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중해의 음모

지중해의 음모 #040

Escaper 2025. 9. 4. 07:52
반응형

17 - 1

“놀라는 것 같군요, 소령.” 다리우스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유리한 상황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오.” 그는 흉측한 루거 권총을 피트의 목덜미에 들이대며 잔혹하게 속삭였다. “움직이지 마시오. 억지로 내가 당신을 일찍 죽이도록 만들지 말란 말이오. 그렇게 된다면 내가 이 순간을 위해 고대해온 만족과 쾌락을 빼앗기게 되니까. 내 손에 입은 부상, 정확히는 당신의 발차기로 인한 치욕을 이제 갚아줄 때가 왔다오.”

더크 피트는 필사적으로 태연한 기색을 보였다.
“유감이지만, 내 추한 친구 지오디노는 이번엔 집에 남겨두고 왔어.”

“그렇다면 그의 형벌까지 함께 더해주지.”

다리우스는 상냥한 미소를 짓더니, 느긋하게 총구를 내리고는 피트의 다리를 쏘았다.
갑작스러운 폭음이 바위 동굴 속에서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시뻘건 뜨거운 창끝이 허벅지를 꿰뚫은 듯한 고통이 피트를 덮쳤다. 그는 옆으로 두 걸음이나 밀려났지만, 기적처럼 쓰러지지 않았다. 탄환은 뼈를 겨우 스쳐 지나가며 근육만 관통했고, 작은 구멍을 남기며 나갔다. 불에 덴 듯한 통증은 곧 사라지고, 다리는 충격으로 마비된 듯 무감각해졌다. 그러나 진짜 고통은 곧 몰려올 터였다.

“자, 다리우스.” 폰 틸이 꾸짖듯 나섰다.
“그런 조잡한 짓은 삼가게. 아직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남아 있지 않은가. 소령, 유감이오. 하지만 인정하시오. 당신의 발길질은 너무나 정확해서 다리우스가 적어도 2주는 절뚝거리게 되었거든.”

“한 번 더 걷어차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지.” 피트가 이를 악물고 내뱉었다.

폰 틸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물 위에 떠 있는 잠수부들을 향해 명령했다.
“장비를 바닥에 버리고 당장 올라오시오. 시간이 없다.”

토머스가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폰 틸을 노려보았다.
“우린 여기서 충분히 편한데 말이지.”

폰 틸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면 약간의 자극이 필요하겠군.” 그는 동굴 안쪽을 향해 외쳤다.
“한스, 조명을!”

순식간에 머리 위의 투광등이 환히 켜지며 거대한 동굴을 드러냈다. 잠수함은 부유 부두에 묶여 있었고, 그 부두는 반대편 벽의 터널 입구에서 뻗어나와 200피트나 이어졌다. 천장은 낮아졌으나 넓이는 훨씬 더 커, 웬만한 미식축구장에 맞먹는 규모였다. 오른쪽 절벽 위에는 다섯 명의 무장 경비가 기관단총을 겨눈 채 굳건히 서 있었다. 모두 폰 틸의 운전기사와 같은 제복을 입고 있었고, 그 자세는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명령대로 하는 게 좋겠어.” 피트가 낮게 충고했다.

안개가 다시 스며들었지만, 눈부신 조명 때문에 달아날 길은 없었다. 스펜서와 허송이 먼저 선체로 올라섰고, 그 뒤를 나이트와 토머스가 따랐다. 우드슨은 늘 그렇듯 마지막에 올랐고,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나이트는 피트의 장비를 벗겨내며 말했다. “다리를 좀 보게, 소령.” 그는 부드럽게 피트를 앉히더니, 납덩어리를 풀어낸 웨이트 벨트로 상처를 단단히 묶어 출혈을 막았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돌아보면 당신은 늘 피를 흘리고 있군요.”

“요즘 들어 끊기 힘든 못된 버릇이지.” 피트가 이를 악문 채 대꾸했다.

그때, 안개가 걷히자 맞은편 부두에 묶인 또 다른 잠수함이 눈에 들어왔다. 이 배는 달랐다. 그들의 발밑에 있는 잠수함이 매끈한 갑판을 가진 데 반해, 저쪽 잠수함은 커다란 함교가 반구처럼 솟아 있었다. 그리고 갑판 위에는 산산조각난 비행기에서 기관총을 떼어내는 인부 세 명이 보였다.

“이제 알겠군. 노란색 알바트로스의 출처를.” 피트가 중얼거렸다. “구식 일본 해군 I-보트. 정찰기를 싣고 다니던 녀석이지. 2차 대전 이후로는 사라졌는데.”

“맞네. 잘 알아보았군.” 폰 틸은 흐뭇한 듯 대꾸했다. “45년에 이오지마 해역에서 미군에게 격침된 것을, 51년에 우리가 인양했지. 잠수함과 항공기의 조합은, 은밀한 화물 운송에 이보다 더할 나위 없거든.”

“미 공군 기지와 연구선을 습격하는 데도 유용했겠지.” 피트가 날카롭게 덧붙였다.

“훌륭하오, 소령.” 폰 틸은 즐겁게 미소 지었다.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네가 비행기가 바다에서 왔다고 추측했을 때, 그건 어설픈 추측이었지만 거의 정답에 가까웠지.”

피트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터널 입구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서 있던 두 경비가 sp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벽 위의 다섯 명은 여전히 기관단총을 겨눈 채 섬뜩하게 서 있었다.

“보아하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군.” 피트가 낮게 말했다.

“물론이지.” 폰 틸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친애하는 다리우스가 이미 자네의 도착을 알려주었거든. 정확한 시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 어느 정신 나간 선장이 아니고서야, 그토록 배를 절벽 가까이 붙여 항해할 리는 없으니까.”

피트는 다리우스를 노려보았다. “은 삼십 냥을 받고 판 것이냐?”

폰 틸은 손사래를 쳤다. “정확한 액수는 중요치 않소. 다만, 다리우스와 나의 인연은 벌써 10년.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좋은 관계였지.”

피트는 석탄처럼 까맣게 빛나는 다리우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어떻게 포장하든 배신은 배신이다. 폰 틸, 그게 자네의 두 번째 실수야. 이런 더러운 벌레 같은 배신자를 고용한 것. 반드시 자네에게 화가 되어 돌아올 거다.”

다리우스의 분노가 몸을 떨게 만들었다. 권총은 그의 거대한 손에서 돌출한 괴이한 돌기처럼 보였고, 총구는 피트의 배꼽을 향해 떨리고 있었다.

폰 틸은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다리우스를 자극하면 자네는 곧 죽게 될 거요.”

“어차피 우릴 모두 죽일 생각이잖아.” 피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또다시 예지인가, 소령? 자네의 재주가 참 잘 들어맞는군.” 폰 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쾌활했다. 그것이야말로 피트를 불안하게 했다.

“난 기습을 싫어하지.” 피트가 차갑게 내뱉었다. “언제, 어떻게 죽일 건가?”

폰 틸은 시계를 꺼내어 세련된 손놀림으로 다이얼을 확인했다.
“정확히 11분 후. 그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순 없소.”

“왜 지금 당장 안 끝내지?” 다리우스가 으르렁거렸다. “시간 낭비일 뿐이오. 다른 일도 해야 하는데.”

“인내하게, 다리우스.” 폰 틸이 그를 달랬다. “생각이 짧군. 아직 쓸모가 있지 않은가. 장비를 옮길 인부가 필요하네.” 그는 피트를 내려다보며 비웃듯 말했다. “상처 입은 자네는 면제요, 소령. 나머지 분들은 보이는 저 장비들을 전부 잠수함으로 옮겨주게.”

“우린 도살자 밑에서 일하지 않아.” 피트의 목소리는 낮고도 단호했다.

반응형

'지중해의 음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중해의 음모 #039  (0) 2025.09.04
지중해의 음모 #038  (0) 2025.09.04
지중해의 음모 #037  (0) 2025.09.04
지중해의 음모 #036  (0) 2025.09.04
지중해의 음모 #035  (0) 2025.09.04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