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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음모

지중해의 음모 #011

Escaper 2025. 8. 27.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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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 시를 조금 넘겨 피트는 브래디 비행장 숙소로 돌아왔다. 끈적거리는 옷을 벗어던지자마자, 좁은 샤워실 바닥에 등을 대고 드러누웠다. 그의 머리는 한쪽 구석에 비스듬히 끼워졌고, 등은 타일 바닥에 바짝 붙은 채, 다리와 발은 반대편 구석으로 직각을 이루며 솟아 있었다.

누가 들여다본다면 기괴하고 뼈를 비트는 듯한 자세로 보였겠지만, 피트에게는 더없이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휴식이었다.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그는 늘 이런 식으로 샤워실에서 긴장을 풀었다. 가끔은 졸기도 했지만, 대개는 빗방울 같은 물줄기와 고독 속에서 사색에 잠기곤 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는 알려진 사실과 알 수 없는 요소들을 이리저리 굴리며 패턴을 찾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사소해 보이는 문제, 바로 그 해변의 ‘소리 없는 트럭’이라는 수수께끼만 맴돌았다.

이해할 수 없이 그 문제가 그를 괴롭혔다. 떨쳐내려 애썼지만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눈을 감고 장면을 재구성해 보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갑자기 샤워실 문 너머로 흐릿한 그림자가 비쳤다.

“안에 있냐?” 조르디노의 목소리가 물소리를 뚫고 울려왔다.

“넌 벌써 30분이나 샤워 중이야. 이젠 완전히 물에 불었겠군.”

피트는 방해를 받아들인 듯 체념하고 손을 뻗어 수도꼭지를 잠갔다.

“서둘러야 해.” 조르디노가 소리쳤다. 그러다 물소리가 끊긴 걸 알아차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루이스 대령이 오고 있어. 곧 도착할 거야.”

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몸을 일으켜 앉은 뒤 미끄러운 타일 바닥에서 간신히 몸을 세웠다. 샤워실 문 위로 수건 하나가 날아들어 머리 위로 덮였다. 상관 앞에서 뻔지르르하게 보이려고 밀치고 떠밀리는 꼴을 떠올리자, 목덜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뿌옇게 흐린 유리창 너머로 노려보았다.

“루이스 대령한테, 기다리는 동안 손가락이나 빨라고 전해.” 그의 목소리는 서늘했다.

“난 내가 원할 때 나갈 거야.”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 자식, 내 욕실에서 썩 꺼져. 그렇지 않으면 네 똥구멍에 비누나 쑤셔 넣어주지.”

갑자기 피트는 뺨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오래된 친구한테 진심으로 무례할 생각은 아니었다. 곧 후회와 죄책감이 몰려왔다.

“미안하다, 알. 다른 데 신경이 팔려 있었어.”

“됐어.” 조르디노는 더 말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하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피트는 재빨리 몸을 닦고 면도를 했다. 끝내고 나서 전기 면도기에 낀 짧은 수염들을 털어내고, 얼굴에 브리티시 스털링 애프터셰이브를 두드렸다. 침실로 나가자 조르디노와 루이스 대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루이스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커다란 붉은 콧수염 한쪽 끝을 비틀고 있었다. 크고 불그스름한 얼굴에 반짝이는 파란 눈, 그리고 풍성한 콧수염이 어울려 유쾌한 나무꾼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동작과 말투는 빠르고 경직되어 있어, 피트는 그가 바지 속에 유리 가루라도 한 파운드쯤 털어 넣은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 미안하네.” 루이스가 우렁차게 말했다.

“하지만 어제의 공격과 관련해 뭔가 잡은 게 있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피트는 알몸이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 뚜렷한 건 없어. 직감 몇 가지랑 어림짐작 정도는 있지만, 완벽한 근거를 댈 만한 사실은 거의 없지.”

“뭔가 단서를 찾았을 거라 기대했는데. 내 공군 조사대는 허탕이었어.”

“알바트로스 잔해는 찾았나?” 피트가 물었다.

루이스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만약 그 고물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했다면, 흔적은 전혀 없어. 기름 한 방울조차. 비행기와 조종사 모두 공기 중으로 증발해버린 것 같아.”

“아마 본토까지 갔는지도 몰라.” 조르디노가 말했다.

“아니.” 루이스가 단호히 잘랐다.

“우린 저쪽에서 누구 하나, 그 비행기를 봤다는 사람조차 찾지 못했어.”

조르디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속 103마일밖에 못 내는 낡은 노란 비행기가 해협을 넘어 마케도니아로 갔다면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을 거야.”

루이스는 담배를 꺼냈다.

“날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이번 공격이 잘 짜여진 계획이었다는 점이야. 놈은 그 시간에 브래디 비행장에 이착륙할 항공기가 없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지.”

피트는 셔츠 단추를 채우며 어깨의 금빛 참나무 잎 계급장을 고쳤다.

“정보 얻는 건 쉬웠을 거야. 타소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지. 브래디 비행장은 일요일이면 유령기지나 다름없다는 걸. 사실 이건 전략 면에서 진주만 기습과 닮았어. 산맥의 고개를 통해 몰래 들어온 것까지 말이야.”

루이스는 콧수염에 불 안 붙게 조심스럽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맞아. 하지만 네 카탈리나가 불시에 나타난 것도 공격자와 우리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지. 네가 마지막 200마일을 해수면에 붙어 날았으니 우리 레이더도 잡아내지 못했어.” 그는 연기를 내뿜었다.

“네 낡은 비행기가 태양을 뚫고 내려오는 걸 봤을 때 그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

“알바트로스 조종사도 크게 놀랐을 걸.” 조르디노가 웃었다.

“우리를 처음 보았을 때 턱이 떨어질 정도였으니까.”

피트는 넥타이를 매며 말했다.

“아무도 우리를 예상 못 했지. 내 비행 계획에는 브래디 비행장 착륙이 없었거든. 원래 계획은 ‘퍼스트 어템프트’ 옆 바다에 착수하는 거였어. 그래서 기지도, 브래디 관제소도 우리 도착 시간을 몰랐던 거지.” 그는 잠시 멈추고 루이스를 내려다보았다.

“대령, 강력히 권고하건대 방어 태세를 강화하시오. 저 노란 알바트로스, 다시 나타날 거라는 예감이 들어.”

루이스는 의아한 눈빛으로 피트를 보았다.

“그렇게 확신하는 근거가 뭔가?”

피트의 눈이 반짝였다.

“놈이 비행장을 공격한 목적은 미국인이나 미군기를 죽이거나 부수려는 게 아니었어. 단순히 널 혼란에 빠뜨리려는 거였지.”

“그럼 뭘 얻으려는 거지?” 조르디노가 물었다.

“잠깐 생각해 봐.” 피트는 시계를 흘끗 보더니 루이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상황이 진짜 위협적이고 위험해 보였다면, 대령은 미 민간인들을 본토로 대피시켜야 했을 거야.”

“그건 맞아.” 루이스가 인정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럴 이유가 없어. 그리스 정부도 조종사와 비행기를 찾는 데 전폭 협조하겠다고 약속했지.”

“하지만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피트가 몰아붙였다.

“그럼 건 사령관에게 ‘퍼스트 어템프트’를 타소스에서 철수시키라고 명령했겠지.”

루이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겠지. 저 하얀 배는 공중 저격수에게는 너무 매력적인 표적이니까.”

피트는 지포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믿거나 말거나, 대령. 바로 그게 답이오.”

조르디노와 루이스는 서로를 보았다가 다시 피트를 바라봤다.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피트가 계속 말했다.

“아시다시피 사데커 제독은 우리에게 NUMA의 해상 조사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고들을 조사하라고 명령했소. 오늘 아침 건 사령관과 대화하면서 난 사보타주의 증거를 발견했지. 그걸 통해, 어제의 공격과 ‘퍼스트 어템프트’의 사고들 사이에 분명히 연결고리가 있다고 믿게 되었소.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브래디 비행장은 주 목표가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오지. 그 공격은 건과 ‘퍼스트 어템프트’를 타소스에서 몰아내기 위한 간접 수단이었어.”

루이스는 곰곰이 생각하며 피트를 바라보았다.

“그럼 다음 질문은 왜냐는 거군.”

“아직 답은 없어.” 피트가 말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신비한 친구가 이 연극 같은 짓을 벌인 데는 엄청난 이유가 있다는 거야. 사소한 걸 위해 이런 수고를 들이진 않았을 테지. 분명히 뭔가 큰 가치를 지닌 걸 숨기고 있고, NUMA 연구원들이 우연히 그걸 건드릴 위치에 있는 거야.”

“그 ‘뭔가’가 수중 보물일 수도 있겠군.” 루이스의 입술이 젖은 듯 번들거렸다.

피트는 여행용 모자를 꺼내 비스듬히 눌러썼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결론이지.”

루이스의 눈은 먼 곳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도대체 뭘까…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피트는 조르디노를 향했다.

“알, 사데커 제독에게 연락해서 에게 해, 특히 타소스 근처에서 사라지거나 침몰한 모든 보물선 기록을 조사해 보내달라고 해. 최대한 빨리. 긴급하다고 전해.”

“알았어.” 조르디노가 말했다.

“워싱턴은 지금 오전 11시니까, 아침 식사 전에는 답이 도착할 거야.”

“이제 뭔가 진전이 있군.” 루이스가 웅장하게 말했다.

“난 하루라도 빨리 답을 얻어야 펜타곤 놈들을 떨쳐낼 수 있어.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없나?”

피트는 시계를 또 보았다.

“보이스카우트 좌우명이 있지—항상 준비하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야. 브래디 비행장과 ‘퍼스트 어템프트’는 지금 누군가의 감시를 받고 있을 거야. 대피 명령이 없고 배가 여전히 에게 해 위에 떠 있다면, 노란 알바트로스가 다시 나타날 게 틀림없어. 이번엔 건 사령관 차례일 거야.”

“사령관에게 내 지원을 마음껏 쓰라고 전해달라.” 루이스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령.” 피트가 대답했다.

“하지만 건에게는 아직 알리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제길, 왜 안 된다는 거지?” 조르디노가 놀라 외쳤다.

피트는 싸늘하게 웃었다.

“지금까지는 전부 추측일 뿐이야. 게다가 ‘퍼스트 어템프트’에서 뭔가 준비하는 움직임이 보이면, 곧바로 우리 의도를 눈치챌 거야. 아니, 우리는 미끼를 던져놔야 해. 그래야 그 1차대전 유령 놈을 끌어낼 수 있지.”

조르디노는 차분하게 피트를 바라봤다.

“하지만 과학자들과 승무원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면서 방어 기회조차 주지 않을 순 없어.”

“건은 당장 위험에 처하진 않아. 놈은 최소 하루는 더 지켜볼 거야. ‘퍼스트 어템프트’가 떠나지 않는 걸 확인한 뒤에 다시 공격하겠지.” 피트는 미소 지으며 눈가에 웃음주름을 깊게 새겼다.

“그 사이 난 놈을 덫에 끌어들이는 계획을 짜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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