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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음모

지중해의 음모 #028

Escaper 2025. 9. 2.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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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2

피트가 씩 웃었다.

“이 사람, 진짜로 쏴 버릴 수도 있어요.”

자킨투스의 눈에 사색적인 빛이 스쳤다. 그러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책상 밑의 숨겨진 버튼을 눌렀다. 즉시 문이 벌컥 열리며 제노가 글리센티 권총을 움켜쥔 채 나타났다.

“문제라도, 경감님?”

자킨투스는 묻는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총 집어넣고, 수갑을 풀고, 어… 지오디노 씨를 화장실로 안내해 주게.”

제노의 눈썹이 치켜올랐다. “확실합니까—”

“괜찮네, 오랜 친구여. 이 사람들은 더는 죄수가 아니오. 이제는 손님이야.”

제노는 한마디 말도 없이 권총을 집어넣고 수갑을 풀었다. 그는 지오디노를 데리고 복도로 나갔다.

피트가 파란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이제는 내가 묻겠소. 내 아버지와 무슨 관계지?”

“피트 상원의원은 워싱턴에서 명망 높은 인물이지. 몇몇 상원 위원회에서 성실하게 봉직하고 계셔. 그중 하나가 마약위원회요.”

“그래도 당신이 거기서 어떻게 얽히는지는 설명이 안 되는데.”

자킨투스는 낡은 담배 파우치를 꺼내 파이프에 담배를 채웠다. 작은 동전으로 곱게 눌러 다졌다.

“마약 수사에서 오래 경험을 쌓은 덕에, 나는 종종 당신 아버지 위원회와 내 고용주 사이에서 연락관 역할을 해왔지.”

피트가 의아한 눈길을 들었다. “고용주라니?”

“그래, 삼촌 샘께서 내 월급을 주신다네. 당신에게 주듯 말이야.” 자킨투스가 씩 웃었다. “늦은 자기소개를 사과하지. 난 헤라클레스 자킨투스, 미 연방 마약국 소속이오. 친구들은 그냥 ‘잭’이라 부르지. 당신도 그렇게 불러주면 영광이겠네.”

그 순간 피트의 마음에서 의혹은 사라지고, 확신이 바다의 차가운 파도처럼 온몸을 덮었다. 근육이 풀리며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긴장되어 있었는지, 얼마나 알 수 없는 위험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는 떨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며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영역을 좀 벗어난 건 아니오?”

“지리적으로는 그렇지만, 직무상으로는 아니지.” 자킨투스는 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한 달 전쯤, 인터폴을 통해 제보가 들어왔네. 상하이에서 막대한 양의 헤로인이 화물선에 실렸다는 보고였어.”

“브루노 폰 틸의 배였군?”

“어떻게 알았지?” 자킨투스의 목소리에 놀람이 섞였다.

피트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그냥 찍은 거요. 방해해서 미안하군. 계속하시지.”

“그 배는 미네르바 라인 소속 화물선, 퀸 아르테미시아호였소. 세상에 흔한 콩, 냉동 돼지고기, 차, 종이, 카펫 따위를 실은 것처럼 보이는 적하목록으로 상하이를 떠났지.” 자킨투스는 피식 웃었다. “잡다하긴 해.”

“목적지는?”

“첫 기항지는 실론의 콜롬보였네. 거기서 중국산 물품을 내리고 흑연과 코코아를 새로 실었지. 마르세유에서 연료 보급을 한 뒤, 최종 기항지는 세인트로렌스 수로를 거쳐 시카고였네.”

피트는 잠시 생각했다.

“왜 시카고지? 뉴욕이나 보스턴 같은 동부 항구들이 훨씬 익숙할 텐데.”

“왜 안 되겠나?” 자킨투스가 맞받았다. “시카고는 미국 최고의 물류·운송 중심지야. 130톤의 순도 높은 헤로인을 퍼뜨리기엔 최적이지.”

피트의 얼굴엔 믿기지 않는 표정이 새겨졌다.

“불가능해. 그 정도 양을 세관 검사에서 어떻게 빠져나간단 말이오.”

“그럴 수 있는 자가 딱 한 명 있지. 브루노 폰 틸.” 자킨투스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피트의 몸에 냉기가 스며들었다.

“물론 그건 본명이 아니야. 과거 어딘가에 묻혀 버렸지. 그는 신출귀몰한 밀수업자, 인류 최대의 고통을 퍼뜨린 장본인. 캡틴 키드, 남부연합의 봉쇄 돌파자, 모든 노예상들을 한데 모아도 그의 조직엔 못 미쳐.”

“세기의 악당이라도 되는 듯 묘사하는군.” 피트가 던졌다. “그 정도로 대단한 짓을 했단 말이오?”

자킨투스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중남미에서 지난 20년간 일어난 수많은 유혈혁명, 그 뒷배엔 늘 유럽에서 건너온 비밀 무기 수송이 있었지. 1954년의 스페인 금괴 도난 사건 기억하나? 정부 비밀 금고에서 사라진 금이 인도의 암시장에서 쏟아져 나왔어. 어떻게 7천 마일을 밀반출했을까? 아직도 수수께끼지만, 그날 밤 바르셀로나를 떠난 미네르바 라인 화물선이 뭄바이에 도착한 직후였지.”

그는 의자에서 삐걱 소리를 내며 몸을 돌려 피트를 마주했다. 그 멜랑콜리한 눈이 멀리 어디를 응시했다.

“2차 대전 막바지, 독일이 항복하기 직전. 85명의 고위 나치가 같은 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나타났지. 유일한 선박 도착은 미네르바 라인 화물선. 또 1954년 여름, 나폴리에서 소풍을 간 여학생 한 버스가 통째로 사라졌지. 4년 뒤, 카사블랑카 뒷골목에서 그중 한 명이 발견됐어. 완전히 미쳐 있었지. 그녀의 사진을 봤는데, 어른도 울 만큼 끔찍했어.”

“그녀의 증언은?” 피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굴뚝에 커다란 M자가 그려진 배에 실려 갔다는 말만 남겼지. 나머지는 다 횡설수설이었어.”

피트는 더 들을 것을 기다렸으나, 자킨투스는 파이프를 다시 지펴 향긋한 연기를 피워 올릴 뿐이었다.

“인신매매라니, 끔찍한 장사군.” 피트가 이를 악물었다.

자킨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수백 건 중 겨우 네 사례일 뿐. 인터폴 파일을 그대로 읊는다면 꼬박 한 달은 걸릴 거요.”

“그럼 폰 틸이 직접 모든 걸 지휘한다고 보오?”

“아니지. 그 늙은 악마는 너무 교활해서 직접 손을 대진 않아. 그는 단지 수송을 제공할 뿐이야. 그게 그의 게임이고, 규모는 어마어마하지.”

“그런데 왜 아직도 잡히지 않은 거요?” 피트의 목소리는 분노와 혼란이 뒤섞였다.

“부끄럽지만, 대답할 수 없네.” 자킨투스가 고개를 저었다. “세상의 모든 수사기관이 달려들었지만, 그는 모든 덫을 빠져나가고, 잠입 요원은 모조리 살해됐어. 그의 배는 수천 번 수색됐지만 불법 흔적은 한 번도 안 나왔지.”

피트는 파이프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렇게까지 영리할 리 없어. 인간이라면 반드시 잡힐 구멍이 있지.”

“하느님도 아실 거야. 우린 가진 수단을 다 썼지. 전자 탐지기까지 총동원해 미네르바 배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어. 20명은 넘는 수사관이 인생을 바쳐 그 자를 쫓았네. 모두 실력자였지.”

피트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자킨투스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런데 왜 이 모든 얘길 내게 털어놓는 거요?”

“당신이 우릴 도울지도 모른다고 믿으니까.”

피트는 가슴에 감긴 붕대를 긁적이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미끼는 물어볼 만하지.

“어떻게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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