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는 진화란 좀더 단순한 것에서 좀더 복잡한 것으로 분화되는 것이며, 이로써 좀더 나은 것으로 ‘발전’되는 것이다. 이 상식화된 진화론이 다윈보다는 스펜서나 헤켈의 이론이라는 건 이젠 널리 알려져 있다. 다윈의 이론에서 진화란 발전이나 진보가 아니며, 정해진 방향성이 없다. 거기서 진화란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말한다. 살아남는 능력이란 점에서 박테리아를 당할 생물은 없으며, 따라서 박테리아가 가장 진화된 생물이라고. 다윈의 진화 개념이 갖는 이런 양상은 19세기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선 매우 현대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아직도 진화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면모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진화의 관념에는 생존경쟁과 적자생존, 자연도태라는, 경쟁과 적대로 ..
종이 위에 글로 씌어진다고, 아니 모니터상에 활자로 박힌다고 모두 같은 글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서류와 책은 아주 다른 계통에 속하는 글이어서, 그것을 쓰는 데 아주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나는 논문이나 책을 쓰는 데는 매우 숙련되어 있어서, 글 한편 쓰는 것은 별로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구계획서나 보고서 같은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에는, 무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미숙해서 너무도 고생을 한다. 반면 학교나 관청의 관료들이라면 정반대일 것이다. 서류나 문서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항목에 동일한 내용을 써넣을 것을 요구한다. 갖추어야 할 서류도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어서 하나라도 빠뜨리면 내용이 아무리 훌륭한 거라도 영락없이 퇴짜다. 반면 논문이나 책은 남과 동일한 내용..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를 가리킬 때는 흔히 ‘포디즘’이라는 말을 쓴다. 포드주의는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과 결합하여 대량생산 시대의 대표적인 시스템으로 자리잡는다. 과학적 관리법의 핵심 내용은 노동자의 동작을 표준화하고 기준점에 근거하여 성과급을 차등 지급한다는 것이다. 생산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활동을 단순한 단위로 쪼개고, 노동자는 그것을 몸으로 행하기만 하면 되며, 얼마나 많이 했느냐에 따라 잘했다 못했다를 따지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생각은 경영자가 하고 노동자는 몸만 쓰게 만든다.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이 성공하려면 일관 작업에 적합한 노동자 유형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이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람시의 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로운 형태의 문명과 새로운 형태의 생산, 새로운 형태의 ..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도 자신을 예뻐하는 상대를 알아보고 다르게 반응한다. 식물도 동일하게 반응한다는 실험도 있는데, 무생물의 경우는 어떨까? 무생물도 예뻐해 주면 반응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펜도 아껴주면 더 잘 써지고,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도 아껴주면 더 오래 쓸 수 있고 에러율도 낮다. 고 느껴진다. 그 연장선에서, 펌웨어 프로그래머로서 느낀 점은, 코드도 예뻐해 주면 제대로 된 동작으로 보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거다. 그러면 단순 텍스트 파일인 코드를 어떤 방법으로 예뻐해 줄 수 있을까? 1) 대충 마음에 드는 글꼴이 아닌, 정말 나에게 꼭 맞는, 마음에 드는 프로그래머용 글꼴을 찾는다. 내 경우엔 'Source Code Pro' 글꼴이다. 2) 코드 파일을 에디터에서 연 후,..
요즘 도서관엔 노트북실이 따로 있다. 노트북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도 했고, 노트북을 사용하면 키보드와 마우스 잡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사용하는 사람들만 모여있으니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는 사용자들끼리 당연시 하지만, 개인적으로 마우스의 딸깍거리는 소리는, 내가 사용하는 마우스 소리라도 많이 거슬린다. 이 문제를 고민하던 중 펜의 버튼 고장으로 사용하지 않던 원바이와콤 펜 타블렛이 떠올랐고, 이를 마우스로 이용하기로 했다. 결과는 대성공. 펜을 타블렛에 누르면 마우스 클릭과 같은 역할이라 클릭 소리는 당연히 안나고, 타블렛은 마우스 커서가 절대좌표로 움직이는지라 빠르게 작업 가능하다. 도서관용으로 무소음 마우스 구매하시려는 분들께 펜타블렛, 강력 추천한다.
IT 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이폰이나 에어팟, 맥북에 먼지가 끼면 가만히 보고는 못 참는다. 효과적으로 그 먼지를 제거할 툴을 찾다 보니 두 가지가 레이더에 들어왔는데, 스프레이와 젤이었다. 둘 다 구매를 해봤다. 스프레이의 장점은 넓은 면적을 순식간에, 몇 번 분사함으로써 먼지 제거를 할 수 있다는 점인데, 단점은 너무 명백했다. 먼지가 조금이라도 점착력을 가지고 표면에 붙어 있다면 떼어내기 힘들다는 것. 예를 들어, 에어팟 귓구멍 쪽 그릴에 귀지가 붙었다면 깨끗이 떼어내기 힘들다. 먼지를 좀 더 확실히 떼어낼 수 있는 툴은 젤이 되겠다. 쿠팡에서 한 팩에 400원짜리 10팩을 구매했는데, 한 팩만 가지고도 1년은 넘게 쓰겠다. 에어팟에 끼는 귀지 청소, 아이폰 카메라 주변 먼지와 스피커 그릴에..
제주도에 다녀왔다. 어떤 모임의 회원들끼리 떠나는 2박3일의 투어를 따라간 것인데, 하루 세끼 열성적으로 챙겨먹는 것을 비롯해서 사소한 것에 기뻐하고 자기 내면과 타인에 지극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보았다. 상식을 실천하는 모습이 도리어 신기하더니, 이내 내 몸과 마음을 볕에 구워 말리는 느낌이었다. 가이드를 자임한 동행의 제안에 따라 김영갑 갤러리에 들렀다. 작가가 별다른 상업적 활동 없이 20년 이상 제주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동행의 설명에 “부자 예술가인 모양이군요”라고 무심코 말했던 나는 그곳에서 집어든 책을 일별하며 말문이 막혔다. 버스값 아끼느라 걸어다니고 아침에 속을 달랠 우유 한잔을 자제하면서도 끄떡없던 사람이, 필름과 인화지가 떨어져가면 뿌리 잘린 풀마냥 작은 충격에도 중심을 잃는다고 썼..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호모 사피엔스의 고민은 거기서 끝이 났다고- 내 낡은, 중고생을 위한 영한 대역, 의 책장을 덮으며 나는 생각한다. 죽느냐, 사느냐. 돌이켜보니 나도 그런 엇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설마하니 중고생 때의 일이었고, 무렵의 나는 이라는 이름의 부업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였다. 아, 그리운 호모 사피엔스의 시절, 시절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고, 지금 나는 아이 팟(i Pod)이라는 이름의 MP3플레이어에 꽂혀 있다. 매우 사고 싶다. 매우, 사고 싶어. 카탈로그의 제품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작살에 꽂힌 생선처럼 마음이 퍼덕, 인다. 오 마마미아. 새하얀, 뉴 모델의 아이 팟이 갖고 싶어, 란 제..
그들은 늘 궁리해왔다. 당신의 식사시간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그들은 늘 기다려왔다. 당신이 밥을 빨리 먹고 일어서기를. 그들은 늘 모색해왔다. 당신이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기를. 그들은 누구인가? 쉿, 비밀이야! 내가 본 최초의 패스트 푸드는 채플린의 영화 를 통해서였다. 기본적인 발상은, 그러니까 노동자의 밥먹는 시간도 아깝기만한, 아니, 밥을 먹이는 그 순간에도 일을 시킬 순 없을까? 물론 있지요!의 발상 그것이었다. 일해라. 가만히 있으면 기계가 밥을 먹여줄 테니, 그러므로 일해라. 만국의 노동자여! 내가 먹은 최초의 패스트 푸드는 햄버거였다. 햄버거를 먹으며 나는 캠퍼스를 뛰어다니거나, 종로3가의 극장가를 서성이거나,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했다. 자네 참, 열심이군. 저 참, 열심이죠..
아파트 단지안에서 쓰레기 발효시켜 퇴비로 만든다면‥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 엿장수의 가위치는 소리가 들려오면 아이들은 집에 모아두었던 빈병이나 종이 상자, 찢어진 고무신, 찌그러진 양은냄비 등을 들고 와 엿과 바꿔 먹곤 했다. 마당 한켠에는 음식물 쓰레기나 덤불 등을 모아 퇴비화해 농사에 이용하고, 수명을 다한 물건들은 따로 모아두었다가 다른 물건과 바꿔 재활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많은 물건들이 목적없이 섞여 있으면 ‘쓰레기’가 되어 소각이나 매립을 해야 하지만 분리수거가 되면 쉽게 ‘원료’로 이용되어 우리 생활에 요긴한 용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요즘 한 가정의 연간 배출 쓰레기양은 4인 기준으로 1.2t이 넘는다고 한다. 이 가운데 약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