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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소령.” 폰 틸이 말했다. “우리의 작은 만찬은 즐거우셨기를.”
“네, 감사합니다.” 피트가 대답했다. “훌륭했어요.”
폰 틸은 테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 있었고,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나와 소령이 잠시 단둘이 있고 싶구나. 얘야, 서재에서 기다리거라. 곧 가마.”
테리는 놀란 듯 굳었다. 그녀는 테이블 모서리를 움켜쥔 채 몸을 떨며 대답했다.
“제발, 브루노 삼촌, 너무 이르잖아요. 디르크와의 대화는 나중에 하셔도 되잖아요?”
폰 틸은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삼촌이 말한 대로 하거라. 피트 소령과 논의할 중요한 일이 있다. 그는 널 그냥 떠나지 않을 걸로 확신한다.”
피트는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갑작스러운 집안 소동은 대체 무슨 까닭인가. 뭔가 잘못되었음을 본능이 일깨워주었다. 익숙한 등골의 전율, 언제나 위기가 닥치기 전 미리 어깨를 두드려주는 옛 벗 같은 경고였다.
피트는 남몰래 과일 접시 위에 있던 작은 과도 하나를 집어 양말 속에 감췄다.
테리는 얼굴이 창백해져 피트를 바라보았다.
“용서해 줘요, 디르크. 제가 바보 같죠.”
그는 미소 지었다.
“걱정 마시오. 난 예쁜 바보한테 약하니까.”
“당신은 늘 꼭 맞는 말을 해요.” 그녀가 속삭였다.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곧 따라가겠소.”
“기다릴게요.” 갑자기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고, 그녀는 몸을 돌려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테리에게 너무 심하게 군 건 미안하네.” 노(老) 독일인이 사과했다.
“그녀는 내가 사적인 대화를 원할 때마다 이를 달가워하지 않네. 여자에게는 때때로 단호해질 필요가 있지 않은가? 자네도 동의하리라 믿네.”
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폰 틸은 긴 상아 홀더에 담배를 꽂고 불을 붙였다.
“브래디 비행장에 어제 있었던 공격에 대해 무척 듣고 싶네. 내 정보에 따르면, 그 공격은 오래되고 정체불명의 항공기가 수행했다고 하더군.”
“오래된 건 맞습니다.” 피트가 대답했다. “하지만 정체불명은 아니죠.”
“즉, 기종을 확인했다는 건가?”
피트는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천천히 포크를 내려놓았다.
“확실히 알바트로스였습니다.”
“조종사는?” 폰 틸의 입술에서 단어가 느리게 흘러나왔다. “조종사의 신원을 알고 있나?”
“아직은 모르지만, 곧 알게 될 겁니다.”
“조만간 붙잡을 거라는 자신감이군.”
피트는 일부러 느리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왜 아니겠습니까. 60년 된 노란 골동품 비행기의 주인을 추적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을 테니까요.”
폰 틸의 입가에 오만한 미소가 번졌다.
“마케도니아 그리스 지역은 험준한 산악지대와 황폐한 들판으로 가득하네. 수천 평방마일의 골짜기와 평원 속에서는 자네네 괴물 같은 폭격기조차 감쪽같이 숨길 수 있지.”
피트가 맞받아 웃었다.
“누가 산이나 계곡을 찾는다고 했소?”
“그렇다면 어디를 찾겠다는 건가?”
“바다요.” 피트가 아래 검은 수면을 가리켰다.
“아마도 1918년 쿠르트 하이베르트가 추락한 그 자리쯤이겠지.”
폰 틸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자네, 유령을 믿으라는 건가?”
피트가 피식 웃었다.
“어릴 땐 산타클로스를 믿었지. 좀 크면 처녀를 믿고. 그렇다면 유령쯤 목록에 더해도 되지 않겠소?”
“난 사양하겠네, 소령. 난 미신보다 차가운 사실과 수치를 더 믿거든.”
피트의 목소리는 고요했으나 뚜렷했다.
“그렇다면 다른 가능성을 탐색할 수밖에.”
폰 틸은 곧게 앉아 피트를 노려보았다.
“만약 쿠르트 하이베르트가 아직 살아 있다면?”
폰 틸의 입이 벌어졌다. 그러나 곧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제정신을 추슬렀다.
“허튼소리일세. 살아 있다면 이제 칠십을 훌쩍 넘겼을 텐데. 날 보게, 소령. 난 1899년에 태어났네. 내 나이에도 개방 조종석 비행기를 몰고, 심지어 비행장을 기습할 수 있겠나? 불가능일세.”
“당신 말이 옳지요.” 피트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하이베르트가 뭔가 연관돼 있다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군.” 그의 눈길이 노인에게서 흰 개로 옮겨가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몸을 움켜쥐었다. 그는 원래 단순히 저녁을 즐기러 이 빌라에 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테리의 삼촌과 기묘한 두뇌 싸움에 휘말려 있었다. 피트는 확신했다. 폰 틸은 브래디 기지 공격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때가 됐다. 창을 던지고 결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는 폰 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만약 ‘마케도니아의 매’가 60년 전에 사라졌다가 어제 다시 나타났다면, 흥미로운 문제는 그가 그 사이를 어디서 보냈느냐는 거요. 천국에서? 지옥에서? 아니면 이 타소스에서?”
폰 틸의 얼굴에서 오만한 가면이 벗겨지고 혼란스런 기색이 떠올랐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
“모른다니 개뿔.” 피트가 으르렁거렸다.
“나를 완전 바보 취급하든가, 아니면 자네가 진짜 바보로 굴고 있든가겠지. 내가 자네한테 브래디 기지 공격을 설명해야 할 게 아니라, 자네가 내게 털어놔야 할 거라 생각하네.” 그는 말을 길게 끌며 상황을 즐겼다.
폰 틸은 순식간에 벌떡 일어나, 타원형 얼굴을 분노로 일그러뜨렸다.
“피트 소령, 자네는 내 알 바 아닌 영역을 지나치게 깊이 파고들었네. 더 이상 자네의 터무니없는 암시는 듣지 않겠네. 내 빌라에서 당장 떠나주게.”
피트의 얼굴에 경멸이 스쳤다.
“좋을 대로 하시오.” 그는 계단 쪽으로 돌아섰다.
폰 틸은 쓰디쓴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서재를 통해 나갈 필요는 없네, 소령.” 그는 발코니 저편 벽에 붙은 작은 문을 가리켰다.
“이 복도를 따라가면 정문으로 나가게 되지.”
“떠나기 전에 테리를 보고 싶군요.”
“더는 머물 이유가 없네.” 폰 틸은 피트의 얼굴에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박았다.
“그리고 내 조카딸과는 다시는 만나거나 얘기하지 말게.”
피트의 주먹이 움켜쥐어졌다.
“만약 내가 그러면?”
폰 틸은 위협적인 미소를 지었다.
“위협하진 않겠네. 하지만 자네가 계속 멍청하게 굴면, 난 테리를 벌주겠지.”
“이 썩어빠진 개새끼 독일 놈.” 피트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네 꼬맹이 음모가 뭔진 모르겠지만, 내가 기꺼이 방해해 줄 거라 장담하지.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브래디 기지 공격은 실패했어. 국립해양조사국의 배는 과학 연구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닻을 내리고 있을 거다.”
폰 틸의 손이 떨렸지만 얼굴은 무표정했다.
“고맙네, 소령. 그렇게 빨리 정보를 얻을 줄은 몰랐지.”
‘드디어 이 늙은 독일놈이 방심하는군.’ 피트는 생각했다. 이제 의심할 여지 없었다. 퍼스트 어템프트를 제거하려는 음모의 배후는 폰 틸이었다. 하지만 왜? 여전히 미해결이었다. 피트는 무턱대고 찔러봤다.
“시간 낭비하지 마시오, 폰 틸. 퍼스트 어템프트의 잠수부들은 이미 보물을 발견했고, 지금 인양 작업에 들어갔다.”
폰 틸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피트는 즉시 자기 거짓말이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아주 서투른 시도였네, 소령. 전혀 틀렸어.”
그는 겨드랑이 밑에서 루거를 꺼내 피트의 목덜미에 겨눴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이쪽으로.” 권총으로 어둑한 문지방을 가리켰다.
피트는 캄캄한 복도를 흘끗 보았다. 촛불이 듬성듬성 켜져 있었고, 인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테리에게 훌륭한 저녁이었단 내 인사를 전해주시오.”
“전하마.”
“그리고 고맙소, 폰 틸.” 피트가 비꼬듯 말했다.
“친절한 환대에.”
폰 틸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발을 맞췄다.
“나야 즐거웠지.” 그는 개 머리에 손을 얹었다. 개는 입술을 말아올리며 하얀 송곳니를 드러냈다.
문지방은 낮아, 피트는 몸을 숙여야 했다. 조심스레 몇 걸음을 내디뎠다.
“피트 소령!”
“예.” 피트가 몸을 돌려, 문가에 선 뚱뚱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폰 틸의 목소리에는 사디스트의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안타깝군. 자네는 노란 알바트로스의 다음 비행을 보지 못할 테니.”
피트가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쾅 닫히고 무거운 빗장이 번개처럼 걸리며, 어두운 복도의 끝없는 어딘가로 불길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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