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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음모

지중해의 음모 #007

Escaper 2025. 8. 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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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지난달 런던에서 새 차로 사서 르아브르에서부터 직접 몰고 왔어요.”

“삼촌 댁에 얼마나 계실 건가요?”

“세 달 휴가를 냈으니 앞으로 최소한 여섯 주는 더 있을 거예요. 그다음엔 배를 타고 돌아갈 거예요. 대륙을 횡단한 드라이브는 재미있었지만 너무 피곤했거든요.”

피트가 차 문을 열어주자 그녀는 운전석에 미끄러지듯 앉았다. 그녀는 잠시 앞좌석 밑을 더듬더니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그중 하나를 시동구멍에 꽂고 돌리자 엔진이 켜지며 배기구가 한 번 기침하듯 뱉더니 날카로운 으르렁거림을 토해냈다.

피트는 먼지 낀 차문에 팔을 괴고 그녀에게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당신 삼촌이 산탄총 들고 날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죠?”

“걱정 마세요, 아마 말로만 당신 팔이 빠지게 하실 거예요. 삼촌은 공군 출신들을 좋아하시거든요. 1차 세계대전 때 비행사셨거든요.”

“설마.” 피트가 빈정거렸다. “리히트호펜하고 같이 날았다고 주장하시진 않겠지.”

“아니에요, 프랑스에는 간 적 없어요. 여기 그리스에서 싸우셨거든요.”

피트의 빈정거림은 사라지고, 서늘한 기운이 스멀스멀 엄습했다. 그는 문틀을 움켜쥐어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혹시 삼촌이… 커트 하이베르트 얘기를 한 적 있나요?”

“자주 하셨어요. 두 분은 같이 초계비행을 하셨대요.” 그녀는 기어를 1단에 넣었다. 그리고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늘 저녁에 봐요. 늦지 마세요. 그럼 안녕.”

피트가 더 말하기도 전에 작은 차는 도로 위로 튀어 올랐다. 그는 차가 북쪽으로 요란하게 달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먼지 낀 초록색 차체가 언덕 위로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바람에 휘날리는 테리의 검은 머리칼이었다.

벌써부터 날씨가 불쾌할 만큼 더워지고 있었다. 그는 무심히 몸을 돌려 비행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맨발로 걷다 날카로운 것에 발을 찔려 욕설을 내뱉으며 한쪽 다리로 깡충거리며 작은 가시덩이를 빼냈다. 성가신 그것을 홱 던져 길가 덤불 속에 집어던지고는, 또 찔리지 않으려고 바닥을 주의 깊게 살피다가 발자국을 발견했다. 징 박힌 구두 밑창 자국이었다.

피트는 무릎을 꿇고 그 자국들을 살펴보았다. 그는 맨발로 걸은 자신과 테리의 발자국과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그의 입매가 어두워졌다. 몇몇 곳에서 구두 자국이 맨발 자국을 덮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테리를 따라 해변으로 향했던 게 분명했다. 그는 손으로 햇살을 가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으므로 그 자국을 추적해 보기로 했다.

발자국은 길을 따라 내려가다 중간쯤에서 바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기서 흔적은 끊겼으나 그는 거친 바위 위로 기어 올라가 반대편에서 다시 자국을 발견했다. 자국은 이번엔 길가 쪽으로 향해 있었는데, 아까와는 더 떨어진 지점이었다. 가시가 팔을 긁어 얇은 핏줄기를 냈지만 그는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땀이 배어날 즈음 그는 도로 위로 다시 올라섰다. 그리고 마침내 징 박힌 발자국은 끝나고, 무거운 차량의 바퀴 자국이 시작되었다. 바퀴의 트레드 무늬는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흙 위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는 길 양쪽을 바라봤지만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수건을 도로 한가운데 펴놓고 앉아 상황을 머릿속으로 재현해 보기 시작했다.

테리를 미행한 자는 이곳에 차를 세우고 그녀의 차로 돌아가 뒤따라 내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해변에 이르기 전 목소리를 듣고 방향을 바꾸어 바위 속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두 사람을 엿봤다. 새벽이 밝자 그는 바위를 따라 움직이며 다시 도로로 돌아왔던 것이다.

퍼즐은 기본적으로 단순했고, 꼭 들어맞았다. 다만 세 개의 조각이 빠져 있었다. 왜 테리를 미행했는지, 그리고 그게 누구인지. 피트는 혼잣말처럼 미소 지었다. 단순히 동네의 훔쳐보기 좋아하는 놈일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놈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걸 구경한 셈이다.

하지만 그의 속이 서서히 뭉치듯 조여왔다. 그를 가장 불편하게 만든 건 세 번째 빈칸이었다. 논리적인 사고가 깔끔히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다시 바퀴 자국을 살폈다. 그것은 보통 승용차가 아니라 더 큰 차량, 이를테면 트럭에서 나온 자국이었다. 그의 눈이 가늘게 좁혀지고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는 테리가 도착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때 그는 잠들어 있었으니. 그리고 트럭은 아마도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멈췄을 것이다.

피트의 시선은 다이아몬드 무늬 바퀴 자국에서 해변으로 옮겨졌다. 밀물이 차오르며 인간이 남긴 흔적을 지워나가고 있었다. 그는 도로에서 해변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더니 초등학교 교사의 수학 문제처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트럭이 A 지점에 있고, 두 사람이 250피트 떨어진 해변 B 지점에 있을 때, 고요한 아침에 어째서 두 사람은 트럭 시동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그는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피트는 어깨를 으쓱하고 미련을 접었다. 수건을 털어 목에 두른 뒤, 텅 빈 도로를 따라 정문 쪽으로 휘파람을 불며 걸어갔다. 그가 입술 사이로 내뱉은 곡조는 “It’s a Long Way to Tipperary”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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