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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건이 꼼짝 않고 십 초 동안 피트를 응시했다. 표정은 없었다. “내가 무슨 부탁을 받았는지, 그 심각성을 자네도 알고 있겠지? 이 배에 타고 있는 대부분은 과학자야, 특전사가 아니라. 염분측정기나 난센 병, 현미경만 쥐어주면 호랑이들이지만, 남의 배를 칼로 헤집거나 작살로 배꼽을 꿰뚫는 솜씨는, 솔직히 말해, 기대할 게 못 돼.”
“그럼 승무원들은?”
“술집 싸움에선 믿음직스러운 사내들이지. 하지만 대부분의 직업 선원답게, 수면 아래의 모든 활동은 질색이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려 들어. 마스크 쓰고 물에 들어가질 않지.” 건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군, 더크. 너무 무리한 요구야—”
“그만 장난은 집어치워.” 피트가 버릇없이 쏘아붙였다. “여긴 리틀빅혼이 아니고, 나도 자네더러 제7기병대를 데리고 시팅불하고 수 족 전체랑 맞붙으라곤 안 했어. 똑바로 보라고, 여기서 오십 마일도 안 되는 데에 미네르바 라인 소속 화물선 한 척이 핵폭탄 못지않게 치명적인 화물을 싣고 에게해를 가르고 있어. 그만한 양의 헤로인이 미국 시장에 풀리면, 우리 손주들 때까지 문화적 충격파의 후유증에 시달릴 거야. 상상만 해도 악몽이지.”
피트는 말을 잠시 멈춰 그 여운이 스며들게 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마약국과 세관은 기다리고 있어. 함정도 쳤지. 모든 게—그게 큰 ‘만약’이긴 하지만—모두 뜻대로만 굴러간다면, 마약과 밀수범들, 게다가 미국 전역의 암거래상 절반은 깔끔하게 한 그물에 담겨 감방에 짱박히게 될 거야.”
“그럼 문제는 뭔가?” 건이 다그쳤다. “다이버들은 어디에 끼어들지?”
“그냥…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하나 있어. 폰 틸은 수십 년 동안, 말하자면 ‘현행범’으로 잡히기엔 한 해리도 가까운 적이 없어. 합법적으로, 우리 쪽 요원들은 미국의 대륙붕에 닿기 전까진 그 배에 승선할 수 없어. 앞으로 3주나 남았지. 그쯤 되면 폰 틸이 인터폴의 지나친 신중함을 눈치챌 수도 있어. 그러면 착하게 덫으로 들어가기보다, 마지막 순간에 항로를 바꾸거나 대서양 한복판에 마약을 던져버릴 거야. 그럼 마약국 요원이며 세관 검열관이며 할 일 없이 손가락이나 장난치게 되는 거고. 확실하고도 안전한 길은 하나, 지금, 지중해를 떠나기 전에 그 배를 멈추는 수밖에 없어.”
“자네가 방금 말했잖나. 법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방법이 하나 있지.” 피트가 담배를 길게 빨아, 연기를 천천히 콧잔등으로 흘려보냈다. “아침이 오기 전에 폰 틸과 미네르바 라인을 단단히 엮을 증거를 쥐게 만드는 거야.”
건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해도 국제수역에서—특히 우호국에 등록된 선박을—나포하는 건 정치적 파장을 부를 수 있어. 어느 나라든 손 대길 꺼릴 걸.”
“기회가 하나 있어.” 피트가 말했다. “그 배는 마르세유에서 급유를 해. 인터폴이 번갯불에 콩 볶듯 움직여서, 필요한 증거를 접수받고 법적 서류를 신속히 처리한다면, 항구에서 나포할 수 있어.”
건은 문설주에 기대어 피트를 꿰뚫어보듯 바라보았다. “결국, 자네는 내 지휘하에 있는 사람들 목숨을 걸어 보자는 거군.”
“그럴 수밖에 없어.” 피트가 조용히 말했다.
“자네, 말을 돌리고 있군.” 건이 느리게 말했다. “양쪽 귀까지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잖아. 난 이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난 누마에 이 배와 인원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내 관심사는 이 원정의 안전한 완수뿐이야. 왜 우리여야 하지? 인터폴이나 현지 경찰이 직접 수색 작전을 벌이면 되잖아. 본토에서 다이버 구하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점점 난처해지는군, 피트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판국에 자킨투스가 폰 틸에게 티끌만 한 방해도 하지 말자고 버티고 있다는 걸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피트는 건을 안 지 1년 남짓, 그 사이 둘은 좋은 친구가 되었고, 건은 만만찮은 상대였다. 다음 장면은 침착하게, 아주 침착하게 연출해야 했다. 피트는 한동안 분주한 무전수를 의심스런 눈길로 흘겨보더니, 다시 건을 바라보았다.
“운명이라 부르든, 우연이라 부르든, 아무튼 퍼스트 어템프트가 절묘한 순간에 타소스에 와 있었고, 그 덕에 정교하게 설계된 범죄 공모가 드러나려 하고 있어. 폰 틸의 전 밀수 작전은 잠수함—한 척일지, 더 될지 우린 아직 몰라—에 달려 있어. 이번 헤로인은 그가 벌인 일 중 가장 큰 건이지. 상상하기조차 버겁지만, 이 한 번의 선적으로 이억 달러를 거뜬히 챙길 수 있어. 계획은 완벽했고, 가로막을 게 없어 보였지. 그런데 어느 날 창밖을 보니, 바닷물고기나 뒤적이는 해양 연안 연구선이 두 마일도 안 되는 데 떠 있단 말이야. 자네가 전설의 물고기를 찾아 수색 중이라는 걸 알고는 덜컥 겁이 났지. 자네 다이버 중 누군가가 그의 근거지, 그리고 더 중요한, 그의 밀수 수법을 들춰낼 확률이 있었으니까. 그는 궁지에 몰렸어. 그렇다고 자네 배를 수장시킬 수도 없었지. 이 배가 가라앉으면, 대대적인 조사망이 깔릴 테니까. 반미 폭동을 선동할 희망도 없었고. 섬 주민들은 호탕한 농부, 어부들이라 과학 원정대 상대로 데모를 벌일 이유 따윈 없어. 오히려 반겼지. 상인들은 지갑 두둑한 연구자들을 마다할 리 없고. 그래서 폰 틸은 무리수를 뒀어. 브래디 비행장 공격을 조작해, 루이스 대령이 안전을 이유로 자네를 내보내길 바랐지. 그게 실패하자, 아예 대놓고 퍼스트 어템프트를 노렸고.”
“모르겠군.” 건이 머뭇거렸다. “말은 들어맞는 듯해. 잠수함만 빼면. 민간인이 요트 브로커에게 가서 ‘잠수함 하나요’ 하고 살 수는 없잖아.”
“주목받지 않고 잠수함을 손에 넣는 유일한 길은, 얕은 물에 가라앉아 있던 전시 침몰함을 끌어올리는 것뿐이지.”
“그 말, 점점 흥미로워지는군.” 건이 낮게 말했다. 이제 그는 피트의 주파수에 맞춰졌다. 마치 숨겨진 금광 지도를 막 손에 넣은 노련한 탐광꾼처럼 눈빛이 번뜩였다.
피트는 이어갔다. “이건 전문 다이버 일이야. 인터폴이 자체 팀을 꾸릴 때쯤이면 이미 늦지.” 마지막 말은 반쯤은 과장이었지만, 다음 논지를 박아 넣기엔 충분했다. “때는 지금이야. 그리고 쿠스토를 빼면, 이 지중해에서 제일 뛰어난 다이버와 장비가 자네 손에 있어. ‘인류의 마지막 희망’ 따위의 미사여구는 집어치우지. ‘수백만을 구하려면 몇 명을 희생해야 한다’ 같은 말도 안 할 거고. 내가 바라는 건, 폰 틸 저택 아래 절벽을 탐사하러 함께 가 줄 자원자 몇 명뿐이야. 가서 빈손으로 돌아올 수도 있어. 반대로 배와 마약을 압류하고 폰 틸을 종신으로 가둘 증거를 찾아낼 수도 있지. 성패를 떠나, 시도는 해야 해.”
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으로는 깊은 사색이 읽혔다. 피트는 그를 한참 지켜보다, 마지막 한 장을 테이블에 던졌다.
“노란색 알바트로스가 어떻게 됐는지도, 겸사겸사 알아낼 수 있겠지.”
건은 비좁은 무전실 건너편에서 피트를 바라보며, 주머니 속 잔돈을 댕그랑댕그랑 굴렸다. 이보다 더 완고하고 결의에 찬 사내를 본 적이 없었다. 작년 하와이 델파이 이아 사건 때도 피트의 판단을 믿었고, 실망한 적이 없었다. 피트가 ‘바다의 상어를 모조리 쓸어버리겠다’고 말한다면, 정말로 거의 그렇게 해낼 것 같았다. 그는 피트의 축축해지고 이제는 벗겨지기 시작한 붕대를 힐끗 보고, 주머니의 잔돈을 다시 굴렸다. 그리고 내일 이 시간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지 잠시 가늠해 보았다.
“좋아, 자네가 이겼네.” 그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군법회의 자리에서 이 결정을 분명 후회하겠지. 그래도 언론의 굵은 제목으로 떠들썩하게 나간다면, 그거 하나는 작은 위안이겠군.”
피트가 웃었다. “그런 행운은 없을걸, 친구. 무슨 일이 벌어지든, 자네가 명령한 건 절벽 아래 대륙붕에서 해양 표본을 채집하기 위한 통상적 수색이었어. 만약 민망한 사건에 휘말린다면, 순전히 우연이었다고 말하면 되지.”
“워싱턴이 그걸 믿어줄까.”
“걱정 마. 샌데커 제독을 우리가 얼마나 아는지, 서로 잘 알잖아. 결과가 어찌 되든 우릴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건은 힙 포켓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과 목의 땀을 눌러 닦았다. “그럼, 이제 어쩐다?”
“자원자를 모아줘.” 피트가 단문으로 답했다. “정오에 선수갑판 뒤편에 인원과 장비를 집결시켜. 임무는 내가 적절한 말 몇 마디로 설명하지. 그다음은 현장에서.”
건이 시계를 보았다. “아홉 시다. 열다섯 분이면 잠수 준비를 시킬 수 있어. 왜 세 시간을 기다리지?”
“그동안 밀린 잠을 메워야 해서.” 피트가 씩 웃었다. “수심 육십 피트 밑에서 졸아버리긴 싫거든.”
“괜찮은 생각이군.” 건이 진지하게 받았다. “꼴이 마치 새해 첫날 아침 같아.” 그는 선실 문을 나서다 멈췄다. “그나저나, 그 아가씨는 가급적 빨리 육지로 내보내줘. 이 일만으로도 머리 꼭대기까지 끓고 있는데, 떠다니는 보더렐로 운영했다는 비난까지 듣고 싶진 않으니까.”
“내가 잠수 갔다 올 때까지는 안 돼. 누군가가 지켜볼 수 있게, 배 위에 있어야 해.”
“좋아, 털어놔.” 건이 진 게 분명한, 체념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또 감추고 있군. 그녀가 누군데?”
“폰 틸의 조카라면 믿겠나?”
“오, 제발.” 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것만 빠지면 될 텐데.”
“심근경색 일으킬 필요 없어.” 피트가 부드럽게 말했다. “다 잘될 거야. 내 말 믿어.”
“그러길 빈다.” 건이 한숨을 쉬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왜 하필 나냐, 신이시여?”
그리고 사라졌다.
피트는 한동안 빈 문틀 너머의 울퉁불퉁한 푸른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전수는 커다란 벤딕스 세트 앞에 숙여 앉아 송신 중이었지만, 피트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집중이 불러오는 내면의 정적, 그리고 찌는 더위와 그 영혼 빨아먹는 짝꿍—습기가 가져오는 정적 속에 갇혀 있었다. 몸은 마비된 듯했고—잠이 턱없이 부족해서도, 정신적 압박이 지나쳐서도—신경줄은 현수교의 지지 와이어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하나가 끊어지면 나머지도 가닥가닥 따라 끊겨, 전체 구조가 흔들리다 공중분해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십 대 일짜리 말에 마지막 전 재산을 걸어버린 도박꾼처럼, 그는 늑골을 두드리는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불확실성의 깊은 공포가 박자를 바꾸어 버린 고동을.
“실례합니다, 소령.” 무전병의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이 문서들이 소령 앞으로 왔습니다.”
피트는 말없이 손만 뻗어 전보를 받았다.
“뮌헨에서 온 건 여섯 시 도착.” 흑인 청년의 음성엔 머뭇거림과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 뒤로 일곱 시에 베를린에서 두 통이 더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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