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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소스인들은 연극을 무엇보다 사랑했다. 그것을 교육의 필수라 여겼으며, 심지어 거리의 거지까지 모두 극장으로 불려나왔다. 새로운 본토의 연극이 초연되는 날이면 도시의 가게는 모조리 문을 닫았고, 장사는 모두 멈췄으며, 죄수들까지 풀려났다. 다른 대부분의 공공 행사에서 배제되던 창녀들조차, 그날만큼은 극장 입구 덤불 속에서 아무런 법적 제재 없이 ‘영업’을 허락받았다.
그리스 관광청 가이드는 설명을 잠시 멈추고, 경악한 여인들의 표정을 보고는 흡족한 듯 입꼬리를 치켜세웠다. 언제나 똑같았다. 여인들은 부끄러운 척하며 속삭였고, 버뮤다 반바지 차림에 카메라와 노출계로 도배한 남자들은 껄껄 웃으며 서로의 옆구리를 찌르고 의미심장한 윙크를 주고받았다.
가이드는 멋지게 기른 콧수염을 꼬아 올리며 무리를 살폈다. 늘 그렇듯 살찐 은퇴 사업가와 그들의 살찐 아내들이 끼어 있었고, 이들은 역사의 의미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그저 고향의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의 눈길은 알함브라에서 온 네 명의 여교사들에게 머물렀다. 셋은 안경을 낀 평범한 외모였고, 끊임없이 낄낄거렸다. 하지만 넷째, 붉은 머리에 긴 다리, 볼륨 있는 몸매를 가진 여자는 달랐다. 미국 여자들 특유의 당당한 체형. 눈빛은 노골적으로 유혹적이었다. 훌륭한 ‘가능성’이었다. 오늘 밤 달빛 아래 유적지를 개인적으로 안내한다는 명목으로 불러낼 생각이었다.
가이드는 몸에 꽉 끼는 재킷의 옷깃을 당기고, 붉은색 넓은 허리띠 속으로 단정히 집어넣었다.
그러다 시선을 군중 뒤쪽에 두 남자에게 멈췄다. 그는 곧 불편한 기운을 느꼈다. 이토록 흉악해 보이는 사내 둘은 본 적이 없었다. 가슴을 내민 체구 작은 쪽은 이탈리아인처럼 생겼고, 인간이라기보다 짐승 같았다. 더 큰 사내는 날카로운 초록 눈빛을 가졌는데, 세련된 기품 속에서도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코와 손에 감긴 붕대를 보니 싸움을 즐기는 독일인일 가능성이 컸다. ‘이런 두 놈이 왜 따분한 유적지 관광을?’ 가이드는 의아해했다. 곧 스스로 해답을 찾았다. 틀림없이 배에서 도망친 선원들이리라.
“이 극장은 1952년에 발굴됐습니다.” 가이드는 하얀 이를 번쩍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에 파묻혀 있었기에, 모습을 드러내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지요. 오케스트라 바닥의 기하학적 모자이크를 보십시오. 천연 자갈로 만들었고, 코에누스의 서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낡고 바랜 무늬를 잠시 들여다보는 사이, 그는 숨을 고르며 다음 말을 준비했다.
“자, 이제 왼쪽 계단을 오르면 포세이돈 신전으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더크 피트는 지친 관광객 행세를 하며 돌계단에 털썩 앉았다. 관광객들의 머리가 계단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그는 시계를 보았다. 네 시 반. 퍼스트 어템프트를 떠나 알 지오디노와 함께 림니아스에 들어온 지 꼭 세 시간째였다. 피트 옆에서 작은 체구의 대위가 가방을 들고 안절부절못하며 서성이고 있었다. 관광 무리가 그들을 잊고 떠났음을 확인한 피트는 조용히 손짓하며 극장 무대 입구를 가리켰다.
가슴의 붕대가 거슬려 몇 번이고 손을 올렸다가 피트는 씩 웃었다. 배의 의사도, 건도 귀환을 완강히 막았지만, 피트가 선원 전부와 싸워서라도 헤엄쳐 돌아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의사는 손을 내저으며 방을 뛰쳐나갔다. 결국 이 ‘정찰 작전’에서 그의 몫은, 소규모 주막에서 와인을 계산하며 관광 모임이 시작되기를 기다린 것이 전부였다. 지오디노는 녹슨 프로펠러 축에 욕지기를 하며 매달렸고, 기어이 낡은 배를 끌어내어 림니아스 항에 정박시켰다. 다행히 주인이나 경찰은 눈치채지 못했다. 배를 제자리에 묶어두고 해변을 건너 마을로 들어가는 데는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때 피트는 고집스레 길을 돌아, 당나귀 아테나가 여전히 우체통 옆에 묶여 있는지 확인했다. 당나귀는 없었다. 대신 맞은편 건물 위에 그리스 관광청이라는 영어 간판이 반짝였다. 나머지는 쉬웠다. 관광단에 끼어들어 고대 원형극장으로 향하는 코스를 선택한 것이다. 그 속에 섞이면, 폰 틸의 은신처로 들어가는 데 완벽한 위장이 된다.
지오디노는 땀에 젖은 이마를 소매로 훔쳤다.
“대낮에 불법 침입이라니. 보통 도둑들처럼 밤에 움직이면 안 되나?”
“서둘러야 해.” 피트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오늘 아침 알바트로스가 파괴된 뒤, 지금 이 시각 내가 살아서 나타날 거라곤 폰 틸이 꿈에도 생각 못할 테니까.”
피트의 눈에는 분노와 복수가 불타고 있었다. 지오디노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건이 실망스럽게 비행기 잔해가 사라졌다고 전한 순간부터, 피트의 얼굴에는 체념과 독기가 굳어 있었다. 지오디노는 그가 의무감에 이끌리는지, 아니면 복수심에 미쳐 달려드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길은 없어?” 지오디노가 물었다.
“없어.” 피트가 단호히 잘랐다. “고래가 알바트로스를 삼켜버린 게 아닌데, 흔적조차 없다는 건 말이 안 돼. 조종사의 신원을 알았다면 의문 몇 개는 풀렸을 거야.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야. 폰 틸의 저택을 뒤지는 거지.”
“차라리 공군 헌병을 끌고 들이닥치면 어떨까?” 지오디노가 못마땅하게 중얼거렸다.
피트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다시 계단 쪽을 올려다보았다. 지오디노의 말이 옳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역시 답답했고, 작은 단서라도 잡기 위해 매달리고 있었다. 앞으로 한 시간이 중요했다. 들키지 않고 저택에 들어가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 테리가 삼촌의 음모에 가담했는지 여부까지, 모든 것이 걸려 있었다. 피트는 다시 지오디노를 바라보았다. 굳게 다문 입술, 잔뜩 긴장한 두 손, 그리고 단단한 눈빛. 위험 앞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료였다.
“알아둬, 여긴 그리스 땅이야.” 피트가 낮게 말했다. “우린 남의 집을 부술 권리가 없어. 괜히 정부를 곤란에 빠뜨릴 순 없지. 만약 당국에 잡히면, 우린 그냥 관광 도중 술에 취해 지하 통로에 잘못 들어간 선원일 뿐이야. 그 정도 거짓말은 먹힐 거다.”
“그래서 무기도 안 챙긴 거군?”
“맞아.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불필요한 문제는 만들지 않아야 해.” 피트가 허물어진 아치 앞에 멈춰 섰다. 낮에 보니 철창이 어젯밤만큼 위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야.” 그는 녹슨 쇠살에 붙은 말라붙은 핏덩이를 툭 떼어냈다.
“이걸 통과했다고?” 지오디노가 놀라며 물었다.
“식은 죽 먹기지.” 피트가 씩 웃었다. 곧 표정이 굳어졌다. “서둘러. 다음 관광단이 오기까지 45분뿐이야.”
지오디노는 곧 묵직한 작업에 몰입한 사람의 얼굴이 되었다. 그는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차례대로 꺼내 수건 위에 정리했다. 이어 작은 TNT 두 개를 철창에 50센티 간격으로 붙이고, 기폭 장치를 꽂은 뒤 두꺼운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전선까지 감싸 마치 번데기처럼 둔탁한 형태가 되자,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작업은 채 6분도 걸리지 않았다. 피트를 향해 손짓하자, 두 사람은 안전한 돌벽 뒤로 몸을 숨겼다.
“소리가 멀리까지 들리진 않겠지?” 피트가 물었다.
“잘 됐다면 백 미터 밖에선 장난감 총 소리 정도일 거야.”
피트는 주위를 둘러본 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서비스 입구로 들어가는 게 체면에 걸리지 않길 바란다.”
“지오디노 가문은 꽤 개방적이거든.” 지오디노도 웃어 보였다.
“준비됐나?”
“원한다면.”
두 사람은 낡은 벽 아래 몸을 웅크리고 손으로 돌을 눌렀다. 지오디노가 기폭 장치의 스위치를 돌렸다.
폭발음은 그저 ‘퍽’ 하고 울릴 뿐이었다. 연기나 불꽃도, 귀를 찢는 굉음도 없었다. 그저 짧고 둔탁한 소리 하나.
곧장 달려가 확인했을 때, 철창은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지오디노가 발끝으로 차자, 윗부분이 덜컥 부러져 안쪽으로 휘어졌다. 그는 치통 같은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천천히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다음 묘기는 말이지…”
“그만둬.” 피트가 재빨리 말을 끊었다. “시간 없어. 들어가자.”
피트는 먼저 구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어젯밤은 나가는 데 여덟 시간이 걸렸지만, 이번엔 들어가는 데 여덟 분이면 충분하다.”
“지도라도 있나?”
“그보다 나은 게 있지.” 피트는 낮게 말했다. “손전등을 건네.”
지오디노는 가방에서 지름 15센티는 되는 노란 손전등을 꺼내 피트에게 넘겼다.
“꽤 크군. 뭐야, 그건?”
“에일리언 다이브 브라이트. 900피트 수심까지 견디는 방수 알루미늄 케이스에, 10만 촉광짜리 빔을 뿜어내지. 다이빙용으로 빌렸지만, 오늘은 다른 데 쓸 거야.”
피트가 불빛을 비추자, 어두운 통로가 드러났다.
“지도 따위 필요 없는 이유를 곧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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