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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노란 비행기를 발견한 사람은 거대한 A프레임 크레인 위에 앉아 있던 망보기였다. 그제야 피트와 건도 봤다. 불과 두 마일 거리, 해수면 800피트 상공을 날고 있었다. 더 일찍 봤어야 했지만, 태양을 정면으로 등지고 퍼스트 어템프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탓이었다.
“10분 늦었군.” 피트가 중얼거리며, 가슴에 붕대를 감고 있던 하얀 염소수염의 의사에게 팔을 들어 보였다.
노의사는 다가오는 비행기 따윈 돌아보지도 않고, 손놀림 빠르고 능숙하게 상처를 닦고 붕대를 묶었다. 마지막 매듭을 세게 조이자 피트가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은 여기까지입니다, 소령님. 갑판을 돌아다니며 블라이 대위처럼 고함만 안 치신다면 더 해드릴 수 있겠지만요.”
“미안하오, 닥터. 진료실에서 차분히 진료받을 시간이 없었어. 지금 바로 밑으로 들어가시오. 내 계략이 통하지 않으면 10분 안에 대박을 치실 테니까.”
의사는 대꾸 없이 오래 쓴 가죽 가방을 닫고 갑판 사다리를 내려갔다.
피트는 난간에서 물러서며 건을 보았다. “연결됐나?”
“언제든 말씀만 하시오.” 건은 긴장했지만, 눈빛에는 기대와 각오가 서려 있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검은 상자가 들려 있었고, 거기서 뻗은 전선이 레이더 마스트를 따라 하늘 높이 뻗어 있었다.
“저 구닥다리 조종사가 미끼를 물 것 같소?”
“역사는 늘 반복되지.” 피트가 다가오는 비행기를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 순간에도 건은 피트의 변화를 경이롭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새벽 무렵, 초췌하게 배에 올라온 피트와 지금 이 순간, 눈빛이 번쩍이며 싸움터에 선 전쟁마처럼 서 있는 피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문득, 몇 달 전 하와이 북쪽 태평양에서 미지의 해산을 찾아 떠났던 낡은 화물선 다나 게일의 함교가 떠올랐다. 그때도 피트의 얼굴에는 똑같은 표정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팔을 거머쥐는 강한 손아귀에 정신이 현재로 돌아왔다.
“엎드리시오. 충격파에 날아갈 거요. 내가 신호하면 바로 접촉하시오.”
노란 비행기는 이제 선회하며 배를 돌고 있었다. 방어를 시험하는 듯했다. 시끄러운 엔진음이 물 위를 찢고 지나가며 피트의 고막을 울렸다. 그는 빌린 쌍안경으로 비행기를 추적했다. 카우링 위 기관총의 섬광은 보이지 않았지만, 기체 날개와 동체 곳곳에 작은 원형 패치가 있었다. 조르디노가 갈비총으로 쏜 흔적이었다. 피트는 안경을 치켜들며 전선을 따라 하늘로 이어진 기상용 풍선을 바라봤다. 이제는 확신으로 변해가는 희망이 가슴에 차올랐다.
“차분히… 차분히… 곧 미끼를 물 거야.”
건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미끼라니, 저 풍선을 두고 하는 소리인가. 피트가 퍼스트 어템프트에 기상 장비가 있냐고 물었을 때 설마 풍선을 쓸 줄이야. 지금 하늘에 떠 있는 건, 헬륨 풍선에 지진 실험실에서 가져온 100파운드짜리 폭약을 매단 것이었다. 길게 늘어진 케이블과 전선은 배 뒤쪽 400피트, 수직으로는 800피트. 무려 축구장 네 개 길이였다. 원래 해저 탐사용 충격파를 만드는 폭약이, 이제는 비행기를 격추할 무기가 된 것이다.
엔진음은 점점 커졌다. 피트는 잠시 배를 향해 곤두박질칠 줄 알았지만, 궤적이 달랐다. 조종사는 풍선을 겨냥하고 있었다. 엔진음이 날카롭게 바뀌자,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총탄이 천을 갈기며 풍선은 주름진 자두처럼 구겨졌다가 축 늘어지며 바다로 떨어졌다. 노란 알바트로스는 곧장 퍼스트 어템프트를 향해 내리꽂혔다.
“지금이야!” 피트가 외치며 몸을 바닥에 붙였다.
건이 스위치를 눌렀다.
순간이 영원처럼 느리게 흘렀다. 그리고 엄청난 폭발음이 배를 용골에서 마스트까지 흔들었다. 수천 장의 유리가 한꺼번에 깨지는 듯한 굉음, 검붉은 불꽃 기둥이 하늘에 솟았다. 충격파는 두 사람의 내장을 망치처럼 밀어붙였다.
피트는 고통스럽게 몸을 일으켜 연기를 바라봤다. 그러나 비행기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눈을 높이 두었으나 허공엔 연기뿐. 곧 알았다. 신호와 폭발 사이의 미묘한 지연이 있었다. 그 덕에 알바트로스는 즉시 소멸되지 않고 엔진이 꺼진 채 미끄러지듯 하강하고 있었다.
쌍안경을 잡아든 피트는 불길과 파편을 뒤로 끌며 떨어지는 노란 비행기를 확인했다. 한쪽 하부 날개가 꺾여 나가자, 기체는 종잇조각처럼 공중에서 뒤집히며 곤두박질쳤다. 잠시 허공에 매달린 듯 멈추더니, 결국 바다 속으로 처박혔다. 연기 자취가 따스한 공기에 녹아 사라졌다.
“떨어졌다!” 피트가 외쳤다. “우리가 해냈어.”
멀리 구석에 기댄 채 있던 건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거리와 방위는?”
“정확히 우현 선수에서 두 마일.” 피트는 안경을 내리며 물었다. “괜찮소?”
“숨만 좀 가빠졌을 뿐.”
피트의 눈빛엔 냉담한 만족이 빛났다. “더블엔더를 내려 보내시오. 바로 다이버들을 투입해 잔해를 확인해야겠소. 유령의 정체를 알아내야 하니까.”
“알겠소. 내가 직접 지휘하리다. 단, 한 가지 조건. 당신은 당장 내 선실로 내려가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오.”
“당신이 선장이니 따르겠소.” 피트는 어깨를 으쓱하며 바다를 다시 바라봤다. 노란 알바트로스의 무덤을.
10분 후, 건은 네 명의 승무원과 함께 장비를 싣고 작은 고래잡이 배를 몰아 현장으로 떠났다. 배는 원을 그리지도 않고 곧장 추락 지점으로 향했다. 피트는 다이버들이 차례로 물에 뛰어들어, 수중에서 모여드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이제 가십시다, 소령.”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피트가 돌아보니, 배경이 수염으로 덮인 의사 얼굴이었다. “쫓아다녀 봐야 소용없습니다, 닥터. 결혼할 생각은 없으니까.” 피트는 빙긋 웃으며 농담했다.
그러나 의사는 웃지 않았다. 말없이 건의 선실을 가리켰다.
피트는 체념한 듯, 상처투성이 몸을 의사에게 맡겼다. 선실 안에서 그는 희미하게 저항했지만, 진통제는 끝내 그의 정신을 덮쳤다. 잠시 후, 피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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