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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잔잔히 불어오는 남서쪽 하늘 아래, 바다는 불길한 손가락처럼 솟아올라 회색 절벽을 내리쳤다. 퍼스트 어템프트는 마치 유령처럼—하얀 강철로 된 유령선처럼—끓어오르는 소용돌이 속으로 미끄러지듯 다가갔다. 파멸은 불가피해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건은 키를 힘껏 우현 쪽으로 돌려 배를 절벽과 평행한 항로로 바꾸었다. 그는 침착하게 음향측심기의 종이에 그려지는 바늘의 궤적과, 불과 오십 야드밖에 떨어지지 않은 파도선을 번갈아 살폈다.
“이 정도면 길가에 모셔드리는 서비스지요?” 그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목소리는 차분했고, 마치 미네소타의 고요한 호수에서 낚싯배를 모는 어부 같았다.
“안나폴리스의 항해 교관이 보면 기뻐하겠군.” 피트가 대답했다. 그는 건과 달리 눈을 곧게 앞으로 고정하고 있었다.
“보기만큼 위험하지는 않아.” 건은 음향측심기를 가리켰다. “용골 아래로 열 패덤은 남아 있어.”
“백 야드도 안 되는 거리에서 육십 피트라… 엄청난 낙차군.”
건은 모자에 맺힌 땀을 훔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바깥 암초가 없는 지역에선 흔한 지형이지.”
“좋은 징조군.” 피트의 목소리가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잠수가 표면에 들키지 않고 움직일 충분한 공간이 있다는 뜻이지.”
“밤이라면 모르겠지만 낮엔 불가능해.” 건은 고개를 저었다. “수평 가시거리가 백 피트 가까이 돼. 언덕 위에서 망원경만 들이대면 삼백 피트짜리 선체가 해저를 기어가는 게 훤히 보일 거야.”
“잠수부도 마찬가지겠군.” 피트는 절벽 위의 빌라를 올려다보았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다니 미친 짓이야.” 건은 낮게 말했다. “폰 틸이 망원경으로 우릴 지켜보고 있을 게 뻔해.”
“그래, 나도 그쪽에 걸었지.” 피트는 잠시 푸른 해안 풍경에 넋을 잃었다. 에게해의 푸른 팔이 고대 섬을 감싸 안으며 햇빛과 물결을 눈부시게 반사하고 있었다. 파도 소리와 외로운 갈매기 한 마리의 울음소리만이 엔진의 윙윙거림을 끊었다. 절벽 위 목초지에서는 소 떼가 점처럼 흩어져 풀을 뜯고 있었고, 아래 작은 만에는 파도에 씻겨 하얗게 바랜 표목들이 고요히 널브러져 있었다.
정신을 붙잡아 되돌린 피트는 곧 다가오는 신비로운 고요의 수역을 가리켰다. “저기군. 평수면.”
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속도대로면 십 분 안에 닿아. 팀은 준비됐나?”
“완벽하지.” 피트는 짧게 대답했다. “빌라 쪽 시선에 걸리지 않도록 선체 우현 갑판에 대기 중이야.”
“뛰어내릴 땐 프로펠러에 빨려들지 않게 충분히 떨어지라고 명령해.”
“굳이 명령할 필요 없을 거야. 다들 노련한 잠수부들이니까.”
“그렇지.” 건이 콧방귀를 뀌었다. “난 선체를 해안선을 따라 세 마일쯤 더 몰겠어. 측심 조사인 척 위장하지. 틸이 속아 넘어가길 빌어야지.”
“곧 알게 되겠지.” 피트는 시계를 확인했다. “귀환 시각은?”
“되돌아오는 길에 지그재그 항로를 잡고 14시 10분에 다시 여기 닿는다. 정확히 오십 분 줄 테니 그 안에 잠수함을 찾아내고 복귀해라.” 건은 시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반드시 여기서 기다려. 알겠나?”
피트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넓게 웃으며 눈동자에 장난기를 담았다.
“뭐가 그렇게 우습나?” 건이 물었다.
“방금 우리 어머니랑 똑같았어. 늘 내 배가 들어올 때쯤이면 난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하셨지.”
건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네가 안 돌아오면 어디서 찾을진 알겠군. 자, 이제 장비 갖춰.”
피트는 손을 흔들어 응답하고는 갑판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거기엔 햇볕에 그을린 다섯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검은 수영 팬티만 걸친 채 조끼끈과 공기통 밸브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켄 나이트가 피트를 보고 말했다. “준비 다 해놨습니다, 소령님. 이번엔 단일 호스밖에 없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충분해.” 피트는 오리발을 끼고 오른쪽 종아리에 칼을 찼다. 이어서 마스크와 스노클을 맞췄다. 시야 180도의 광각형 마스크였다. 마지막으로 공기통과 조절기를 챘다. 그가 어깨끈을 조이려는 순간, 마흔 파운드나 되는 장비가 두 팔에 떠받쳐졌다.
“내 도움이 없으면 하루도 못 버틸 텐데.” 지오디노의 건방진 목소리였다.
“정말 수수께끼는, 내가 네 잔소리와 부풀려진 자만심을 왜 참고 있는가 하는 거지.” 피트가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또 나만 못살게 구네.” 지오디노가 억울한 표정을 흉내 냈다. 그러다 물빛을 응시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맙소사, 물빛 좀 봐. 금붕어 어항보다 더 맑아.”
“나도 봤어.” 피트는 여섯 피트 길이의 봉창을 뽑아 뾰족한 끝을 점검했다. “공부는 했나?”
“이 머릿속에,” 지오디노는 이마를 톡 쳤다, “모든 답이 다 저장돼 있지.”
“역시 자만심은 든든하군.” 피트가 말했다.
“셜록 지오디노, 모르는 게 없지. 어떤 비밀도 내 탐구심을 피하지 못해.”
“그 탐구심에 기름칠 잘해둬. 시간에 쫓길 테니까.”
“맡겨만 둬.” 지오디노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따라갈 수 없어 아쉽네. 멋진 수영, 즐기다 와.”
“즐길 거야.” 피트는 낮게 중얼거렸다. “꼭 즐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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