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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음모

지중해의 음모 #015

Escaper 2025. 8. 27.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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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 뒤, 쿠르트는 연합군 전선을 넘어가, 바닷바람에 느릿하게 흔들리는 기구를 보았다.

그는 분명, 왜 지상에서 대공사격이 없는지 의아했을 것이다. 관측석의 관측자는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잠든 듯 보였고, 쿠르트의 기관총이 수소 가득한 풍선을 불덩이로 바꾸려는 순간에도 뛰어내려 낙하산을 펴려는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게 함정이라는 걸 몰랐단 말입니까?” 피트가 물었다.

“몰랐네.” 폰 틸이 대답했다. “풍선은 거기에 있었고, 그것은 곧 적을 의미했지. 쿠르트는 거의 반사적으로 급강하해 공격했네. 그는 기구에 다가가 스판단 기관총을 난사했지. 그 순간 풍선은 폭약이 터지며 불길과 연기에 휩싸였어. 영국군이 기폭선을 작동시킨 거였지.”

“하이베르트는 연합군 전선에 추락한 겁니까?” 피트가 사색하며 물었다.

“폭발 직후 곧바로 추락하지는 않았네.” 폰 틸이 정신을 현재로 되돌리며 말했다.

“그의 알바트로스는 불바다를 뚫고 나왔지만, 오랜 전투를 함께해온 충직한 비행기는 산산조각 나 있었고, 조종사 역시 중상을 입었지. 천의 날개는 찢기고, 조종 장치는 망가졌으며, 조종석에는 피투성이 조종사가 앉아 있었네. 그 비행기는 겨우겨우 마케도니아 해안을 넘어 바다로 사라졌지. ‘마케도니아의 매’와 그의 전설적인 노란 알바트로스는 다시는 보이지 않았네.”

“적어도 어제까지는 말이죠.” 피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폰 틸의 반응을 기다렸다.

폰 틸의 눈꺼풀이 약간 커졌지만, 얼굴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그는 피트의 말을 곱씹는 듯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피트는 곧바로 원래 주제로 돌아왔다.

“당신과 하이베르트는 자주 함께 비행했습니까?”

“그래, 순찰 비행을 여러 번 함께 했지. 심지어 2인승 룸플러 폭격기를 타고 올라가 영국군 비행장을 향해 소이탄을 투하하기도 했네. 바로 이 타소스 섬에 있었던 그 비행장 말일세. 쿠르트가 조종을 하고 나는 관측자이자 폭격수 역할을 했지.”

“부대는 어디 소속이었습니까?”

“우리는 야크트슈타펠 73 소속이었네. 마케도니아의 잔티 비행장에서 출격했지.”

피트는 담배를 붙이고 폰 틸의 늙었지만 꼿꼿한 체구를 바라보았다.

“하이베르트의 죽음을 아주 명확하고 세세하게 설명해 주셨군요. 빠뜨린 게 하나도 없습니다.”

“쿠르트는 내게 매우 소중한 친구였네.” 폰 틸은 회한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쉽게 잊지 못하지. 정확한 날짜와 시간까지도 기억하네. 1918년 7월 15일, 오후 9시였어.”

“이상하군요.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니.” 피트는 차갑고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중얼거렸다.

“베를린의 군사 기록 보관소도, 런던의 영국 공군 박물관도 하이베르트의 죽음에 대한 자료가 없습니다. 내가 참고한 책들 역시, 앨버트 볼이나 조르주 귀네메르 같은 다른 명사수들과 마찬가지로 ‘실종’으로만 처리되어 있더군요.”

“이런 젠장!” 폰 틸이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독일 기록이 빈약한 건, 제국 육군 최고사령부가 마케도니아 전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지. 영국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네. 그렇게 비신사적인 계략을 글자로 남길 리가 없지. 게다가 영국군이 마지막으로 본 순간에도 쿠르트의 비행기는 여전히 하늘에 있었어. 그들은 자기네 더러운 계략이 성공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지.”

“조종사나 비행기 잔해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아무것도. 쿠르트의 형이 전쟁이 끝난 후 수색했지만, 그의 최후 안식처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네.”

“형도 비행사였습니까?”

“아니,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독일 해군의 장교였어. 2차 대전 전이었지.”

피트는 침묵했다. 폰 틸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매끄럽고 완벽했다. 그는 자신이 마치 기러기 사냥꾼이 쓰는 나무 미끼처럼 이용당하고 있다는 기묘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가슴속에서 불온한 전율이 일었다. 그때, 또각또각 울리는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고,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테리가 방 안으로 들어온 걸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그녀의 목소리는 가볍고 명랑했다.

피트는 몸을 돌려 그녀를 마주했다. 그녀는 로마 토가를 본뜬 미니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가녀린 다리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그는 그 색깔이 마음에 들었다. 황금빛 오렌지, 그녀의 흑단빛 머리카락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테리의 눈은 곧장 피트의 군복에 꽂혔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지더니, 손이 입으로 올라갔다. 그가 해변에서 봤던 바로 그 습관적인 제스처였다. 그러나 곧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고, 눈부시게 관능적인 온기를 내뿜었다.

“좋은 저녁이에요, 멋진 분.” 피트는 장난스럽게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아 입술을 댔다.

테리는 얼굴을 붉히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와주셔서 감사 인사나 하려고 했는데요.”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나한테 이런 못된 장난을 친 걸 알았으니, 차라리 당장 쫓아내야겠는걸요.”

“그 말은 하지 마시오.” 피트가 끼어들며 입술을 장난스럽게 구부렸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바로 오늘 오후 기지 사령관이 제게 쓰레기차 대신 전투기를 주었고, 동시에 소령으로 진급시켜 주었소.”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당신, 자기 계급이 병장보다 낮다고 했잖아요.”

“아니, 난 그저 ‘병장이었던 적은 없다’고만 했소. 그건 진실이지.”

그녀는 그의 팔에 팔을 끼웠다.

“삼촌이 또 1차 대전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지루하게 굴진 않았어요?”

“지루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매혹적이었소.” 피트가 대답했다. 그녀의 미소 뒤에서 겁먹은 눈빛이 번쩍였다. 그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테리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남자들은 왜 전쟁 얘기만 하면 저렇게 열을 올리는지…” 그녀는 여전히 피트의 군복과 계급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해변에서 사랑을 나누던 남자와는 다른 사람이 된 듯 보였다. 지금의 그는 훨씬 더 매혹적이고 세련되어 보였다.

“저녁 끝나면 삼촌에게 돌려드리죠. 하지만 지금은 그를 제 차지예요.”

폰 틸은 절도 있게 구두 굽을 딱 소리 내며 마주 섰다.

“원한다면, 나의 소중한 조카. 앞으로 한 시간 반 동안 네가 우리 지휘관이다.”

테리는 코를 찡긋하며 말했다.

“정말 고마우시네요, 삼촌. 그렇다면 제 첫 번째 명령은 두 분 모두 당장 식탁으로 행진하라는 거예요.”

테리는 피트를 이끌고 테라스로 나가, 둥근 발코니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

전경은 숨 막힐 만큼 아름다웠다. 저택 아래로는 리미나스 마을 불빛이 집마다 켜지고 있었고, 바다 건너 하늘에는 별들이 검은 장막 위로 하나둘 박혀 들어가고 있었다. 발코니 중앙에는 세 사람을 위한 식탁이 준비되어 있었고, 여섯 개의 초가 담긴 노란 유리등이 식탁을 은은하게 밝혀, 은빛 식기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피트는 테리의 의자를 빼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난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쉽게 자극받는 타입이라서.”

그녀는 그를 올려다보며 눈으로 웃었다.

“왜 내가 이렇게 꾸몄을 것 같아요?”

피트가 대답하기도 전에, 폰 틸이 거대한 개를 데리고 다가왔다. 그는 손가락을 튕겼고, 즉시 그리스 전통 복장을 입은 젊은 소녀가 나타나 치즈, 올리브, 오이로 된 전채를 내왔다. 이어 레몬과 달걀 노른자로 맛을 낸 닭고기 수프, 그리고 양파와 다진 견과를 곁들인 굴구이가 차례로 올랐다. 폰 틸은 레치나 와인을 열었다. 오래된 그리스 와인이었다.

송진 향이 강해 피트는 마치 테레빈유를 떠올렸다. 상 차림을 치운 소녀는 과일을 내고, 터키식으로 끓인 커피를 따랐다. 갈아 넣은 원두가 컵 바닥에 흙처럼 가라앉는 진한 커피였다.

피트는 그 강하고 무가당 커피를 억지로 삼키고는 테리의 무릎에 자기 무릎을 맞댔다. 그는 그녀가 소녀 같은 웃음을 지어줄 거라 기대했으나, 그녀는 공포에 젖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전하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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