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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는 잠시 자킨서스를 바라보았다. 수사관의 얼굴은 엄혹했다.
“생각은 했지.” 피트가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관련된 사람이 적을수록 다리우스가 눈치챌 가능성도 적다고 판단했네. 게다가 일부러 여자는 모르게 했어. 그래야 그녀가 보낸 경고 메시지가 네 본부에 전달될 때, 다리우스가 가로챘더라도 진심으로 받아들일 테니까. 우회적인 방법이었음을 인정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는 있었지.”
“마약국 최고의 수사관이 아마추어한테 한 수 배웠다니.” 자킨서스가 말했다. 그러나 곧 미소를 보이며, 말 속에 스민 신랄함을 걷어냈다. “하지만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어. 충분히.”
피트는 크게 안도했다. 그는 자킨서스를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폰 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피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눈빛 속의 멸시는 단순한 증오를 넘어선 것이었다. 피트의 가슴에 솟구친 감정은 오직 혐오뿐이었다. 그는 조용히 그러나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cavern 안隅隅까지 울려 퍼지게 말했다.
“당신이 빼앗은 생명을 갚으려면 십만 번의 죽음으로도 부족하다, 노인네. 세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죽이지 않고 태어나 묘지에 들어가지. 하지만 당신의 명단은 끝이 없지. 차가운 북해에 수장당한 무력한 포로들에서, 카사블랑카 뒷골목에서 노예로 팔린 여학생들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을 고통 속에 죽게 만든 자가 결국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니 아이러니군. 내가 유일하게 아쉬운 건 당신이 교수대에 매달려 목이 늘어지고, 시체가 밧줄 끝에서 휙휙 흔들릴 때 그 꼴을 직접 못 본다는 거다. 충격으로 방광과 장이 풀려 그 더러운 오물을 흘리며 무명 공동묘지에 던져져 썩어갈 테지. 영원히.”
“으으으으…” 폰 틸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대며 얼굴을 뒤틀었다. 분노에 눈이 멀어, 주위에 늘어선 헌병들의 총구도 보지 못한 채 피트에게 몸을 날렸다. 히스테리에 사로잡힌 광인의 몸짓이었다. 지오디노의 콜트가 번쩍 들어 올려져 그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폰 틸은 두 번째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바닥에 힘없이 구겨져 쓰러졌다. 지오디노는 그를 흘낏 보지도 않고 총을 집어넣었다.
“조금 심하게 후려친 것 같군.” 자킨서스가 나무라듯 말했다.
“해충은 쉽게 안 죽어.” 지오디노는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특히 저런 악독한 놈은.”
다리우스는 지오디노에게 총을 맞은 뒤 줄곧 말없이 서 있었다. 다른 남자라면 피투성이 손을 움켜쥐었겠지만, 다리우스는 무심히 팔을 축 늘어뜨린 채 피가 갑판 위로 뚝뚝 떨어지게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 공허한 표정은 피트에게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본 새끼 고릴라를 떠올리게 했다. 철창 속에 갇혀, 바깥에서 자신을 구경하는 낯선 인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흉측한 괴물. 피트는 제노의 헌병 다섯이 다리우스의 검은 눈 사이에 총을 겨누고 있는 사실에 내심 안도했다.
피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 자는 어떻게 되는 거지?”
“신속한 재판 후 총살.” 자킨서스가 대답했다.
“재판은 없다.” 제노가 끼어들었다. 목소리는 무거웠지만, 눈에는 슬픔이 어렸다. “헌병대는 배신자를 인정한 적이 없다. 다리우스 대위는 임무 수행 중 전사한 것이다.”
동굴이 순간 숨을 죽인 듯 고요해졌다. 피트, 자킨서스, 지오디노는 제노가 이미 과거형을 쓴 것에 서로 의아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다리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포도, 분노도 없는 체념뿐. 희망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조심스레, 마치 며칠째 잠들지 못한 사람처럼 느릿하게 잠수함에서 내려 부두 위로 올라와 제노 앞에 섰다. 고개를 숙인 채.
“오랜 세월 자네를 알았던 것 같네, 다리우스.” 제노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자네를 몰랐던 거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신만이 아실 거다. 안타깝군. 헌병대는 훌륭한 사내를 잃었어…” 제노는 말을 멈추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천천히, 거의 정성스러울 정도로 탄창을 빼내어 총알을 모두 꺼냈다. 단 한 발만 남기고 다시 탄창을 꽂았다. 그리고 총의 손잡이를 앞세워 다리우스에게 건넸다.
다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코 오지 않을 눈빛을 제노에게서 찾는 듯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총을 받아들고, 천천히 몸을 돌려 터널 쪽으로 무감각하게 걸어갔다.
“작별도, 후회도, ‘엿 먹어라’도 없군.” 지오디노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냥 터널로 걸어가서 스스로 머리에 총알 박겠다는 거냐. 놈이 도망칠 확률에 내기할 사람?”
“그의 삶은 배신자가 된 순간 끝났어.” 제노가 조용히 말했다. “그는 그때부터 알고 있었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어. 다섯 분간 신과 대화하며 영혼을 준비하겠지. 그리고 방아쇠를 당길 거야.”
지오디노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다리우스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제노의 단호한 말이 그의 의심을 산산조각 냈다. 지오디노는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어떤 인간이 삶을 그렇게도 담담히 놓아버릴 수 있는지를.
그는 피트를 돌아보았다. “시간이 없어. 건은 아마 과학자들이 없어졌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겠지.”
“그럴 만도 하지.” 피트의 귀에 나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해치에서 얼굴을 내밀며 능청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런 머리 좋은 과학자가 드문데.”
“젠장, 과학자가 아니라 광대군.” 지오디노가 신음했다. “과학이 이 꼴이라니.”
다리에 통증이 여전했지만, 피트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좋아, 지오디노. 네가 이 ‘천재들’을 다시 퍼스트 어템프트까지 무사히 데려가는 책임자다.”
“고마운 줄도 모르는군.” 지오디노가 또다시 신음했다.
“주는 게 받는 것보다 낫다.” 피트가 달래듯 말했다. “어서 가라. 잠수 장비는 바닥에서 다시 건져와야 할 테니까.”
그때 우드슨이 해치에서 기어 나와 피트 곁으로 다가왔다. “소령님, 제가 같이 남아 드리겠습니다. 자리에 눕히실 때까지요.”
“필요 없어.” 피트는 놀랍게도 우드슨의 무표정한 얼굴에 드러난 진심 어린 걱정에 약간 당황했다. “괜찮아. 자크가 날 군 병원으로 데려다줄 거야. 그렇지, 자크?”
“유감스럽지만.” 자킨서스가 웃었다. “브래디 비행장 군 병원뿐이네. 그게 총상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시설이지.”
들것이 도착했고, 피트는 조심스레 그 위에 실렸다. “그래도 일등석은 탔군.” 그는 앉아 있다가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잠깐, 중요한 걸 잊을 뻔했군. 스펜서는 어디 있지?”
“여기 있습니다, 소령님.” 붉은 수염의 해양생물학자가 우드슨 뒤에서 나왔다.
“건에게 안부 전해주고, 이 선물을 전해주게.”
스펜서는 피트의 다리를 보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알겠습니다.”
피트는 들것 가장자리에 팔꿈치를 걸쳤다. “바깥 동굴, 수심 20피트쯤 북쪽 벽 바닥에 작은 틈새들이 있어. 그중 하나는 바위로 덮여 있지. 그 안에 ‘티저’가 있어. 아직 못 빠져나왔다면 말이지.”
스펜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티저라구요? 정말입니까, 소령님?”
“내 눈이 틀릴 리 있나.” 피트가 농담처럼 말했다. “떨구지만 말게.”
“믿을 수가 없군. 그런 생물이 진짜로 존재한다니…” 스펜서는 감탄했다. “망치 끝으로는 다치게 할 수 없으니, 그물주머니가 있어야… 젠장, 그걸 안 챙겼는데.”
“티저를 잡는 방법은 하나뿐이지.” 피트가 웃었다. “지느러미를 붙잡는 거야.”
통증이 점점 멀어졌다. 다리는 이미 자기 것이 아닌 듯했고, 조명등은 하나로 번져 눈을 아프게 했다. 모든 게 느려지고, 목소리는 멀리서 들려왔다. 들것이 움직였다. 마치 물 속을 헤엄치는 것처럼 느리게. 피트는 마지막 힘을 짜내 고개를 들었다.
“자크, 마지막 부탁이네.” 피트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이었다. “그 여자의 진짜 이름이 뭐지?”
자킨서스가 눈빛으로 미소를 지었다. “에이미. 그녀의 이름은 에이미다.”
“에이미…” 피트가 되뇌었다. “에이미라는 여자는 처음이야.” 그는 들것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았다. 의식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기 직전, 미로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한 발의 총성이 마지막으로 그의 귀에 스쳤다.
기록
하늘은 끝없이 펼쳐진 눈부신 푸른 천장이었다. 여름 공기는 뜨겁고, 태양에서 쏟아지는 열기로 습기가 배어 나왔다. 눈부신 빛 속에 높고 하얀 빌딩들이 조각된 산처럼 서 있었고, 그 반사열은 검은 아스팔트 위에 흘러내렸다. 교통은 혼잡했고, 점심시간의 사무원들이 인도로 북적이며 뛰어다녔다.
피트는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와 시원한 냉방이 가득한 마약국 청사 로비로 절뚝이며 들어섰다.
홀아비로서, 워싱턴 D.C.의 장점 하나는 여자들이 넘쳐난다는 것이었다. 크기와 나이, 성격도 가지가지인 여자들이 메뚜기 떼처럼 수많은 정부 청사를 가득 채우며, 남자들에게는 마치 부잣집 아이가 사탕가게에 풀려난 듯한 호사를 제공해준다. 피트는 제일 매력적인 악동 같은 미소를 골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오는 세 명의 비서들에게 건넸다. 그들은 키득거리며 미소를 되돌려주었고, 엷은 눈길과 수줍은 눈길을 뒤섞어 던진 뒤, 힐을 울리며 로비를 지나가다 어깨너머로 다시 한 번 그를 힐끗 바라봤다.
잠시 후, 완벽한 ‘부상당한 전사’의 연기를 하며 피트는 지팡이에 의지해 절뚝거리며 8층에 내렸다. 현관실 한가운데서 열두 명의 타자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고, 여직원들의 스타킹 신은 다리가 쭉 늘어져 보였다.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피트는 천천히 걸어가, 풍만한 금발 여자의 책상 앞에 섰다. 작은 명패에는 ‘안내’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며 눈을 즐겼다.
“실례합니다.”
타자기 소리에 묻혀 그녀는 듣지 못했다.
“실례합니다.” 피트가 크게 말했다.
그제야 그녀가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죠?” 목소리는 차가웠고, 큰 헤이즐 눈빛에는 호감이라곤 없었다. 피트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터틀넥 스웨터에 초록색 스포츠 재킷, 그리고 주머니에 무심히 꽂아둔 손수건 차림이라면, 누가 봐도 워싱턴의 고위 관료로는 안 보였을 테니까.
“마약국 국장님을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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