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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음모

지중해의 음모 #032

Escaper 2025. 9. 4.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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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자가 동시에 피트를 캐묻는 눈길을 보냈다.

피트는 웃으며 담배를 둑비탈 아래로 튕겨 던졌다. “때가 왔도다, 바다코끼리가 말했듯—이제 별별 얘기를 늘어놓을 시간. 다들 모여, 더크 피트, 발가벗은 고양이 도둑의 첩보담을 들어보시지.”

피트는 마침내 트럭에 등을 기대고 조용히 입을 닫았다. 잠시 동안 그는 앞에 선 사내들의 사색어린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 그렇다는 거다.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깔끔한 세팅이지.” 그가 씁쓸하게 웃었다. “퀸 아르테미시아는 실상 속 빈 강정이야. 그래, 짠물이든 파도를 가르며 화물을 싣고 내리긴 하지. 하지만 거기까지가 정상 화물선과 이 배가 닮은 유일한 대목이야. 배가 낡은 건 사실이지만, 강철 껍질 아래엔 최신식 중앙통제 시스템이 뛰고 있지. 지난해 태평양에서 본 고물배에도 같은 장비가 달려 있었어. 큰 승무원도 필요 없어. 여섯, 일곱이면 뚝딱이지.”

“소란도 없고, 번거로움도 없고.” 지오디노가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정확해.” 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칸마다, 선실마다 무대 장치처럼 꾸며놨지. 기항지에 닿으면 승무원들이 무대 뒤에서 불쑥 나타나 배우로 변신하는 거야.”

“이 촌놈의 막눈을 용서하시오, 소령.” 촌부 같은 말투로는 가릴 수 없는 옥스퍼드 억양이 제노의 목소리에 묻어났다. “장거리 항해 중 필요한 정비 없이 그 배가 어떻게 상업 운항을 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사적(史蹟) 시설과 같다고 보면 돼.” 피트가 설명했다. “이를테면 유명한 성채 말이야. 벽난로엔 불이 타고, 수도도 잘 나오고, 정원은 늘 말끔히 다듬어져 있어. 주중 닷새는 문을 닫지만, 주말엔 개방하지. 관광객—그러니까 이 경우엔 세관 검사관들을 위해.”

“관리인은요?” 제노가 고개를 갸웃했다.

“관리인들은…” 피트가 낮게 말했다. “지하실에 살지.”

“지하실엔 쥐밖에 안 삽니다.” 다리우스가 퉁명스레 거들었다.

“아주 적확한 지적이야, 다리우스.” 피트가 흡족해했다. “지금 상대하는 건 두 발 달린 쥐들이니까.”

“지하실, 무대 장치, 성채라…” 자킨투스가 성급히 다그쳤다. “선체 어딘가에 파묻힌 승무원들…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요점만 말해.”

“지금 하려는 중이야. 우선, 승무원들은 선체 안에 있는 게 아니야. 선체 아래에 있지.”

자킨투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럴 리가 없어.”

“반대로 말이지.” 피트가 씩 웃었다. “퀸 아르테미시아가 임신만 했다면 충분히 가능해.”

짧은 침묵,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 네 사람이 모두 허탈하게 피트를 응시했다. 침묵을 깬 건 지오디노였다.

“뭔가를 말하려는 건 알겠는데, 도통 귀에 못 박히는군.”

“자크가 폰 틸의 밀수 방법을 ‘영리’하다고 했지?” 피트가 말했다. “맞아. 영리함의 요체는 단순성에 있어. 퀸 아르테미시아와 미네르바 사의 다른 배들은 독립 운항도 가능하지만, 선체에 접속된 ‘위성’ 선박의 통제를 받을 수도 있어. 곰곰이 생각해봐. 말처럼 우스꽝스럽지 않아.” 피트는 확신 어린 어조로 말을 이었고, 의혹은 조금씩 금이 갔다. “그 배가 항로에서 이틀이나 벗어나 폰 틸에게 손이나 흔들려고 왔겠어? 어떤 식으로든 접촉이 있었던 거야.” 그는 자킨투스와 제노를 번갈아 보았다. “당신네는 저택을 지켜봤지만 신호 같은 건 못 봤지.”

“드나드는 자도 없었고.” 제노가 보탰다.

“배도 마찬가지야.” 지오디노가 피트를 힐끗했다. “네놈 말곤 모래사장에 발자국 찍은 자가 없었지.”

“다리우스와 난 만장일치.” 피트가 말했다. “그는 무전을 잡지 못했고, 나는 무전실이 비어 있는 걸 봤지.”

“이제 요령이 잡히는군.” 자크가 생각에 잠긴 어조로 말했다. “선박과 폰 틸 사이 통신은 물밑에서 이루어졌다는 소리. 그런데도 난 아직 위성 선박 운운하는 가설이 썩 마음에 닿진 않아.”

“그럼 이걸 들어봐.” 피트가 잠시 숨을 골랐다. “먼 바다를 장거리로 이동하고, 승무원을 태우며, 헤로인 130톤을 적재할 수 있고, 세관이나 마약국의 검사를 절대 받지 않을 ‘선박’. 논리적으로 가능한 답은 하나—완전한 규모의 잠수함이야.”

“그럴싸하지만, 통과는 못 시키지.” 자크가 고개를 저었다. “우린 미네르바 사 배들의 수면선 아래를 잠수부들로 백 번은 훑었네. 잠수함은커녕 그 비슷한 것도 못 찾았어.”

“아마 앞으로도 못 찾을걸.” 피트의 입안은 바짝 말랐고, 담배는 탄 판지 맛이 났다. 그는 꽁초를 길 한가운데로 튕겨, 벌겋게 달군 심지 아래 타르가 검은 점으로 스미는 걸 지켜봤다. “방법이 잘못된 게 아니야. 실례를 용서한다면—네네 잠수부들이 ‘배를 놓친’ 거지. 문제는 타이밍이야.”

“배가 접안하기 전에 잠수함을 분리한다는 뜻인가?” 자킨투스가 물었다.

“대체로 그래.” 피트가 수긍했다.

“그리고 나선? 어디로 간다는 거지?”

“그건 퀸 아르테미시아의 상하이 출항부터 되짚어보자.” 피트가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황포강 부두에 서서 적재 작업을 지켜봤다면, 평범한 상차 장면만 보였을 거야. 크레인이 포대를 들어 올리고—가루를 다루기엔 포대가 제일 편해—선창으로 내렸겠지. 마약이 먼저 실렸지만, 선창에 그대로 남진 않았어. 감춰둔 해치를 통해 잠수함으로 옮겼을 거야. 세관 탐지에 걸리지 않을 위치로. 그다음 정식 화물이 선창을 채우고, 배는 실론으로 출항. 거기서 콩이랑 차를 내리고 코코아와 흑연—역시 정상 화물—을 실었지. 타소스로 샌 건 다음. 아마 폰 틸의 지시를 받으러. 그리고 마르세유에서 급유, 최종 목적지는 시카고.”

“뭔가 걸리는데.” 지오디노가 낮게 중얼거렸다.

“뭔데?”

“난 잠수함 전문가가 아니라서 말인데, 어찌 그게 화물선 배 밑에 ‘아기 캥거루’처럼 붙을 수 있으며, 26만 파운드짜리 약물을 우짤 수 있는지 감이 안 잡혀.”

“개조가 필요하지.” 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함교탑이며 돌출물들을 걷어내고, 상갑판이 모선의 용골에 평평히 밀착되도록 손보는 데 대단한 공학이 필요한 건 아니야. 2차대전형 함대잠수함의 표준 배수량은 1,500톤, 전장은 300피트가 넘고, 선체 높이는 10피트, 빔은 27피트—대충 교외 단독주택 두 채를 나란히 놓은 덩치지. 어뢰실, 80명 승조원 침상, 불필요한 부속을 치워내면, 헤로인을 쌓아둘 공간은 남아돌아.”

자킨투스는 묘한 표정으로 피트를 바라봤다. 깊은 숙고가 얼굴에 드리웠다가, 마침내 진짜 ‘이해’의 흔적이 스몄다.

“묻겠네, 소령.” 그가 물었다. “잠수함을 달고 가는 퀸 아르테미시아의 속력은 어느 정도인가?”

피트는 잠깐 셈을 했다. “시간당 12노트쯤. 짐이 없다면 순항은 15에서 16노트에 가깝겠지.”

자킨투스가 제노 쪽으로 돌았다. “소령의 추리가 들어맞을 가능성이 커.”

“무슨 생각인지 아오, 나의 경감.” 제노의 거대한 콧수염 아래로 이가 드러났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미네르바 선단의 순항 속력 편차에 고개를 갸웃했지요.”

자킨투스의 시선이 피트에게 돌아왔다. “마약 하역—언제, 어떻게 떼어내지?”

“밤, 고조 때. 낮엔 위험해. 잠수함이 상공에서 들킬 수—”

“그 대목은 맞네.” 자킨투스가 끼어들었다. “폰 틸의 화물선들은 항상 해 진 뒤 입항하도록 편성이 되어 있지.”

“하역은…” 피트는 끼어듦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항만 입구 통과 직후 잠수함을 풀어. 함교탑도 잠망경도 없다면, 수면의 소형정이 가이드해야지. 여기서 유일한 실패 리스크가 생겨. 어두운 물살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배에 들이받히는 거.”

“당연히 수로 구석구석을 꿰는 도선사를 태웠겠지.” 자킨투스가 깊게 생각했다.

“최상급 도선사는 폰 틸 작전의 필수조건이야.” 피트가 동의했다. “얕은 바닥의 장애물을 피해가는 건, 어설픈 요트맨이 밤바다에서 흉내 낼 일이 아니지.”

“다음 과제는…” 자킨투스가 천천히 말했다. “들키지 않고 마약을 하역·분배할 장소가 어디냐는 것.”

“버려진 창고는 어때?” 지오디노가 제안했다. 눈은 감겨 있었고, 겉보기에 졸고 있는 듯했지만, 피트는 오랜 경험으로 그가 한 마디도 놓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피트가 웃었다. “셜록 홈스 시대의 악당이나 폐창고에 들락거리지. 수변부지는 황금이야. 놀고 있는 건물은 오히려 즉각 의심을 부르지. 게다가—자크가 더 잘 알겠지만—수사관이라면 맨 먼저 살피는 곳이 창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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