은 허망하고 침울한 삶을 낳을 것이다.
주파수의 상승
우선 당신이 알아야 할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1) 당신은 정해진 단계에 따라서 진화해가고 있으며, 그 결과로 몸・감정・마음의 주파수도 상승하고 있다. (2) 주파수가 상승하면 자각의 수준도 함께 높아지므로 당신은 갈수록 더 많은 깨달음, 섬세함, 예지력, 이해심과 사랑을 갖게 된다. (3) 앞으로 몇 년간 당신은 감응력을 높이고, 내적 진동을 강화시키며, 다가올 시대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 ‘주파수 원리’를 이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나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에 민감한 사람들은 인간의 몸과 지구 자체의 주파수가 조금씩 상승하고 있음을 오래전부터 감지해왔다. 주파수의 상승은 우선 우리의 내면을 뒤흔들어 원인 모를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외부 세계를 정신없이 가속시키고 고조시켜 더욱 복잡해 보이게 만든다. 우리는 이 높은 에너지가 밀려오는 파도처럼 우리 의식을 거침없이 인식의 전환으로 이끌어갈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분리, 두려움, 에고의 수준을 벗어나 상호의존, 사랑, 영혼의 수준으로 진화할 것이고 그런 높은 주파수의 세상에서는 더욱 세련되고 효율적인 새로운 원리가 작용할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사회는 틀림없이 이런 변화를 겪는 중이고, 우리는 모든 것이 증가하는 상황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다. 감당해야 할 정보의 양도 많아지고, 업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늘어난다. 밀려드는 부정적 사건들은 이제 일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날에는 그저 중심을 잃지 않는 것만도 혹독한 과제일 수 있다! 우리는 ‘정보의 시대’를 떠나서 적어도 우리의 현실 인식을 크게 변화시킬 ‘직관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이처럼 확장된 진동 세계의 법칙들, 그리고 그것에 적합한 에너지-의식 기법들을 어떻게 배우고 발전시킬 것인가?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이 단말마의 비명만 남기고 사라지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인식과 정체성과 행동 방식을 확립할 것인가?
주파수의 부름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당신도 상승하는 삶의 주파수에 온갖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에너지를 조율하여 안정과 균형을 찾고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려는 그 노력은 유익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대단히 복잡한 이 요지경 세상 속에서 부 富를 거머쥘 건수를 정신없이 찾아 헤맬지도 모른다. 더 빠른 정보처리를 돕는 기계와 장치들, 과학기술 속에는 그 해답이 없다. 분명한 것은, ‘직관의 시대’로의 이동은 틀림없이 에너지에 대한 지식과 행동, 그리고 실용적인 감응력의 계발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인생의 발목을 잡는 허탈감을 떨쳐내고자 이 책을 집어 들었는가? 귀찮게 굴고, 시비를 걸고, 침울하고, 무감각한 사람들에게 지쳐버렸는가? 끝없는 자극들이 몰고 오는 과도한 흥분 또는 무력감을 끝장내고 싶은가? 당신의 미래, 사건과 사고, 지인들에 대한 미묘하고도 비非언어적인 정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는가? 당신은 그것들을 이해하고 싶지만 그중에 무엇이 진짜인지를 콕 집어내지 못한다.
당신은 학문, 권력, 재물을 좇는 동안 잃어버린 감각과 영성을 되찾고 싶을 수도 있다. 냉철한 태도로 사업적 성공을 이루었더라도, 이제는 전적인 쇄신과 내적 동기의 유발, 비대해진 조직의 혁신을 요구받을 것이다. 당신은 ‘끌어당김의 법칙’을 배워 새로운 길로 들어섰는가? 그리고 최신의 현실 원리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가? 원하는 삶을 창조하기 위한 의지 (will)와 믿음 (trust) 간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고 싶은가?
변화가 빠르거나 분명하지 않고 거의 제자리걸음인 듯 느껴지더라도 걱정하지 말라. 만사는 적절한 때에 이루어지고, 우리는 그 과정을 다 함께 겪고 있다. 높은 주파수의 의식에 적응하기 위한 배움은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똑똑하고 의지가 강해야 뒤떨어지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가르치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서 사랑과 협동, 자유가 보장되고 결과가 쉽게 실현되므로 중간단계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최고 주파수의 일상화
당신은 참된 자아로서의 더 높은 체험과 더 나은 삶을 가로막는 껍데기 (에고)를 혼자 힘으로 부숴버릴 수 있다. 구루 (스승)가 없어도 상관없다. 초자연적 체험 속으로 날려 보내주는 특별한 사건도 필요 없다.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초자연적, 초개아적 (transpersonal) 사건들이 평범해 보일 만큼, 당신은 현재의 육체 그대로 높은 주파수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빠져 있던 그림 조각들은 절로 당신의 의식 속으로 날아들고, 새로운 인식은 직관의 시대를 향한 ‘임계점’ 가까이로 우리 모두를 데려가는 중이다.
내가 교류하는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지상의 삶’이라는 이 놀랍고 매혹적인 꿈을 꾸어오는 한편으로 근원 (‘천상’의 경험)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 꿈에서 완전히 깨어나려면, 자신의 최고 주파수에 익숙해지고 영혼 (soul)을 일상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이 체험의 중심에는 공감과 연민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처럼 고상한 감정들은 괴로움의 유혹 *, 논리의 한계, 이 세상의 흐릿한 최면 너머로 당신을 쏘아 보낸다.
자신의 본래 모습과 일체성을 깨닫고 삶의 방식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충만한 사랑을 내 몸의 세포 속에서 느껴야 한다. 에너지 진동에 집중하여 그 속에 암호화된 심층 정보를 감지하는 것은 사랑과 영혼에 대한 확신을 갖는 가장 빠른 길이다.
[ * 인간사의 고통 그 자체를 에고가 지어낸 유혹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나온 표현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겉으로는 고통을 피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정한 행복 대신 늘 고통을 경험하는 편을 선택하고 있다. 진정한 행복을 선택하여 진리를 보게 되는 순간 지금껏 자신이 동일시해왔던 에고가 소멸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
이 책을 쓴 이유
당신을 그 마지막 장애물들 틈으로 들여보냄으로써, 확장된 자아를 실제로 경험하고 완전한 자각을 얻도록 돕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 직관의 시대에는 이런 경험이 일상이 될 것이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길을 알려주는 ‘빵 부스러기’ 같은 일련의 책과 영상물이 등장해서 이 변화의 시대를 헤쳐 나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었다. 그것들은 진보적 과학과 형이상학의 개념들을 대중화시켰고, 사람들의 마음과 상상력을 적잖이 사로잡았다. 《세스 매트리얼》, 《평화로운 전사》, 《천상의 예언》, 《직관의 길》, 《삶의 목적》, 《더 필드》, 《블립: 우리가 (삐릭) 아는 게 뭐가 있는가?》,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끌어당김의 법칙》, 《시크릿》 등이 바로 그렇다. * 이런 저술과 작품들은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용들을 감지하고 있음을 확신시켜주고, 기초적인 에너지-의식 기법들을 개발하도록 도와주었다. 한편으로는 생소함과 거부감 때문에, 그리고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논제들이 중구난방으로 소개된 탓에 많은 오해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후 지금까지 이런 정보의 양은 더욱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도대체 무엇을 또는 누구를 신뢰해야 좋을까?
나는 당신이 현 상태를 더욱 정확하고 온전하게 바라보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 책의 목적은,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변성 과정의 영향력을 당신에게 짚어주고, 이해시키고, 통합하게 하여 그 단계들을 수월하게 통과하도록 돕는 것이다. 당신은 감응력을 키워 감정의 벽을 허무는 기법들을 통해 무수히 다양한 진동 상태 속에 숨은 메시지를 해독해낼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의 영혼에 맞는, 가장 빠르고 본질적인 진동을 찾아 그것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나는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낮은 주파수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에게는 ‘건강한 감응력’을 얻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내적 진동을 조절하는 사람은 막강한 힘을 얻는다.
이 책을 최대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아래의 세 항목에 주의해주길 바란다.
[ * 순서대로 The Seth Material, The Way of the Peaceful Warrior, The Celestine Prophecy, The Intuitive Way, Your Life Purpose, The Field, What the Bleep Do We Know?, The Hidden Messages in Water, The Law of Attraction, The Secret. ]
1. 알아차리고, 행동하고, 느끼고, 성취한 것들을 기록하라.
당신의 성장 과정을 확인하는 확실한 방법은 일지를 쓰는 것이다. 당신은 이런 ‘정보체’ (body of information) 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해볼 수 있다. 이 책에는 각 장에서 제시된 개념들을 직접 실습해볼 수 있는 간단하고도 다양한 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들을 직접 해보고 그 결과를 적어보라. 당신은 어떤 통찰을 얻었는가?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놀라웠는가?
어쩌면 당신은 자신의 중심으로부터 아무런 검열 없이 자발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을 받아적는 자동기술 (direct writing)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당신 의식의 깊은 곳으로부터의 반응을 자석처럼 이끌어낼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라. 첫 단어가 찾아들게 하라. 그것이 다음 단어들을 이끌고 올 것이다.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말라. 이상한 단어가 떠올라도 그대로 기록하라. 단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그 흐름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글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예 읽어보지도 않는 것이다. 당신은 그 글의 생기와 정확함에 놀랄 것이다.
2. 속도를 늦추고, 시야를 넓히고, 집중하고, 깊숙이 느끼라.
각 장의 끝부분에는 평소의 내 머릿속 목소리가 뒤로 물러난 고요하고 높은 자각 상태에서 자동기술된 짧은 글들이 덧붙어 있다. 그것들은 내 ‘근원 주파수’ (home frequency)의 메시지이다. 그 글들을 천천히 주의 깊게 읽는다면, 또는 크게 소리를 내어 읽는다면, 당신은 색다른 운율과 진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허투루 무성의하게 읽는다면 그저 그런 글로 보이겠지만, 마치 내 몸속의 일부처럼 느껴질 만큼 속도를 늦춰 읽는다면 그것들은 확장된 차원과 새로운 현실을 열어 보일 것이다. 또는 어떤 문장이나 구절이 특히 마음에 와닿으면서 새로운 의미를 전해주기도 한다.
나는 이 영감 어린 글들이 마치 콜라주처럼 한데 모여서, 삶의 숨겨진 측면을 더 넓고 창의적으로 바라보게 돕는 일종의 시적 (poetic) 경험을 창조해내는 광경을 그려본다. 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내 내면은 존재하는 모든 세상과 차원을 넘나드는 경험이 머지않은 미래에 보편화되리라고 말하고 있다.
3. 직관을 활용하여 더 생생히 경험하라.
직관은 직접적이고 균형 잡힌 인식이다. 직관은 몸, 감정, 마음, 영혼 등으로 나뉘어 있는 당신의 의식을 통합하는 데서 비롯된다. 직관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때, 긴장 없이 깨어 있을 때, 몸과 감정의 신호와 소통할 때, 의지만으로 밀어붙이지 않을 때, 순수하게 열려 있을 때 솟아난다. 직관은 더 높은 차원의 현실을 드러내주고 신성을 더욱 확실히 경험하도록 이끄는 통로이다. 감응력을 높여갈수록, 직관은 당신이 감지한 진동의 의미를 통찰하게 해줄 것이다.
직관에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는 이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직관은 본능적인 끌림 또는 거부감 (파충류 뇌)이다. 또는 오감 五感 중 한 형태 (중뇌)이거나 복잡한 의미, 구조, 예지, 정보 패턴에 대한 번뜩이는 이해 (대뇌 신피질)일 수도 있다. 직관적 통찰은 이 책을 읽다가 잠시 멈춘 사이에 솟아 나올 수도 있다. 책 내용과 관련된 경험을 사회생활에서 하게 될 수도 있다. 직관적 깨달음은 그 정보가 당신에게 특히 생생하게 와닿게 해줄 것이다.
실로, 보이지 않는 우주가 보이는 우주보다 더 실재적이라는 관념이 노련한 과학자들에게 오늘날만큼 널리 받아들여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위대한 전통의 공통된 사상 ―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을 “물질에 스며든 영혼”이라고 불렀다 ― 을 잊지 않고 있는 선각자들에게 그것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
신비주의 철학은 빼어난 논리로 각광받고 있다. … 비물질적인 세계관, 에너지장과 파동과 마음의 영향력 등이 그러하다.
― 가이 머치Guy Murchie
감응력을 향하여
70년대 초부터 나는 직관력 향상에 힘을 쏟아왔다. 또한 마음을 다스려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도 수련해왔다. 불교도들이 ‘깨어 있기’ (skillful perception)라고 부르는 수행법 말이다. 직관의 신비를 밝히려는 나의 열정은 한 번도 시들해지지 않았다. 나는 직관을 연구하는 동안 모든 종교와 영적 전통들의 공통점을 발견했고, 삶을 순탄하게 해주는 비밀들도 많이 찾아냈다.
나는 직관력을 훈련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나의 앎이 더 포괄적으로, 또는 구체적으로, 아니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거나 해체될 필요가 있는지를 꾸준히 자문했다. 때로는 윤회와 전생 등에 대한 호기심이 ― 그것들은 몇 년간 나의 중요한 세계관이었다 ―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더 큰 무언가로 확장되는 시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전의 관심사들은 그 의미와 중요성을 잃었고 나 또한 그만큼 눈길을 덜 주게 되었다. 놀랍게도 우리는 어떤 대상을 향해 그렇게나 열광했다가 금세 확 식어버린다. 하지만 나의 경험에 의하면, 솔직하고 열린 태도를 유지하는 한 가장 정확한 것은 바로 우리의 ‘직관’이다.
그런데 그런 성찰에도 불구하고, 직관력이 향상되는 수준 이상의 단계가 찾아오거나 인간의 깊은 잠재력 속으로 이끌어줄 확실한 기법을 발견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곧 나 자신이 그동안 직관력만 키워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상담 작업을 통해서 공감 능력, 즉 에너지의 구조와 진동, 의식의 주파수, 감정-신념-의도의 혼합 패턴 등에 대한 ‘감응력’을 발달시켜왔던 것이다. 그런 자각과 함께, 나는 이 변화무쌍한 세상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예지몽과 비전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나는 진동의 가속화가 이끄는 내적 변성, 그것도 전 지구적 규모의 변성이 지난 수천 년간 유래가 없었던 일임을 직감했다.
감응력의 향상
모든 사람은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갖고 태어나지만, 그것은 훈련되거나 검증받지 못한 채로 ‘사용 보류’ 딱지가 붙어 선반 위에 처박히기 십상이다. 나의 능력이 살아남은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20대부터 직관력 전문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분명하고 객관적인 정보가 내면에서 영상과 음성을 통해 빠르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나의 직관은 더 촉각적이고 감정적인 양상으로 변했다. 그런 내적 공감을 초자연적 현상에서는 ‘감각 투시 (clairsentience)’라고 부른다. 나는 머리가 아니라 몸을 통해 사람들과 감응했고 그들을 훨씬 더 가깝게 느꼈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주파수 전환이었다.
나는 상대방의 느낌을 똑같이 경험하기 시작했다. 얼굴 한쪽을 찡그린 사람을 보면 내 얼굴도 그와 똑같이 느꼈다. 나는 몇 분 이내로 그가 무엇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가슴을 웅크리고 어깨가 굽은 여자를 마주할 때면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고, 그 슬픔과 우울함의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리딩 * 중에 상대방의 신체적 증상, 예컨대 후두염이나 삔 발목의 통증을 느끼곤 했다. 음악 애호가로부터는 음악이 들려왔고, 후각이 예민한 사람에게는 바다 냄새 또는 꽃향기가 났다. 때로는 사포 (sandpaper), 잿가루, 비단의 느낌과 비슷한 에너지의 질감도 느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상대방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감정과 같았다. 한편 나는 이런 능력이 제약으로 작용하지 않게 하는 법도 터득했는데, 원래의 내 몸과 쾌활한 천성에 집중함으로써 나는 즉시 자연스럽고 균형 잡힌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번은 어린 시절에 성적, 신체적 학대를 당했던 한 여자가 내게 상담을 받으러 온 적이 있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예민하고 퉁명스러웠다. 그녀는 가슴 위로 팔짱을 꼿꼿이 낀 채 지금 이 상황이 못마땅한 듯 행동했으며 반대편 의자에 앉아 나를 적대적으로 대했다. 나는 위협과 두려움, 분노를 느꼈지만 당시에는 그것 또한 그녀와 감응한 결과라는 사실을 자각할 만큼 노련하지 못했기에 그저 직업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리딩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방어벽들을 뚫고 들어갔을 때, 나는 학대의 경험을 발견했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얼마나 연약한지를 느꼈다. 사실 나는 몇 분 전부터 그녀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느낀 두려움, 위압감, 분노는 사실 그녀의 것이었다. 내가 그녀의 낮은 주파수에 ‘감응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겉모습 아래 감춰진 사랑을 발견했고, 그녀가 지금껏 감내해온 일들에 대한 깊은 연민에 빠졌다. 그 폐쇄성의 원인을 즉각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신체적인 교감을 넘어 감정적, 정신적 교감에 도달한 또 다른 주파수 전환이었다. 내가 느낀, 진정한 그녀 자신에 대해 말해주자 그녀는 흐느끼며 무너져 내렸다.
우리는 마치 소리굽쇠처럼 에너지를 통해 ‘접촉하고’ 있는 진동들을 복제한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가해자의 주파수에 감응하고 있었고, 나 또한 일시적으로 그런 그녀의 주파수에 감응했다. 나는 이처럼 타인의 낮은 주파수, 두려움과 불행감에서 비롯한 주파수를 받아 안을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오히려 내가 자애롭고 높은 주파수를 유지해야 상대방도 준비가 되었을 때 그런 내게 감응할 수 있다.
[ * reading: 특정인 또는 대상의 에너지(의식)에 집중하거나 접촉하여 의미 있는 정보를 읽어내는 작업. ]
삶과의 감응
내가 해온 개인 리딩과 사업 리딩의 횟수는 수만 번에 이른다. 내가 높은 주파수 상태에서 입을 열 때면 예상하지 못한 통찰들이 흘러나온다. 나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가 지금 삶 속에서 하고 있는 일들에 감사하게 된다. 나는 그의 존재 자체로 내가 큰 이로움을 얻고 있다고 느낀다. 나는 모든 사람의 삶이 우리의 집단 지성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음에 깊이 감사한다.
우리 모두는 높은 주파수에 적응해가며 초감각이라는 능력을 발달시키고 있고, 이것은 진실로 가장 정상적인 앎의 방식이다. 가족관계, 병든 화초, 공공단체, 시장 (market)의 경향 등등 그 어떤 대상이라도 감응력을 활용하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확장된 상위 진동과의 상호작용은 늘 이해와 존중과 연민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당신 또한 미지의 방식으로 타인을 이해하거나 빼어난 감응력을 통해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와 통찰들을 얻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 지구적 주파수 상승의 일면이다. 감응력이 세상을 헤쳐 나가고, 사업을 운영하고, 지혜를 성취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수단임을 나는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목표를 가진 사람은 그것에 갇히기 마련이다.
당신은 스스로 자기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 존 스펄링John Sperling
책 제목의 유래
나는 동시성 (synchronicity) 경험을 무척 사랑한다. 그런 정합 (alignment)의 경험은 흥미롭고 고무적이며, 삶 속에 작용하는 멋진 조화력에 집중하도록 나를 이끌어준다. 과학계에서는 20퍼센트 정도의 우연의 일치가 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어떤 신호나 조짐이 보일 때마다 주의를 기울인다.
생전에 나의 아버지는 약 5,000킬로미터 떨어진 플로리다에서 홀로 지내셨다. 그분의 겉모습은 금욕적이었지만 그 안에는 모순된 감정들이 가득했다. 지나친 애정 표현이나 진심 어린 대화를 원치 않으셨던 탓에, 나는 아버지와 대화할 때마다 적잖은 피로를 느끼곤 했다. 내 생각에 아버지는 통제력을 잃고 울보처럼 될까 봐 두려워하셨던 것 같다. 2000년의 어느 날, 아버지는 저녁식사 후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안락의자에 앉아 계시다가 심장이 멈춘 것이다. 이웃에게 발견된 때는 나흘이나 지난 후였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미리 아버지를 찾아뵙기는커녕 전화조차 걸지 못했다. 아마도 아버지는 아무도 평화로운 죽음을 방해하길 원치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크게 상심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 나는 꿈에 대한 책을 하나 쓰고 있었다. 그런데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나는 별안간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집 안을 둘러보았다. 가만히 그 공간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창조의 흐름이 왜 끊어졌을까?’ 나는 오후 일찍 작업을 끝내고는 영화관에 갔다. 상영 중인 영화를 알진 못했지만, 때마침 데니스 퀘이드 Dannis Quaid와 짐 커비즐 Jim Caviezel이 주연한 영화 《프리퀀시》의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그 영화에서는 아들이 죽은 아버지와 단파 라디오를 통해 대화한다. 시공을 초월하는 공통 주파수를 발견함으로써 그들은 비밀을 풀고 묵은 상처를 치유한다. 또한 아버지가 죽음에 이르지 않게 되는 더 나은 미래까지 창조한다. 내 추측에 따르면,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에 바로 그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임종을 지키는 것과 가장 비슷한 일이었다.
이 책에 붙일 제목을 찾기 시작했을 때, 내 마음은 일관성, 체계성, 시의성을 높이기 위한 궁리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나는 그럴듯한 제목과 부제 안들을 노트북에 이리저리 입력하다가 문득 ‘프리퀀시 FREQUENCY’ (이 책의 원제)라고 ― 내 손이 스스로 ― 대문자로 썼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을까? 영화 제목인데?’ 나는 불현듯 아버지의 존재를 느꼈다. 그는 이 일련의 사건들 기저에 놓인 핵심 단어를 이제야 알겠냐는 듯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맞아요! 꼭 맞는 제목이에요!’
나는 앉은 채로 전율을 느꼈다. 나 또한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경험했던, 생사의 차원을 가로지르는 공통 주파수를 방금 경험한 것이다. 아버지는 이 연결의 경험과 이 제목의 의미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이것은 아버지의 선물이었다. 그는 내가 설명하려는 여러 원리들을 단박에 직접 경험하게 해주었다. 나는 이 제목이 가진 힘과 마법에 완전히 홀려버렸다.
행복을 느낄 때, 우리는 상승하는 구조 속에서 살게 된다.
우리는 하나로부터 다른 하나로 끝없이 이끌린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