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8 - 1
총성이 울렸다. 그것은 루거의 날카로운 포성이 아니라, 귀를 멍하게 만드는 대구경 콜트 .45 자동의 묵직한 굉음이었다. 다리우스가 비명을 지르며 총을 놓쳤고, 루거는 퉁겨져 물속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몸에 두 치수는 큰 제복을 걸친 지오디노가 민첩하게 부두에서 잠수함 갑판 위로 뛰어내리더니, 콜트의 차가운 강철을 폰 틸의 왼쪽 귀에다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명중 솜씨를 감탄하듯 감상했다.
“이럴 수가, 안전 장치까지 풀어놨네.”
“잘했어.” 피트가 말했다. “에롤 플린도 이만한 극적인 등장은 못 했을 거야.”
폰 틸과 다리우스는 얼굴에 혼란과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띤 채 얼어붙은 동상처럼 굳어섰다. 뜨겁게 타오르는 조명등은 안개를 밀어내듯 몰아내며 동굴 속을 환히 밝혔고, 절벽 위에 늘어선 경비병들은 잠수함 갑판 위에서 벌어진 뜻밖의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보이지 않는 한 줄에 이끌린 듯, 다섯 명이 일제히 기관단총을 들어 피트를 겨눴다.
“방아쇠에서 손 떼라!” 지오디노의 목소리가 암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소령을 쏘면, 네놈들 두목의 뇌수가 아테네까지 튈 거다. 방아쇠 당기면 전부 죽는다. 총구가 어디를 겨누고 있는지, 저 터널을 봐라. 허풍이 아니다.”
그제야 피트는 알아차렸다. 이 동굴에서 유난히 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관단총이었다. 그리고 그 총들이 열 정, 가장 강인해 보이는 사내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들은 터널 입구에 느슨하게 포진해 있었고, 넷은 엎드리고, 셋은 무릎을 꿇고, 또 셋은 서 있었다. 그들의 검은색과 갈색 위장복은 바위 그림자에 완벽히 녹아들어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눈에 들어오는 건 자주색 베레모였다. 정예 부대의 상징이었다.
“이제 제 뒤에 있는 잠수함으로 시선을 돌려주실까.” 지오디노가 덧붙였다.
결정타는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 짚이 아니라, 일본제 잠수함 함교에 우뚝 선 제노 대령의 손에 쥔 흉측한 공랭식 기관총이었다. 그의 입가에는 마치 악마 같은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그 순간, 경비병들의 의지가 와르르 무너졌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들은 총을 내려놓고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단 한 명만이 머뭇거렸고, 그 대가는 치명적이었다.
제노는 방아쇠를 가볍게 튕겼다. 단 두 발의 총알이 총열에서 튀어나와 공기를 가르고, 불운한 그 자는 아무 소리 없이 무너져내렸다. 이내 시체는 물로 굴러 떨어져, 코발트 빛 바다 위에 붉은 구름을 피워냈다.
“이제 뛰지 말고, 걸어 나가라. 손은 머리 위로.” 지오디노가 태연히 명령했다.
갑판에 앉아 통증을 억누르던 피트는 그의 얼굴에 피어오른 피곤한 기색만큼이나 다리에 스며드는 극심한 고통을 감추지 못했다. “아슬아슬하게 잘 맞췄군.”
“로마도 하루아침에 지어진 건 아니지.” 지오디노가 점잔 빼며 말했다. “헤엄쳐 나가서 자킨서스와 제노, 그리고 그 유랑 특공대를 찾아내고, 다시 그 지옥 같은 미로를 뛰어가며 끌고 들어온 게 그리 한가한 일은 아니었거든.”
“내가 알려준 길, 헷갈리진 않았나?”
“전혀. 말한 대로 엘리베이터 통로는 딱 거기에 있었어.”
그때 폰 틸이 피트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의 눈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누가 그 엘리베이터에 대해 말해줬지?”
“아무도.” 피트가 단호하게 답했다. “미로 속을 헤매다 우연히 한쪽으로 난 통로를 발견했지. 통풍구 끝에서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군. 바다 동굴이 있다는 확신이 서자, 답은 명백했어. 네 별장은 절벽 위에 세워져 있지. 지상에서 드러나지 않고 동굴로 내려오는 방법은 지하 엘리베이터뿐이었어. 수천 년 전 페니키아인들이 파놓은 터널과 갱도는 밀수업자에게 딱 맞는 구조였던 거야.”
“잠깐.” 지오디노가 끼어들었다. “네 말은 기원전부터 이곳에서 밀수가 있었다는 거냐?”
“네가 공부를 안 해서 그래.” 피트가 웃었다. “제노가 폐허 견학 시작할 때 나눠준 안내서 좀 읽어봤어야지. 타소스는 원래 금과 은을 캐기 위해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곳이다. 그 터널과 갱도가 바로 옛 광산이지. 결국 채광이 끝나고 버려졌는데, 수백 년 뒤 그리스인들이 발견했을 땐 신들이 만든 신비한 미로로 여겼다는 거다.”
그 순간, 부두 쪽에서 인기척이 나자 피트가 시선을 올렸다.
어디선가 자킨서스가 나타나, 피트를 내려다보며 한동안 묵묵히 서 있었다. 마침내 그가 물었다.
“다리는 어때?”
피트는 어깨를 으쓱였다. “기압 떨어질 땐 좀 욱신거리겠지만, 내 침대 생활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지.”
“제노 대령이 들것을 보내놨다. 곧 도착할 거다.”
“우리의 알찬 대화를 다 들으셨나?”
자킨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았다네. 이 동굴 음향은 카네기 홀도 울고 갈 만하군.”
“증거는 없잖나.” 폰 틸은 경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입술은 비웃음으로 일그러졌지만, 눈빛엔 초조함이 번지고 있었다.
“이미 말했듯, 내가 증명할 필요는 없어.” 피트는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쯤 독일에서 온 전범 수사관 넷이 미군 수송기를 타고 이곳으로 오고 있겠지. 브래디 비행장이 그들의 착륙지다. 성형수술, 목소리 변조, 나이를 핑계로 한 위장은 전혀 통하지 않아. 그들은 그 방면의 권위자니까. 이제 당신 항해도 끝이야, 제독.”
“나는 그리스 시민이다.” 폰 틸은 오만하게 맞섰다.
“가면극은 집어치워.” 피트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리스 시민은 진짜 폰 틸이었지, 당신이 아니야. 제노 대령, 사실을 좀 설명해 주시죠.”
“기꺼이.” 제노는 일본제 잠수함 함교에서 내려와 자킨서스 곁에 섰다. 커다란 콧수염 아래로 호방한 미소를 지으며 폰 틸을 꿰뚫어보았다. “우리 나라에 불법으로 들어온 자는 그냥 두지 않는다. 더구나 전범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만약 당신이 피트 소령의 주장대로 에리히 하이베르트 제독이라면, 내가 직접 당신을 전범 수사관들에게 인도하겠다. 그리고 당신은 독일로 돌아가 교수형에 오를 것이다.”
“이 얼마나 적절하고도 편리한 결말인가.” 자킨서스가 천천히 말했다. “세금으로 장기간의 마약 재판을 치를 필요도 없고. 하지만 동시에 북미의 마약 조직 절반을 한 번에 잡아들일 기회를 잃는군.”
“기회가 도둑을 만든다지 않나.” 피트가 웃었다.
“그건 무슨 뜻인가?”
“간단한 셈법이지, 자크. 이제 우리는 투하 지점과 방법을 알았어. 여객선 퀸 조카스타를 접수해서 선원들을 격리한 채 우리가 직접 화물을 배달하면 돼. 당국이 하이베르트 체포 소식을 잠시 감출 수 있다면, 갤버스턴 통조림 공장에서 함정을 멋지게 펼칠 수 있겠지.”
“좋아.” 자킨서스의 눈이 번뜩였다. “가능하다면 말이지. 문제는 당장 그 배와 잠수함을 운용할 선원들인데.”
“지중해 제10함대.” 피트가 대답했다. “네 영향력을 써서 긴급 승무원을 요청해. 브래디 비행장으로 공수하면 돼. 일정은 다섯 시간, 많아야 여섯 시간 늦춰질 뿐이야. 하루 반이면 만회할 수 있어.”
자킨서스는 피트를 묘한 존경심으로 바라봤다. “정말 놓치는 게 없구만.”
“노력은 하지.” 피트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하나만 더 묻지.”
“말해봐.”
“어떻게 다리우스가 밀정임을 알았지?”
“퀸 아르테미시아를 뒤지다가 눈치챘다. 무선실 송신기가 당신 사무실과 같은 주파수에 맞춰져 있더군. 처음엔 누구든 가능하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범위가 다리우스로 좁혀진 건, 내가 헤엄쳐 나와 지오디노를 만난 뒤였어. 그는 다리우스가 네 무전기를 잡고 배에 머무는 내내 지켰다고 말했지. 너와 제노가 별장을 감시하며 모기와 씨름할 때, 다리우스는 메탁사를 홀짝이며 네 동정을 보고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내가 배를 마음대로 누빌 수 있었던 거지. 선원들은 전부 밑창에서 잠수함을 풀고 있었고, 선장은 다리우스의 ‘모든 이상 없음’ 보고에 속아 경계조차 세우지 않았어. 그가 몰랐던 건 내가 바다에서 직접 정찰할 생각이었단 사실이야. 네가 의심하지 않은 건 당연하지. 지오디노와 내가 해변을 지키겠다고 자원했으니까. 마지막 순간에야 배가 텅 빈 걸 보고 몰래 올라간 거지. 미안하지만, 자크, 그땐 네 허락을 구할 시간이 없었어.”
“내가 사과해야겠군.” 자킨서스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올 해 최고의 바보 상을 받을 자격이 있어. 어쩌다 그렇게 눈이 멀었는지… 다리우스가 끝내 배와 별장 사이의 무전 메시지를 한 번도 잡지 못했을 때, 이미 눈치챘어야 했는데.”
“오늘 아침 길에서 말할 수도 있었지.” 피트가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다리우스가 바로 옆에 있는데 네게 의심을 털어놓는 건 어울리지 않았어. 게다가 확실한 증거도 없었으니, 너나 제노가 곧이곧대로 믿을 리도 없었지.”
“맞아. 옳은 판단이었어.” 자킨서스가 인정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퀸 조카스타 얘기는 어디서 들은 거지?”
“공군은 차량을 빌려줬다 하면, 언젠가는 돌려받길 원하지. 지오디노와 나는 브래디 비행장으로 돌아가 트럭을 반납했어. 그곳에서 루이스 대령이 기다리고 있더군. 바로 그가 퀸 조카스타를 알려줬지. 아침 초계기가 타소스로 북상 중인 배를 발견했거든. 다음은 간단했어. 아테네 주재 미네르바 라인 대리점에 화물과 목적지를 확인한 거야. 답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어. 열두 시간 안에 미네르바 선박이 두 척이나 별장 앞을 지나고, 둘 다 미국으로 가고 있었으니까. 그때부터 그림이 그려졌어. 네놈, 아니 하이베르트는 퀸 아르테미시아에서 퀸 조카스타로 잠수함과 마약을 옮길 속셈이었던 거지.”
“나한테도 알려줬어야지.” 자킨서스의 목소리에 씁쓸한 기색이 묻어났다. “네 친구가 내 본부에 뛰어들어와, 제노의 부하들과 함께 미로로 따라 들어가자고 고집할 때, 나는 간발의 차로 그를 구금하지 않은 셈이야.”
'Clive Cussler > 지중해의 음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중해의 음모 #045 (0) | 2025.09.06 |
---|---|
지중해의 음모 #044 (0) | 2025.09.06 |
지중해의 음모 #042 (0) | 2025.09.06 |
지중해의 음모 #041 (0) | 2025.09.06 |
지중해의 음모 #040 (0) | 2025.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