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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음모

지중해의 음모 #036

Escaper 2025. 9. 4.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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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고맙군.” 피트가 나무토막처럼 중얼거렸다. “다른 건?”

“이 마지막 건데요, 소령님… 이게 좀… 이상합니다. 호출부호도 없고, 반복도 없고, 송신 종료 신호도 없이, 그냥 메시지만 있습니다.”

피트는 맨 위 전보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술에 서서히 냉혹한 웃음이 번졌다.

‘소령 더크 피트, 누마 함정 퍼스트 어템프트. 한 시간 경과, 아홉 시간 남음. H.Z.’

“답신이라도 보내시겠습니까, 소령님?” 무전병의 목소리는 떨리며 더듬거렸다.

그제야 피트는 무전병의 병색 짙은 얼굴을 알아차렸다. “몸이 좀 안 좋아 보이는군.”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소령님… 예. 아침부터 배가 뒤집히는 것 같아서 죽겠습니다. 설사는 쏟아지고, 토한 건 벌써 두 번이고요.”

피트는 피식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요리사 덕 좀 본 모양이군. 그거겠지?”

무전병은 고개를 저으며, 손바닥으로 눈을 문질렀다. “그럴 리 없습니다. 쿡은 최고예요—완전히 미식가 수준이라니까요. 아마 이 지역 독감이거나, 아니면 상한 맥주 때문일 겁니다.”

“자리를 지켜. 앞으로 스물네 시간 동안 무전은 필수야.”

“걱정 마십시오.” 무전병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그 아가씨 말입니다, 저를 어미 닭처럼 챙기더군요. 그런 관심을 받는데, 제가 얼마나 더 힘들겠습니까?”

피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가 못 보는 뭔가를 보는 모양이군.”

“나쁘지 않아요. 제 취향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어쨌든 아침 내내 차를 가져다 주더군요. 완전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같았다니까요.”

젊은 흑인은 갑자기 말을 멈췄다. 눈이 커지더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어 의자를 넘어뜨리며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려나가 난간에 매달렸다. 저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듯한 신음과 짐승 같은 헐떡임이 차내로 흘러들었다.

피트는 따라 나가, 고통에 겨운 무전병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무전 앞을 지켜 줘, 친구. 내가 의사를 보내줄 테니 버텨.”

무전병은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말은 없었다. 피트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몸을 틀어, 냄새가 퍼지지 않게 조심하며 자리를 떠났다.

잠시 뒤, 배 안을 돌아다니며 함의 군의를 찾아 무전병을 봐 달라 부탁한 후, 피트는 건의 선실로 들어섰다. 커튼은 드리워져 있고, 선풍구에선 시원한 공기가 흘러나와 강철 선실을 어제의 지옥 같은 더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쾌적한 장소로 바꿔 놓고 있었다. 희미한 빛 속에서 그는 테리가 책상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고 턱을 괴고 있었는데, 피트를 보자 고개를 들어 미소 지었다.

“뭘 그리 꾸물거렸어요?”

“업무였어.”

“분명 잔꾀였겠지요.” 그녀는 여성 특유의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약속한 큰 모험은 어디에 있죠? 고개만 돌리면, 당신은 spurlos verschwunden,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잖아요.”

“의무가 부르면, 응답해야지, 내 사랑.” 피트는 의자에 거꾸로 걸터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흥미로운 차림새군. 그건 어디서 구했지?”

“별거 아니에요—”

“보다시피군.”

피트의 말에 그녀가 미소 지으며 계속했다. “그냥 베갯잇에서 도안을 오려냈죠. 윗도리는 리본 매듭으로 묶었고, 바지는 양옆에 매듭을 지었어요. 보세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왼쪽 골반의 매듭을 풀며, 아슬아슬하게 걸친 천 조각을 살짝 늘어뜨렸다.

“아주, 아주 영리하군. 다음 순서는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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