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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피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지오르디노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루이스를 향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이상하군요.”
“왜 그렇지?” 루이스가 시가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타소스는 수에즈 운하 본 항로에서 최소한 북쪽으로 500마일은 떨어져 있습니다.” 피트는 느리게 말을 이었다. “폰 틸이 왜 자신의 배들을 일부러 1,000마일이나 우회시키는 걸까요?”
“몰라.” 지오르디노가 성가신 듯 대꾸했다. “솔직히 말해, 전혀 관심도 없어. 이제 그 말장난 좀 그만하고, 네 야간 모험담이나 털어놓으라고. 그 폰 틸이란 작자가 대체 지난밤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피트는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켰다. 근육통이 뻐근하게 몰려와 얼굴이 일그러졌다. 입 안은 모래와 자갈을 씹은 듯 텁텁했고, 목은 말라붙어 있었다. 그 멍청한 꼬마는 도대체 언제 맥주를 가져오는 거야? 피트는 지오르디노의 담배를 보고 손짓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켜자 입 안의 맛은 더욱 형편없이 씁쓸해졌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비꼬듯 웃었다.
“좋아,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해 주지. 대신 내가 미친놈처럼 보이더라도 마음껏 쳐다보라구. 이해하겠어.”
숨 막히는 열기가 번지는 선실에서, 손으로 만지기도 힘들 만큼 뜨겁게 달궈진 철제 벽 안에서, 피트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테리가 자신을 삼촌인 폰 틸에게 고의로 넘겨주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하게나마 품었던 의심까지도 말해버렸다. 루이스는 가끔 고개를 끄덕였으나 아무런 코멘트는 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딴 데 있는 듯하다가도, 피트가 장면을 생생히 묘사할 때면 잠시 돌아오곤 했다. 지오르디노는 배의 느린 흔들림에 몸을 기댄 채, 좁은 선실을 천천히 서성였다.
피트가 이야기를 마쳤을 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십 초, 이십 초, 삼십 초가 흘렀다. 땀과 담배 연기, 시가 냄새로 공기는 눅눅하고 무겁게 고여 있었다.
“알아.” 피트가 지친 듯 말했다. “동화 같고,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리지. 하지만 사실 그대로야. 빠뜨린 건 하나도 없어.”
“사자굴 속의 다니엘이군.” 루이스가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네 얘기가 황당하게 들리는 건 사실이지만, 묘하게도 사실들이 널 뒷받침하고 있어. 네가 그 골동품 비행기가 이 배를 공격할 거라고 예측했고, 심지어 그 시각까지도 맞췄으니까.”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네 말이 옳았어. 자네가 말한 그대로였네.”
“폰 틸이 암시를 줬지. 나머지는 단순한 추측이었어.”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돼.” 지오르디노가 끼어들었다. “겨우 NUMA의 연구선을 몰아내겠다고 낡은 복엽기를 동원해 섬과 바다를 갈겨댄다니, 너무 복잡하지 않나?”
“꼭 그렇지만은 않아.” 피트가 대꾸했다. “NUMA의 과학 조사에 대한 그의 사보타주가 계획대로 먹히지 않자 다른 수단을 찾아야 했던 거야.”
“뭘 그리 막은 거지?” 지오르디노가 물었다.
“건이 고집을 부린 거지.” 피트가 고르게 미소 지었다. “자연스러운 사고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절대 닻을 올리고 철수하지 않았어.”
“잘했군.” 루이스가 툭 내뱉더니, 기침을 하며 말을 이으려 했지만 피트는 끊지 않고 계속 말했다.
“폰 틸 입장에선 다른 방법이 필요했어. 현대식 전투기를 브래디 기지에 보냈다면 국제적 대형 사건으로 번졌을 거야. 그리스 정부, 러시아, 아랍 국가들까지 전부 휘말렸을 테고, 이 섬은 당장 군인들로 가득 찼겠지. 하지만 낡은 알바트로스를 쓰니 어땠나? 미국은 체면을 구기고 공군은 수백만 달러 손실을 입었지만, 외교적 위기와 무력 충돌은 피할 수 있었어. 폰 틸은 그 점에서 영리했지.”
“흥미롭군, 메이저.” 루이스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평했다. “흥미롭고… 교훈적이기도 하지. 하지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
“무슨 질문입니까, 대령님?” 피트가 처음으로 ‘sir’라고 붙였고, 그 말이 왠지 불쾌하게 느껴졌다.
“대체 저 바다 위 알량한 과학자들이 뭘 찾고 있길래 이 난리가 벌어진 건가?”
“물고기요.” 피트가 빙긋 웃었다.
루이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굵은 시가를 거의 떨어뜨릴 뻔했다.
“뭐라고?”
“물고기라구요.” 피트가 되풀이했다. “별명은 ‘티저’.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희귀종이지. 건은 그걸 잡는 게 금세기 최고의 학문적 성과가 될 거라고 장담하더군.” 피트는 스스로도 다소 과장된 듯 생각했지만, 루이스의 허풍스러운 태도가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루이스의 얼굴은 보기 싫을 만큼 일그러졌다.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맡은 기지가 고철덩이 비행기 때문에 쑥대밭이 되고, 전역 후 내 군 경력까지 말아먹을 판인데, 그 이유가 고작 물고기라 이건가?”
피트는 최대한 진지하게 보이려 애썼다.
“그렇습니다, 대령님. 딱 그렇게 말할 수 있겠군요.”
루이스의 얼굴은 절망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한탄했다.
“세상에… 이건 불공평해. 도저히 말이 안 돼…”
그때 금속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선실 소년이 쟁반에 맥주 세 병을 들고 들어왔다.
“계속 가져와.” 피트가 명령했다. “그리고 차갑게 유지해.”
“예, 알겠습니다.” 소년은 쟁반을 책상 위에 놓고 허겁지겁 나갔다.
지오르디노가 루이스에게 맥주를 건넸다. “자, 대령님. 브래디 기지 걱정은 잊고 이걸로 식히시죠. 어차피 그 비용은 죄다 납세자 몫이잖습니까.”
“그동안 난 아마 심근경색이나 맞겠지.” 루이스가 시무룩하게 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낡은 튜브처럼 풀썩 주저앉았다.
피트는 얼음에 서린 물방울이 흐르는 병을 들어 차가운 표면을 이마에 굴렸다. 붉은색과 은색 라벨은 비뚤게 붙어 있었고, 그 위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리스 왕실 납품 지정.”
지오르디노가 맥주를 들이켜며 물었다. “그럼, 이제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피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 많은 게 건이 알바트로스 잔해에서 뭘 찾아내느냐에 달렸지.”
“짐작 가는 건 없어?”
“지금은 전혀.”
지오르디노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짓눌렀다. “적어도 어제 이맘때보단 훨씬 앞서 있어. 제1차 대전 유령 조종사는 확실히 끝장냈고, 배후도 거의 짐작이 가잖아. 그리스 당국에 맡겨서 폰 틸만 잡으면 되는 거 아냐?”
“그걸론 부족해.” 피트가 심각하게 말했다. “동기가 없이는 살인죄 기소도 안 되지 않나. 마찬가지야. 이유가 있어야 해. 우리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이유라도, 폰 틸이 이 모든 파괴와 음모를 감행한 동기가 반드시 있을 거야.”
“보물 때문은 아닐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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