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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의 눈빛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다음에 고려해야 할 점은 티저가 따뜻하고 얕은 바다에서 살았다는 거야. 기록된 목격담은 모두 해안에서 세 마일 이상 벗어나지 않았고, 모두 바로 이 동지중해에서 일어났지. 이곳의 수온은 섭씨 17도 밑으로는 거의 내려가지 않거든.”
“그게 뭘 증명한다는 거지?” 피트가 물었다.
“확실한 증거는 아니지만, 원시 포유류는 온화한 기후에서 더 잘 살아남지. 그러니 티저가 지금까지 살아남았을 가능성을 조금은 뒷받침해 주는 셈이야.”
피트는 건을 잠시 생각스럽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루디. 아직도 난 납득이 안 가.”
“네가 고집불통일 줄 알았다.” 건이 말했다.
“그래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마지막까지 아껴둔 거야.”
그는 안경을 벗어 클리넥스로 렌즈를 닦더니, 매부리코 위에 다시 걸쳤다. 마치 꿈속에 빠진 듯 이어갔다.
“지질학적 시간으로 트라이아스기, 히말라야와 알프스가 솟기 전, 지금의 티베트와 인도를 뒤덮고 중앙 유럽에서 북해까지 이어진 거대한 바다가 있었지. 지질학자들은 그것을 테티스 해(Sea of Tethys)라고 부른다. 지금 남은 건 흑해, 카스피해, 그리고 지중해뿐이야.”
“지질시대에는 문외한이라 물어보는데, 트라이아스기가 언제였지?” 피트가 끼어들었다.
“1억 8천만 년에서 2억 3천만 년 전.” 건이 대답했다.
“그 시기에는 척추동물의 진화에서 중요한 도약이 있었어. 파충류가 원시 조상들보다 크게 발전했지. 바다 파충류 가운데는 길이가 7미터에 달하는 놈도 있었어. 그때 가장 주목할 만한 건 최초의 진짜 공룡이 등장했다는 거야. 심지어 뒷다리로 걸을 줄 알았고 꼬리를 지팡이처럼 썼지.”
피트는 몸을 젖히고 다리를 뻗으며 말했다.
“난 공룡의 시대가 훨씬 후대인 줄 알았는데.”
건은 웃음을 터뜨렸다.
“넌 옛날 영화만 너무 본 거야. 털북숭이 원시인 부족을 위협하던 괴수들을 생각하는 거겠지. 40톤짜리 브론토사우루스, 사나운 티라노사우루스, 날아다니는 프테라노돈이 반쯤 벗은 여주인공을 쫓아 원시 정글을 달리는 장면 말이야. 사실 널리 알려진 그런 공룡들은 인류가 나타나기 6천만 년 전에 이미 멸종했어.”
“그 괴상한 물고기는 그럼 어디에 맞아떨어지는 거지?”
“상상해 봐. 길이 1미터 남짓한 티저가 테티스 해에서 살고, 놀고, 짝짓기하고, 마침내 죽었지. 그 몸은 바다 밑 붉은 진흙에 가라앉아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채 묻혔다. 퇴적물이 덮였고, 굳어져 사암으로 변하며 얇은 탄소막이 형성되었지. 그 탄소가 티저의 조직과 골격을 바위에 새겨놓은 거야. 수만 년이 지나고, 수백만 년이 흘러 어느 따뜻한 봄날, 2억 년 뒤 오스트리아 노인키르헨의 한 농부가 쟁기를 댔다가 딱딱한 표면에 부딪혔다. 그리고, 보라, 티저가 거의 완벽한 화석으로 다시 햇빛 아래 드러난 거야.”
건은 성긴 머리칼에 손을 쓸어 넘기며 잠시 멈췄다. 그의 얼굴은 지쳐 보였지만, 티저 얘기를 하는 두 눈은 불타올랐다.
“중요한 사실은, 티저가 죽었을 당시엔 새도 벌도 없었고, 털 달린 포유류도 없었고, 섬세한 나비조차 없었으며, 꽃조차 지구상에 피어나지 않았다는 거야.”
피트는 다시 화석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으면서 진화에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는 게 가능할까?”
“믿기 어렵지만, 전례가 있지. 상어는 3억 5천만 년 동안 살아남았어. 투구게도 2억 년 넘게 거의 변하지 않았고. 게다가 대표적인 사례가 있잖아. 실러캔스 말이야.”
“들어봤어.” 피트가 말했다. “7천만 년 전 멸종한 줄 알았던 그 물고기가 동아프리카 연안에서 발견된 거지.”
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러캔스 발견은 당시 큰 센세이션이었지. 하지만 티저를 잡는다면 과학계가 얻는 건 그 이상일 거야.” 그는 잠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눈빛은 완전히 몰입한 사람의 그것이었다.
“결국 요점은 이거야. 티저는 포유류 진화, 곧 인간을 포함한 계통의 초기 연결고리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내가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어. 오스트리아에서 발견된 화석에는 포유류적 특징이 분명히 드러나 있었어. 돌출된 팔다리와 내부 장기의 몇몇 구조가 인간과 동물로 발전하는 진화 계통에 정확히 들어맞지.”
피트는 대수롭지 않게 그림들을 흘겨봤다.
“그렇다 치자고. 하지만 만약 그 화석이 아직도 원래 모습대로 바다에 살아 있다면, 어떻게 더 발전된 단계로 진화하겠어?”
“식물이나 동물 종은 친척 집안과 같아.” 건이 설명했다.
“한쪽 가지에서는 똑같은 모습의 자손만 나오지만, 산 건너 사촌들은 머리 두 개에 팔 네 개 달린 거인족을 낼 수도 있지.”
피트는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문을 열고 갑판으로 나갔다. 뜨거운 바람이 증기구름처럼 몰려와 얼굴을 덮치자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온갖 비용과 인력이 이런 비린내 나는 물고기 하나 잡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니. 우리 조상이 원숭이였든 물고기였든,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인류는 지금 속도로 가면 앞으로 천 년도 못 버티고 자멸할지도 모를 텐데. 그는 다시 어두운 선실 쪽으로 몸을 돌려 건을 마주봤다.
“좋아.” 피트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과 이 배에 탄 두뇌집단이 뭘 노리는지는 알겠어. 내 머릿속에 남은 건 하나뿐이야. 여기서 난 어떤 역할을 하는 거지? 케이블이 끊기고 발전기가 고장 나고 도구가 사라진 게 문제라면, 나보단 장비 다룰 줄 아는 정비공이 필요할 텐데.”
건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미소를 지었다.
“닥터 나이트한테서 정보를 좀 빼냈군.”
“닥터 나이트?”
“그래. 오늘 아침에 너를 고래잡이 배로 데려온 젊은이 말이야. 켄 나이트, 뛰어난 해양 지구물리학자지.”
“거창한 소개로군.” 피트가 말했다. “배 안에서 얘기할 때는 친근해 보이긴 했는데, 솔직히 뛰어나다는 인상은 못 받았어.”
바깥 더위는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고, 금속 난간은 뜨겁게 빛났다. 피트는 생각 없이 난간에 손을 얹었다가 즉시 저주를 내뱉으며 손바닥을 뗐다. 불에 덴 듯한 고통이 짜증을 폭발시켰고, 그는 다시 선실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자.” 피트가 날카롭게 내뱉었다.
“내가 무슨 기적을 부려야 티저를 네 벽난로에 걸 수 있는지 말해줘. 그럼 바로 시작하지.”
그는 건의 침대에 누워 깊이 숨을 들이켰다. 선실의 시원함이 다시 그를 진정시켰다. 피트는 미소를 지으며 건의 어깨를 붙잡았다.
“돈타령하는 건 아냐. 하지만 네 해적 같은 과학자 무리에 끼려면 술 한 잔은 사야겠지. 이 긴 얘기 끝에 목이 바짝바짝 타거든.”
건은 안도하듯 웃으며 인터폰으로 부엌에 얼음을 가져오라고 했다. 이어 책상 서랍을 열어 시바스 리갈과 두 잔의 잔을 꺼냈다.
“얼음을 기다리는 동안 이 보고서를 좀 보게. 장비 고장에 대한 내 기록이야.” 그는 노란 폴더를 건넸다.
“사건을 빠짐없이, 시간순으로 정리했어. 처음엔 단순한 사고나 불운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단순한 우연의 영역을 훌쩍 넘어섰어.”
“방해나 사보타주의 증거는 있어?” 피트가 물었다.
“전혀 없어.”
“나이트가 말한 그 끊어진 케이블, 잘린 흔적은 없었나?”
건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끝이 너덜너덜했지. 그것도 또 하나의 수수께끼야. 설명해줄게.” 건은 담배 재를 툭 털었다.
“우린 항상 5대 1의 안전 계수를 두고 일해. 이를테면 케이블 규격이 2만5천 파운드 이상 걸리면 끊어진다고 돼 있다면, 실제로는 5천 파운드 이상은 절대 걸지 않아. 그래서 누마(NUMA)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사망사고를 낸 적이 없지. 생명은 과학적 발견보다 중요하니까. 심해 탐사는 위험한 일이야. 우리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
“그럼 케이블이 끊어졌을 땐 안전 계수는 얼마였지?”
“거의 6대 1이었어. 당시 걸린 하중은 고작 4천 파운드였으니까. 케이블이 끊기며 채찍처럼 튀었는데,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어.”
“그 케이블 좀 볼 수 있을까?”
“응, 끊어진 부분은 따로 잘라서 네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지.”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머리 붉은 열여덟 아홉 살쯤 된 청년이 얼음이 든 양동이를 들고 들어왔다. 그는 책상에 내려놓고 건을 향해 섰다.
“다른 심부름 드릴까요, 선생님?”
“그래, 잘 왔다.” 건이 말했다.
“정비 갑판에 내려가서 최근에 끊어진 케이블 조각들을 찾아 여기로 가져오게.”
“알겠습니다.” 소년은 딱딱한 걸음을 돌려 선실을 빠져나갔다.
“승무원인가?” 피트가 물었다.
건은 얼음을 잔에 떨어뜨리고 위스키를 따랐다. 잔 하나를 피트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래, 승무원 여덟 명에 과학자 열네 명이 이 배에 타고 있어.”
피트는 잔 속 얼음을 굴리며 말했다.
“그럼 그 스물두 명 중 누군가가 문제의 원인일 가능성은 없나?”
건은 고개를 저었다.
“그 생각을 수도 없이 했고, 꿈속에서도 분석했어. 각자의 인사기록을 쉰 번은 들여다봤지만, 누가 무슨 동기로 이 프로젝트를 방해하겠어? 아니야, 내 반대는 다른 데서 오는 거야. 누군가가,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존재할지도 모를 한 마리 물고기를 잡는 걸 막으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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