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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음모

지중해의 음모 #017

Escaper 2025. 8. 29.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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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분노가 피트를 덮쳤다. 그는 주먹으로 문을 내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두꺼운 판자를 보는 순간 생각을 바꿨다. 다시 복도로 몸을 돌려보니 여전히 비어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몸이 떨렸다. 피트는 착각하지 않았다. 폰 틸이 자신을 이 빌라에서 살아 나가게 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은 이제 확실했다. 그는 양말에 숨겨 둔 칼을 떠올리며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녹슨 금속 촛대 위에서 깜박이던 노란 불빛이 칼날에 희미하게 반사되었다. 그러나 그 뾰족한 작은 과도는 자기 방어용으로는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단 하나의 위안은 그것이었다. 하찮아도 없는 것보단 낫다는 것.

갑자기 무거운 한기 같은 바람이 복도를 휩쓸며 모든 촛불을 꺼뜨렸다. 피트는 질식할 듯한 암흑 속에 서 있게 되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어둠을 뚫으려 애썼지만 소리도, 빛도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이제 진짜 시작이군.” 그는 중얼거리며 몸을 긴장시켰다.

공포의 첫 징후가 정신을 파고들었다. 그는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글귀를 떠올렸다. 인간 정신에 가장 끔찍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은 ‘완전한 어둠’이라는 말이었다. 시야와 촉각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뇌는 전자회로가 합선을 일으키듯 폭주한다. 보지 못하는 것을 대신 만들어 내는데, 대개는 상상 속의 악몽 같은 광경으로 과장되거나 왜곡된다. 마치 벽장 속에서 상어에게 물린다거나 기차에 깔리는 망상처럼. 피트는 그 우스꽝스러운 비유를 떠올리며 어둠 속에서 씩 웃었다. 그러자 덮쳐오던 공포가 논리적 차분함으로 조금씩 바뀌었다.

그의 다음 생각은 지포 라이터로 촛불을 다시 켜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복도 끝에 매복자가 있다면, 불을 밝히는 순간 자신만 노출될 것이다. 그는 어둠 속에 머물러 상대도 같은 불리함에 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는 신발을 벗고 벽을 더듬으며 발끝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복도에는 쇠줄로 덧댄 나무 문들이 이어졌다. 문을 시험 삼아 당기던 중, 그는 귀를 세우며 멈췄다.

앞쪽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정체 모를 소리. 신음 같기도, 낮게 으르렁거림 같기도 했다. 잠시 후 소리는 사라졌다.

실재하는 위협이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피트는 땅바닥에 몸을 붙이고 조용히 기어갔다. 손끝으로 길을 더듬으며 귀로는 사방을 경계했다. 바닥은 단단했고, 군데군데 축축했다. 끈적이는 기름기 같은 진액이 제복을 더럽혔다. 속옷까지 스며들며 피부에 들러붙었다. 피트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계속 앞으로 기어갔다.

끝없는 시간처럼 느껴졌으나 실제로는 불과 80피트쯤 전진했을 때, 바닥과 벽의 감촉이 매끈한 콘크리트에서 거칠고 각진 석조로 바뀌었다. 길은 오래된 손질된 암벽으로 이어졌다.

피트는 벽이 끊기고 오른쪽으로 꺾이는 갈림길에 다다랐다. 볼에 닿는 희미한 바람이 교차로임을 알려주었다. 그는 멈춰 섰다.

다시 그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발톱 달린 짐승이 딱딱한 바닥을 딱딱거리며 걷는 소리 같았다.

피트의 몸에 오한이 번졌고, 식은땀이 솟았다. 그는 몸을 납작하게 눕히고 칼을 소리 쪽으로 겨눴다.

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러다 멎었다. 고통스러운 침묵이 뒤덮였다.

자신의 숨소리를 죽였지만 들리는 건 자기 심장 박동뿐이었다. 불과 열 피트 앞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마치 뒷골목에서 괴한에게 쫓기는 맹인 같았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절망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떨쳐내고, 눈앞의 위협을 상대할 방법에 집중했다.

터널의 곰팡내는 더욱 짙어졌다. 짐승의 체취까지 섞여 코를 찔렀다.

피트는 결심했다. 그는 지포 라이터를 꺼내 돌려 불꽃을 밝혔다. 그리고 그것을 던졌다. 작은 불꽃은 공중을 그리며 날아가 어둠을 비추었다. 형광처럼 빛나는 두 눈, 그리고 벽과 바닥에 비친 거대한 그림자가 드러났다. 불꽃은 떨어지며 꺼졌다. 그 순간 낮고 위협적인 울음소리가 어둠을 울렸다.

피트는 즉시 반응했다. 그는 바닥 위에서 몸을 말아 올린 뒤, 등을 대고 누워 양손으로 칼을 움켜쥐고 치켜들었다. 그는 상대의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무엇인지 알았다.

짐승은 라이터 불빛 덕에 그의 위치를 알아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도약했다.

본능적으로 냄새를 맡고 공격하는 습성은 짐승의 화가 되었다. 그 잠깐의 지체가 피트에게 몸을 굴릴 시간을 주었다. 거대한 백색 셰퍼드는 목표를 빗나갔다. 피트가 기억하는 건, 칼날이 부드러운 털가죽을 가르며 깊숙이 파고드는 감각과, 얼굴에 흩뿌려진 뜨거운 액체뿐이었다.

맹수의 울음은 고통의 비명으로 바뀌었다. 칼은 늑골 뒤의 옆구리를 갈랐다. 개는 벽에 부딪혀 땅에 추락했고, 몇 번 발작적으로 몸부림치다 죽었다.

피트는 처음엔 개가 놓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가슴에 불이 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개의 죽음의 발작을 들었다. 긴 시간이 지나 통로가 다시 정적에 잠긴 뒤에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긴장이 풀리고 근육이 풀리자 비로소 고통이 몰려왔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벽에 기대었다. 가슴에는 네 개의 발톱 자국이 사선으로 깊이 패여 있었다. 제복은 누더기처럼 찢겨 피와 땀에 젖었다. 그는 남은 천 조각을 뜯어 상처에 둘러 감았다. 의식을 잃고 싶다는 유혹이 강하게 밀려왔지만, 그는 이를 뿌리쳤다.

그는 개 사체 쪽으로 다가갔다. 라이터 불빛 아래, 창자가 터져 나온 백색 셰퍼드가 널브러져 있었다. 바닥에는 핏물이 실개천처럼 흘렀다. 피트의 심장은 공포에서 분노로 바뀌었다. 머릿속에는 단 하나, ‘폰 틸을 죽인다’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려면 우선 이 미로를 빠져나가야 했다. 피트는 라이터를 닫고, 약한 기류를 따라 다른 통로를 택했다. 그러나 막다른 벽이었다. 바위 틈에서 희미한 모터 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곧 사라졌다. 그는 길을 되짚어 교차로로 돌아갔다.

그는 쉼 없이 달렸다. 수많은 갈래길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막혀 있었다. 라이터 연료는 거의 다했다. 그는 손끝 감각에 의존하며 전진했다.

몇 시간을 헤맨 끝에, 그는 돌계단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 위에 쓰러져 코뼈를 다치며 의식을 잃었다. 피가 얼굴을 타고 흘렀다.

얼마 뒤 정신을 차린 그는 계단을 기어올라갔다. 꼭대기엔 두꺼운 쇠창살이 있었고, 녹슬었지만 튼튼했다. 그러나 틈 사이가 넓은 곳을 찾아 몸을 비집고 빠져나왔다. 옷과 살은 긁히고 찢겼지만, 그는 마침내 별빛 아래로 몸을 내밀었다.

그곳은 고대 원형 극장이었다. 달빛과 별빛이 흰 대리석 좌석을 비추고 있었다. 피트는 제복의 찌꺼기를 가슴에 감싸며 숨을 고르고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공짜 표 한 장 줄 테니, 보고 싶지 않나?” 그는 빈 객석을 향해 외쳤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정적뿐이었다.

그는 별자리를 확인했다. 북극성을 보고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시계를 보니 새벽까지 겨우 한 시간 남짓. 그는 시간이 다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피트는 곧장 산길로 난 좁은 오솔길을 찾아내려갔다. 그는 태양보다 먼저 퍼스트 어템프트에 도착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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