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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그렇게 하고 싶다면야.” 폰 틸이 다리우스를 향해 빙긋 웃었다.

“왼쪽 귀를 날려버리게. 다음 탄환으로는 코를 없애고, 그다음은—”

“닥쳐, 이 사디스트 늙은 독일놈.” 우드슨이 이를 갈며 내뱉었다. “당신네 빌어먹을 잠수함 짐이나 실어주마.”

그들은 어쩔 수 없었다. 피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고, 스펜서와 허송이 부두 위에 쌓인 나무 상자들을 들어 나이트와 토머스에게 넘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드슨은 해치 속으로 사라졌고, 가끔 위로 불쑥 올라오는 팔만이 그의 존재를 알렸다.

불길한 작열감이 피트의 다리 상처에서 본격적으로 되살아났다. 마치 보이지 않는 작은 사내가 불꽃방사기를 들고 상처 속을 뛰어다니는 듯했다. 두어 차례나 정신을 잃을 뻔했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잡아 어둠이 몰려드는 것을 견뎌냈다. 순전히 의지의 힘으로 목소리를 평온하게 유지했다.

“당신은 내 질문의 절반만 답했어, 폰 틸. ‘언제’만 말했지.”

“죽는 방법이 그토록 중요하오?”

“난 기습을 싫어한다니까.”

폰 틸은 피트를 차갑게 훑어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피해 없을 테니 알려주지. 당신과 부하들은 총살될 거요. 잔혹하고 야만적으로 들리겠지만, 산 채로 매몰되는 것보단 훨씬 자비로운 죽음이지.”

피트는 잠시 생각하다가 낮게 뱉었다.

“짐과 장비를 옮기고, 저쪽에서 알바트로스 잔해의 총을 떼어내는 것… 이 모든 건 도주 준비군. 천막을 접고 야반도주하려는 거지. 우리가 죽은 뒤 1분, 5분, 혹은 30분쯤 뒤에 폭약이 터져 이 동굴은 수 톤의 암석에 매몰될 거야. 우린 묻히고, 당신의 수중 밀수 기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폰 틸의 눈이 의심스럽게 가늘어졌다. “계속하시오, 소령. 자네의 추측이 꽤나 흥미롭군.”

“시간이 빠듯하고, 당신은 겁을 먹었어. 우리 발밑, 이 부두 아래엔 130톤의 헤로인이 잠수함에 실려 있지. 상하이에서 적재돼 인도양과 수에즈 운하를 거쳐 이곳까지 온 물건이야. 보통 밀수꾼 같았으면 조용히 우회로로 들여보냈겠지. 하지만 브루노 폰 틸은 다르더군. 매디슨 애비뉴의 광고회사들이라도 당신만큼 교묘하게 ‘광고’하지 못했을 거야. 퀸 아르테미시아의 불법 화물과 목적지를 이렇게 대놓고 알리다니. INTERPOL이 당신의 수중 수송 방식을 밝혀냈다고 해도 아무 상관없어.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아르테미시아에만 꽂혀 있으니까.”

주변은 침묵뿐이었다. 긍정도 부정도 없는 고요.

“다리우스가 이미 알려줬겠지만,” 피트는 계속했다,

“자킨토스와 마약국 요원들은 지금 시카고 항에 함정을 치느라 허탕질 중이지. 배가 도착했을 때 허탕을 치게 될 걸 상상해보라지. 선원들의 연극 같은 미소와 코코아 자루만 발견한다면 말이야.”

피트는 욱신대는 다리를 바꾸어 짚으며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INTERPOL이 당신 미끼를 덥석 문 게 자네에겐 대단한 만족이겠지.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헤로인이 실린 잠수함이 어젯밤 이미 여기서 내려졌다는 걸. 곧 지나갈 미네르바 라인의 다음 선박으로 옮겨 실리겠지. 퀸 조카스타 말이야. 터키산 담배를 싣고 뉴올리언스로 향하는 배. 십 분 안에 해안에서 닻을 내릴 예정이지. 그래서 당신이 서두르는 거다, 폰 틸. 대낮에 위험을 무릅쓰고 배와 접선해야 하니까.”

“상상력이 대단하군.” 폰 틸은 비웃듯 말했지만, 그의 얼굴엔 근심의 주름이 스쳤다.

“증거는 있소?”

“굳이 있을 필요 있나? 어차피 몇 분 뒤 죽을 테니.”

“일리가 있군, 소령.” 폰 틸은 느릿하게 말했다. “자네의 통찰은 대단하오. 틀린 건 단 하나뿐이다. 조카스타는 뉴올리언스가 아니라 갈버스턴에 정박할 거다.”

피트는 재빨리 몰아붙였다. “다리우스가 총을 쏘기 전에 단 한 가지 묻지. 구세계 신사답게 내 마지막 질문 하나쯤은 받아줘야 하지 않겠나?”

“좋소, 소령.” 폰 틸이 흡연하며 태연하게 말했다.

“무엇인가?”

“갈버스턴에 하역된 헤로인은 어떻게 유통시킬 셈이지?”

폰 틸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내가 소유한 어선들이 몇 척 있지. 돈벌이는 시원찮지만, 이럴 때 유용하다네. 지금도 멕시코만에서 그물질을 하며 신호를 기다리고 있지. 신호가 오면 배는 곧장 항구로 들어가고, 조카스타가 도착하는 시각에 맞춰 정박한다. 잠수함은 어선들에게 인도되어 통조림 공장 밑으로 옮겨지고, 화물은 고양이 사료 라벨을 붙인 깡통에 담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갈 고양이 사료 깡통 안에 가득 찬 헤로인이라니. 마약국은 우스갯거리가 될 뿐이지.”

“결국 수백만이 고통 속에 빠지겠군.” 피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당신은 그저 돈 몇 푼을 위해…”

“몇 푼?” 폰 틸이 코웃음쳤다. “5억 달러쯤 될 거다.”

“결코 그 돈을 세어보지도, 쓰지도 못할 거다.”

“누가 막을 수 있겠소? 자네? 자킨토스? 아니면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소원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

“이젠 지겹다.” 다리우스가 으르렁댔다. “오만한 자식, 이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괴이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살기 어린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피트는 총구가 움찔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봐.” 피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쏘면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지 않겠어? 아직 내 11분은 끝나지 않았잖나.”

실제로는 몇 시간은 지난 듯 느껴졌다.

폰 틸은 잠시 담배를 만지작거리며 침묵하다가 말했다.

“한 가지 궁금하군, 소령. 왜 내 조카를 납치했지?”

피트는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그녀는 당신 조카가 아니니까.”

다리우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럴 리가 없어… 알았을 리가…”

“알았지.” 피트는 담담히 대꾸했다. “정보원 따윈 없었지만, 눈치챘다네. 자킨토스가 고안한 계획은 애초부터 실패할 운명이었어. 진짜 조카는 영국 어딘가에 숨겨졌고, 닮은 여자 하나를 골라낸 거지. 완벽한 판박이일 필요는 없었어. 자네가 20년 넘게 그녀를 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해서 ‘조카’의 휴가 여행은 철저히 꾸며진 함정이 된 거다.”

다리우스는 분노에 몸을 떨며 폰 틸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폰 틸은 미동조차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안타깝지.” 피트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자네는 놀라지도 않았어. 다리우스가 이미 다 알려줬으니까. 그 순간 선택은 둘뿐이었지. 가짜를 쫓아내든가, 아니면 함께 놀아주며 거짓 정보를 흘리든가. 물론 당신 같은 인간은 당연히 후자를 택했지. 인형극이라도 하듯 말이야.”

“매혹적인 상황이었지.” 폰 틸이 태연히 맞장구쳤다.

“그녀가 해변에서 수영하는 시간은 유일한 접선 기회였고, 당신은 고의로 그 틈을 허용했어. 하지만 그녀가 넘긴 정보는 모조리 쓰레기였지. 자킨토스가 뒤늦게 수상히 여긴 것도 당연했어. 아침 약속에 늦게 나가 보니, 숲 속에서 윌리가 여자를 엿보고 있었거든. 그 순간 자킨토스는 모든 게 물거품 되는 걸 깨달았지. 또다시 당신에게 속았다는 걸.”

“우린 이길 수도 있었어!” 다리우스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네놈만 아니었다면!”

피트는 어깨를 으쓱였다.

“주인공이 무대에 어설프게 뛰어든 거지. 얻어맞고 찔리고 총알까지 얻어맞으면서 말이야. 차라리 그날 아침 바닷가에 나가지 않고 잠이나 더 잤더라면 훨씬 편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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