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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금발의 승무원이 밧줄을 풀자, 26피트 길이의 양끝이 뾰족한 고래잡이 배는 브래디 비행장 근처 임시 부두에서 천천히 밀려나 파란 물결 위로 ‘퍼스트 어템프트(First Attempt)’를 향해 나아갔다. 네 기통 부다(Buda) 디젤 엔진은 분당 여덟 노트의 속도로 튼튼한 배를 밀어냈고, 익숙한 디젤 연료 냄새가 갑판 위로 퍼져갔다. 아침 아홉 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태양은 이미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약간의 바람조차 더위를 식혀주지 못했다.
피트는 서서 해안이 점점 멀어지는 걸 바라보다가, 부두가 파도선 위에 더러운 점처럼 보이게 되자 190파운드의 몸을 배 선미를 두른 튜브 모양 난간 위로 끌어올렸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물보라를 일으키는 배의 꼬리물결 위에 걸터앉았다. 특이한 자세 덕분에 그는 샤프트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바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프로펠러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배가 ‘퍼스트 어템프트’에 불과 사분의 일 마일 정도 남겨두었을 때, 피트는 키를 잡은 젊은 승무원이 자신을 존경스럽게 바라보는 것을 눈치챘다.
“실례지만, 선생님은 양끝배(double-ender)에서 꽤 시간을 보내신 분 같군요.” 금발 청년이 피트가 난간에 걸터앉은 자세를 가리켰다. 그는 어딘가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지적이면서도 에게 해 햇볕에 그을려 있었다. 그는 버뮤다 반바지 하나만 입고 있었고, 가늘게 자란 노란 수염이 턱을 덮고 있었다.
피트는 한 손으로 선미의 불빛 기둥을 잡아 몸을 지탱하며 다른 손을 가슴 주머니에 넣어 담배를 꺼냈다. “고등학교 때 하나 가지고 있었지.” 그는 태연히 말했다.
“그럼 물가 근처에서 자라셨겠네요.”
“캘리포니아 뉴포트 비치.”
“멋진 곳이죠. 제가 라호야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을 때 늘 차 몰고 올라가곤 했어요.” 젊은 승무원이 비뚤게 웃었다. “아, 그곳 여자들 말이에요. 정말 환상적이었죠. 그런 곳에서 성장했다니, 참 즐거웠을 것 같네요.”
“사춘기를 보내기에 더 나쁜 곳도 있지.” 피트는 청년이 말을 터놓은 김에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프로젝트에 무슨 문제들이 있었던 거죠?”
“처음 몇 주는 모든 게 순조로웠어요. 그런데 유망한 위치를 찾아 조사하려 하자 곧 뒤틀리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불운만 잇따랐죠.”
“예를 들면?”
“대부분 장비 고장이에요. 케이블이 끊어지고, 부품이 없어지거나 망가지고, 발전기가 멈추고… 뭐 그런 것들입니다.”
이제 ‘퍼스트 어템프트’가 가까워지자 청년은 다시 키로 손을 돌려 작은 배를 승선용 사다리 옆에 바짝 붙였다.
피트는 서서 큰 배를 올려다보았다. 해양 기준으로 보면 작은 편이었지만, 총톤수 820톤, 전장 152피트였다. 선체는 원래 2차 대전 전 로테르담 조선소에서 대양용 예인선으로 기공되었다. 독일군이 저지대를 침공하자, 선원들은 배를 영국으로 빼돌렸고, 전쟁 내내 리버풀 항까지 피격당하거나 손상된 배들을 예인해 나르는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유럽 전쟁이 끝난 뒤, 지친 선체는 네덜란드 정부에 의해 미 해군으로 넘겨졌고, 곧바로 워싱턴주 올림피아의 예비함대에 편입되어 25년 동안 회색 비닐로 덮인 채 잠들어 있었다. 그 후 신생 기관인 국립 해양개발청(NUMA)이 이 배를 인수하여 현대적 해양조사선으로 개조했고, 새 이름을 ‘퍼스트 어템프트’라 붙였다.
하얀 도장이 선수에서 선미까지 번쩍이며 눈부신 빛을 뿜자, 피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갑판에서 반가운 친구, 이 배의 선장이자 프로젝트 책임자인 루디 건 사령관과 마주쳤다.
“건강해 보이는군.” 건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충혈된 눈만 빼고.” 그는 담배를 꺼내 피우기 전에 피트에게도 권했으나, 피트는 이미 손에 쥔 담배를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문제가 있다고 들었어.” 피트가 말했다.
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렇고말고.” 그는 날카롭게 내뱉었다. “워싱턴에서 너를 이 먼 곳까지 불러낸 게 장난이라고 생각하나?”
피트의 눈썹이 놀라듯 치켜올라갔다. 이런 날 선 태도는 건답지 않았다. 평소의 그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인물이었으니까.
“진정해, 루디.” 피트가 부드럽게 말했다. “햇볕을 피해서 얘기하자고. 그리고 이 난장판이 뭔지 설명해줘.”
건은 뿔테 안경을 벗고 구겨진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쳤다.
“미안하다, 디르크. 이렇게 한꺼번에 일이 꼬이는 건 처음이야. 수개월간 계획을 세웠는데 이런 꼴이라니… 미칠 노릇이지. 덕분에 승조원들마저 지난 사흘 동안 나를 슬슬 피하고 있어.”
피트는 키 작은 사령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웃었다.
“걱정 마. 네가 못돼먹은 꼬마 악마일지라도 난 피하지 않을 테니까.”
건은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눈빛에 안도감이 스며들더니 고개를 젖히고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와서 다행이야.” 그는 피트의 팔을 꽉 잡았다.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도 괜찮아. 네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훨씬 기분이 나아질 테니까.” 그는 선수 쪽을 가리켰다. “따라와. 내 선실은 앞으로 가면 있어.”
피트는 가파른 사다리를 올라가 작은 선실로 들어갔다. 옷장만 한 크기였으나, 천정 환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바람 하나만큼은 큰 위안이었다.
피트는 그 앞에 잠시 서서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다. 그러곤 의자를 거꾸로 걸터앉아 등받이에 팔을 얹고, 건이 설명을 시작하길 기다렸다.
건은 창문을 닫은 뒤 서서 말했다.
“시작하기 전에 묻지. 에게 해 원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퍼스트 어템프트’가 지중해에서 동물학 연구를 한다는 얘기만 들었어.”
건은 충격받은 듯 피트를 노려보았다.
“워싱턴을 떠나기 전에 사데커 제독이 프로젝트에 대한 상세 자료를 주지 않았단 말인가?”
피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웃었다.
“내가 수도에서 곧장 왔다고 누가 생각하나?”
“모르겠네.” 건이 머뭇거렸다. “난 그냥… 그렇게 생각했지.”
피트는 웃음으로 말을 잘랐다.
“난 네 달 넘게 미국 땅에 발도 안 들였어. 제독이 보낸 메시지에는 그냥 나를 타소스로 보낸다고만 적혀 있었을 거야. 어디서 오는지, 언제 도착하는지는 말이지 않았겠지. 그래서 넌 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날 거라 믿었던 거고.”
“다시 미안하다.” 건이 어깨를 으쓱했다. “네 말이 맞아. 난 네 낡은 쇳덩어리 비행기로 이틀이면 온다고 계산했거든. 그런데 어제 브래디 비행장에서 그 난리 속에 나타난 건 이미 내 일정에서 나흘이나 늦은 거였어.”
“어쩔 수 없었어. 조르디노랑 난 스피츠베르겐 북쪽 빙상 기지로 보급품을 공수하라는 명령을 받았거든. 착륙하자마자 폭풍이 몰아쳐서 72시간 넘게 꼼짝 못 했어.”
건은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기온 차이로는 극과 극을 달렸구나.”
피트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건은 작은 책상의 서랍을 열고 큰 마닐라 봉투를 꺼내 피트에게 내밀었다. 안에는 기묘한 생선 그림이 여러 장 들어 있었다.
“이런 건 본 적 있나?”
피트는 그림들을 내려다보았다. 대부분은 같은 생선을 묘사했지만 세부가 조금씩 달랐다. 하나는 고대 그리스의 항아리에 그려진 도안, 또 하나는 로마 벽화의 일부였다. 두 장은 현대적인, 움직임을 단계적으로 표현한 도식화였다. 마지막은 사암에 박힌 화석 사진이었다. 피트는 의아한 눈빛으로 건을 바라봤다.
건은 확대경을 내밀었다.
“자, 이걸로 자세히 보게.”
피트는 두꺼운 렌즈를 조절해 그림들을 살폈다. 언뜻 보기에는 참다랑어와 비슷했지만, 정밀히 보니 아랫배의 지느러미는 작은 관절 달린 물갈퀴 발처럼 보였다. 등지느러미 앞쪽에도 똑같은 두 개의 지느러미 같은 팔다리가 있었다.
피트는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기묘한 놈인데, 루디. 뭐라 부르지?”
“라틴 이름은 도저히 못 외워. 배에 있는 과학자들은 그냥 ‘티저(Teaser)’라고 부르지.”
“왜 그렇게?”
“자연의 법칙대로라면 2억 년 전에 멸종했어야 할 생선이거든.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봤다고 주장해. 50~60년마다 목격담이 쏟아져. 하지만 과학에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잡힌 티저는 단 한 마리도 없어.” 건은 피트를 한번 보고 시선을 돌렸다. “그런 생선이 실제로 있다면 틀림없이 요행으로 살아남은 놈일 거야. 수백 건의 기록이 있어. 어부들이나 학자들이 정색하고 ‘분명히 그걸 낚시 바늘에 걸었다’고 말하지. 그런데 배 위로 올리기 직전에 항상 도망쳤다는 거야. 전 세계 동물학자라면 누구든 살아 있든 죽었든 티저 한 마리를 얻기 위해 고환 하나쯤은 내줄 걸.”
피트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물었다.
“그 생선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건은 그림들을 들어 보였다.
“보면 알겠지만, 화가들조차 피부를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의견이 갈렸어. 어떤 건 작은 비늘, 어떤 건 돌고래처럼 매끈한 피부, 또 어떤 건 바다사자 같은 털가죽을 덧칠했지. 만약 털가죽 가능성이 사실이고, 거기에 팔다리까지 고려한다면… 아마 최초의 포유류의 시작을 본 걸지도 몰라.”
“그렇긴 하지. 하지만 피부가 매끈하다면 고대 파충류에 불과하잖아. 그 시절 지구는 그런 놈들로 뒤덮여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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