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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아이슬란드—서릿발과 불꽃의 땅, 투박한 빙하와 속을 끓이는 화산의 섬. 용암층의 붉은빛, 구릉 툰드라의 초록, 잔잔한 호수의 푸른빛이 자정을 비추는 태양의 황금빛 아래 프리즘처럼 펼쳐져 있었다. 남쪽으론 난류인 걸프 스트림, 북쪽으론 차가운 극해에 접해 대서양에 둘러싸인 아이슬란드는, 까마귀가 직선으로 난다면 뉴욕과 모스크바의 정확히 중간에 놓여 있다. 이름이 암시하는 것만큼 차갑지 않은, 만화경 같은 풍경의 이상한 섬. 가장 추운 1월에도 평균 기온은 미국 뉴잉글랜드 해안과 큰 차이가 없다. 처음 보는 사람에겐, 아이슬란드는 분명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의 기현상처럼 보인다.

피트는 지평선 위로 톱니처럼 솟은 만년설 봉우리들이 자라나고, 율리시스 아래 반짝이는 물빛이 심해의 진한 남청색에서 연안 파도의 진한 녹색으로 바뀌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조종간을 살짝 수정했고, 헬리콥터는 직각으로 기수를 꺾어 바다에서 곧장 솟구친 가파른 현무암 절벽을 따라 평행 비행으로 매끈하게 들어갔다. 황량한 원형 만에 꼭 껴안기듯 자리한 작은 어촌 위를 스쳤다. 지붕들은 붉은 기와와 파스텔 초록이 바둑판처럼 뒤섞여 칠해져 있었다. 북극권 관문에 선 전초기지였다.

“몇 시지?” 얕은 잠에서 깨어난 헌뉴웰이 물었다.

“새벽 네 시 열 분.” 피트가 대답했다. “이 햇살만 보면 오후 네 시쯤으로 착각하겠어.” 헌뉴웰은 크게 하품을 하고 비좁은 조종석 안에서 허리를 펴 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지금쯤 폭신한 침대의 뽀얀 시트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갈 수만 있다면 오른팔이라도 내주겠네.”

“눈을 뜨고 버텨요. 금방 도착하니까.”

“레이캬비크까지 얼마나 남았나?”

“한 삼십 분.” 피트는 잠시 계기들을 눈으로 훑었다. “좀 더 일찍 북으로 꺾을 수도 있었지만, 해안을 구경하고 싶었어.”

“카타와바를 떠난 지 여섯 시간 사십오 분. 나쁘지 않은 속도군.”

“보조 연료탱크만 아니었으면 훨씬 더 줄였을 거야.”

“그게 없었으면 지금쯤 저 뒤 어딘가에서 해안까지 육백 킬로 가까이를 헤엄쳐야 할 판이지.”

피트가 웃었다. “언제든 해안경비대에 ‘메이데이’ 칠 수도 있잖아.”

“이륙할 때 코스키 함장의 심기를 봤잖나. 우리가 욕조에서 빠져 죽는 와중에 그가 마개를 쥐고 있어도, 굳이 손을 뻗어 줄 것 같진 않더군.”

“코스키가 날 어떻게 보든, 그가 원한다면 난 언제든 제독 선거에 표를 줄 거야. 내 기준으로 그는 빌어먹게 유능한 사나이야.”

“표현이 참 특이해.” 헌뉴웰이 건조하게 말했다. “화염방사기 얘기—그 추론만은 인정하네,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지. 하지만 그 사람에게 별로 알려 준 건 없지 않나.”

“우린 사실을, 아는 데까지만 말했어. 더 나가면 절반은 추측이었지. 우리가 빼먹은 ‘유일한’ 진짜 사실은, 피리에의 발견물이 무엇인지 하는 이름뿐이야.”

“지르코늄.” 헌뉴웰의 시선이 멀어졌다. “원자번호, 40.”

“난 지질학 수업을 간신히 통과했는데.” 피트가 웃었다. “지르코늄? 그게 어째서 대학살의 값어치가 되지?”

“정제된 지르코늄은 원자로 건설에 필수적이네. 방사선을 거의 흡수하지 않거든. 원자력 연구 시설이 있는 모든 나라가 트럭 단위로 확보할 수 있다면 눈에 흙 들어가도 놓치지 않겠지. 샌데커 제독은 확신하고 있어. 만약 피리에와 그의 과학자들이 정말로 방대한 지르코늄 광맥을 찾아냈다면, 바다 밑이라도 수면과 가까워 경제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곳일 거라고.”

피트는 조종석 버블 밖, 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짙은 울트라마린을 응시했다. 조그만 어선 한 척이 도리배를 사슬처럼 매달고 바다로 나아갔다. 색칠한 거울 위를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나아가는 작은 선체들. 그의 눈은 그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마음은 아래 차가운 물속에 덮여 있을 이국적인 원소에 가 있었다.

“엄청난 작업이군.” 엔진 배기음에 묻힐 만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해저에서 원광을 끌어올리는 문제는 산더미지.”

“그렇지만 극복 불가능하진 않아. 피리에 리미티드는 해저 채광 분야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거느리고 있지. 크리스찬 피리에는 원래 그런 식으로 제국을 쌓았어. 아프리카 연안에서 다이아몬드를 준설해서 말이야.” 헌뉴웰의 목소리는 꾸밈없는 존경처럼 들렸다. “열여덟 살 때였지. 낡은 그리스 화물선의 수병으로 일하다, 모잠비크 해안의 작은 항구 베이라에서 탈선했어. 오래 걸리지 않았지. 금광열에 사로잡히기까지 말일세. 그때 호황이었지만, 큰 신디케이트들이 알짜배기 광구는 다 틀어쥐고 있었어. 거기서 피리에가 두각을 나타냈지—예리하고 창의적인 머리로.

‘육지의 광맥이 해안에서 불과 두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발견된다면, 대륙붕의 바닷속에도 없으란 법이 없지 않은가?’ 그는 그렇게 판단했어. 그래서 다섯 달 동안 매일 인도양의 따뜻한 바다로 잠수했지. 결국 유망해 보이는 해저 구간을 찾아냈어. 문제는 자금이었지. 준설 장비를 사려면 돈이 필요했거든. 피리에는 빈몸으로 아프리카에 왔어. 그 지역의 백인 자본가들에게 손 벌리는 건 시간낭비였지. 그들은 다 가져가고 그한텐 아무것도 안 남겨줬을 테니까.”

“그래도 ‘무(無)의 99퍼센트’보단 ‘유(有)의 1퍼센트’가 낫다는데.” 피트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크리스찬 피리에는 아니었지.” 헌뉴웰이 발끈했다. “그에겐 진짜 아이슬란드인의 원칙이 있었어—이익은 나누되, 넘기진 않는다. 그는 모잠비크의 흑인들에게 갔고 자기들 신디케이트를 만들자고 설득했지. 물론 그 신디케이트의 사장 겸 총지배인은 크리스찬 피리에였고. 흑인들이 바지와 준설 장비 구입 자금을 모으자, 피리에는 하루 스무 시간을 일했어. IBM 컴퓨터처럼 돌아갈 때까지. 다섯 달의 잠수는 보답했지. 준설선은 거의 곧바로 고품질 다이아몬드를 퍼올리기 시작했어. 불과 이 년 만에 피리에는 사십만 금액이 아니라 사천만 달러짜리 사내가 되었지.”

피트는 하늘에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뜬 것을 보았다. 율리시스보다 수천 피트 높고 앞쪽. “피리에 연대기에 퍽 밝으신데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헌뉴웰이 말을 이었다. “피리에는 한 프로젝트에 몇 년 이상 머물지 않았네. 대부분의 인간이라면 밑바닥까지 짜냈겠지. 크리스찬은 달랐어. 상상을 넘어선 재산을 일군 뒤, 그는 그 사업 전부를 투자자들에게 넘겨줬지.”

“그냥 다 줘버렸다고?”

“권총, 화약, 그리고 많이들 말하는 탄피통까지 몽땅. 자기 지분 전부를 원주민 주주들에게 배분하고, 본인 없어도 원활히 돌아갈 흑인 경영진을 세우고, 다음 배를 타고 아이슬란드로 돌아갔지. 아프리카에서 높은 존경을 받는 몇 안 되는 백인 이름을 꼽으라면, 크리스찬 피리에가 맨 위에 있을 걸세.”

피트가 북쪽 하늘의 외로운 검은 점이 매끈한 제트기로 바뀌어 가는 것을 지켜봤다.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눈부신 푸른빛을 찌푸리고 응시했다. 낯선 기체는 영국제 최신 경량 비즈니스 제트—빠르고 신뢰성이 높으며, 연료 보급 없이 몇 시간 만에 승객 열두 명을 지구 반 바퀴 실어 나를 수 있는—였다. 그 낯선 기체가 검은 칠을 코끝에서 꼬리까지 칠한 기종이라는 걸 알아채기도 전에, 제트기는 반대 방향으로 시야를 스쳐 지나갔다.

“그다음엔 뭘 했지?” 피트가 물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밴쿠버섬에서 망간을 캐고, 페루에선 연안 유전을 뚫었지. 몇 가지만 예로 들면 말이야. 합병? 자회사? 그런 건 없어. 크리스찬은 오직 한 길—해저 지질 자원의 개발—만으로 거대한 ‘피리에 리미티드’를 만들었지.”

“가족은?”

“없었어. 부모는 어릴 때 화재로 돌아가셨지. 남은 건 쌍둥이 누이 하나뿐. 사실 누이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어. 피리에는 그 여동생을 스위스의 피니싱 스쿨에 보냈고, 소문에 따르면 나중에 뉴기니 어딘가에서 선교사가 되었다더군. 오빠의 재산엔 관심이 없었—” 헌뉴웰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는 옆으로 홱 젖히듯 고개를 돌려 피트를 바라보았다. 눈은 멍하니 커졌고, 입이 놀라 벌어졌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피트가 그 노인이 앞으로 축 늘어져 의식을 잃는 것을 겨우 볼 시간이나 있었을까, 그 순간 조종석을 감싸던 플렉시글라스 버블이 산산이 갈라져 천 개의 날카로운 파편으로 쏟아져 나갔다. 피트는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팔로 얼굴을 가렸다. 눈앞을 후려치는 차가운 공기 장벽 속에서 그는 잠시 조종을 잃었다. 공력(空力)이 극단적으로 바뀌면서, 율리시스는 거의 꼬리로 서듯 기수를 확 들이켜며 치솟았고, 피트와 의식을 잃은 헌뉴웰은 좌석 등받이에 난폭하게 내동댕이쳐졌다.

그때 피트는 좌석 뒤쪽 동체에 기관총 탄이 박혀 들이치는 소리를 알아차렸다. 방금 전의 통제 불능 기동이 잠깐이나마 그들의 목숨을 구한 셈이었다. 검은 제트기의 사수는 허를 찔려 탄도를 조정하는 데 늦었고, 대부분의 탄을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느린 체공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실속에 빠질 제트기는 속도를 유지하려면 헬리콥터를 스쳐 지나 앞으로 나가야 했고, 급선회를 그려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놈들은 동쪽으로 급선회했다가 남쪽, 다시 서쪽으로 원을 그려 뒤에서 들이댄 거야.’ 피트는 두 눈을 거의 찢어지게 하며 제어간을 붙들고 헬리콥터를 수평으로 세우려 몸부림치면서 번개처럼 꿰뚫었다. 시속 이백 마일짜리 기류가 눈을 찢으며 들이치니, 그저 스로틀을 죽여 보이지 않는 힘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는 수밖에 없었다. 몸을 좌석에 짓이겨 박는 그 압력을.

검은 제트기가 다시 스쳐 갔다. 하지만 이번엔 피트가 대비하고 있었다. 그는 율리시스를 번쩍 수평 정지시키며, 로터 블레이드가 미친 듯 공기를 후려쳐 작은 기체를 곧장 수직 상승으로 띄웠다.

기만은 통했다. 제트기 조종사는 피트 아래를 가르며 지나갈 수밖에 없었고, 기관총을 조준각에 올리지 못했다. 피트는 두 번을 더 공격을 따돌렸지만,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상대는 급속히 그의 요령을 학습하고 있었다.

피트는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 도망은 불가능했다. 싸움은 애초부터 일방적이었다. 스코어는 7대 0, 원정팀의 압도적 리드. 남은 시간은 4쿼터 몇 초. 피트는 음울하게 웃었다. 그는 헬기를 수면 스무 피트 위로 낮추었다. 승리는 가망이 없었다. 다만 비기기 위한 아주 미세한, 손끝만 한 가능성이 있을 뿐. 그는 마지막 진입을 노리는 먹칠한 기체를 노려보았다. 이제 남은 건, 얇은 알루미늄 껍질을 종잇장처럼 꿰뚫는 강철 피복탄의 미친 울림뿐. 피트는 작고 무방비한 기체를 안정시키고 맴돌았다. 콘크리트 새처럼, 제트는 곧장 그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이번엔 사수도 침착했다. 화물문을 열고 엎드린 자세로, 꾸준한 탄막을 깔아 좁혀지는 거리 자체가 헬기의 진로 위로 탄을 끌어들이게 만들었다. 죽음의 포화는 이제 겨우 삼십 야드. 피트는 충격에 대비해 온몸을 괴었고, 율리시스를 곧장 ‘위로’ 던졌다. 공격해 내려오는 기체 쪽으로. 헬리콥터의 로터 블레이드가 제트기의 수평안정판을 가차 없이 찍어 부수며 가르자마자, 피트는 반사적으로 점화 스위치를 꺼 버렸다. 로터 끌림이 사라진 터빈이 비명처럼 과회전하지 않게. 금속이 찢기던 절규가 뚝 끊겼고, 그의 귀에 남은 건 바람이 휘파람처럼 울부짖는 소리뿐이었다.

피트는 바다로 꼬꾸라지는 낯선 제트기를 흘낏 보았다. 기수부터 바다에 처박히며, 꼬리 부분은 부러진 팔처럼 매달린 채. 피트와 의식 잃은 헌뉴웰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작 할 수 있는 건 칠십 피트 가까운 고도에서, 망가진 헬리콥터가 차가운 대서양으로 바위처럼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일뿐.

충돌은 피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끔찍했다. 율리시스는 옆으로 나자빠진 채 아이슬란드 파도 속 여섯 피트 수심으로 곤두박질쳤다. 해안까지는 불과 축구장 하나 거리. 피트의 머리는 옆으로 홱 꺾여 문틀에 스치듯 부딪혔고, 그는 순식간에 암흑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다행히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수가 그를 억지로 의식의 가장자리로 끌어올렸다. 구토의 물결이 밀려왔다. ‘빌어먹을, 이대로 놔버리고 끝까지 가 버릴까’ 하는 유혹이 한끝 차이로 목덜미를 핥았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피트는 안전벨트와 어깨 하네스를 풀었다. 파도마루가 헬리콥터를 덮치기 전, 숨 한 모금 들이켠 다음 잽싸게 헌뉴웰의 버클을 풀고 그의 머리를 소용돌이치는 물 위로 추켜올렸다. 바로 그때, 피트는 발을 헛디뎠고, 부서지는 파도 한 줄기가 그를 율리시스에서 떼어내 바닷가로 내던졌다. 그래도 헌뉴웰의 코트 칼라만은 죽을힘으로 움켜쥔 채였다. 그는 구르는 물의 무게에 맞서며 해변 쪽으로 밀려갔다. 고르지 못한 바닥의 자갈과 바위를 따라 몸이 통째로 말려 들어가며.

물에 빠져 죽는 기분이 어떤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면, 이제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얼음장 물은 피부 구석구석을 백만 마리 벌처럼 쏘아댔다. 귓속은 팍팍 막힌 채 터지지 않았고, 머리는 커다란 망치로 내려친 듯 욱신거렸다. 콧속으로 물이 들이치며 전두동을 칼로 찌르듯 쑤셨고, 폐의 여린 막은 질산에 담근 듯 타들어 갔다. 마침내 무릎을 자갈밭에 세차게 부딪치고서야,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머리가 터지듯 하면서도, 순도 높은 아이슬란드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만큼은 감사했다. ‘자살할 일이 있다면, 물에 빠져 죽는 방법만은 절대 택하지 않겠다.’ 그는 속으로 맹세했다.

그는 몽롱한 몸으로 몽돌이 깔린 해변을 벗어나며, 마치 취한 자가 취한 자를 부축하듯 헌뉴웰을 반쯤 메고, 반쯤 끌었다. 물가 몇 걸음 너머, 피트는 짐을 살포시 내려놓고 박사의 맥과 호흡을 확인했다. 둘 다 빠르긴 했지만 규칙적이었다.

그때 헌뉴웰의 왼팔이 눈에 들어왔다. 기관총 탄에 팔꿈치가 처참히 으깨져 있었다. 피트는 얼어붙은 손으로 재빨리 셔츠를 벗어 소매를 찢어 내고, 피를 막기 위해 상처에 꽉 동여맸다. 조직 손상은 심했지만, 동맥 분출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동적으로 지혈대를 포기하고 직접 압박을 선택했다. 이어 헌뉴웰을 커다란 바위에 기대 앉힌 다음, 급조한 슬링으로 팔을 걸고 상처를 높여 출혈을 줄였다.

더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피트는 자갈의 울퉁불퉁한 양탄자에 몸을 뉘었다. 몸 구석구석의 달갑지 않은 통증과 역겨움의 파도가 온몸을 쓸고 지나가게 내버려두었다. 허용되는 한도만큼 근육을 풀며, 구름이 떠다니는 북극 하늘의 장관을 눈꺼풀로 가렸다.

깊은 무의식이 몇 시간은 잡아 두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의 뇌 속 어딘가 먼 경보가 울렸다. 자극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듯, 눈을 감은 지 스무 분밖에 지나지 않아 그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하늘과 구름은 그대로였지만, 그 앞에 ‘무언가’가 서 있었다. 초점이 맞는 데 1초가 걸렸다. 아이 다섯이 그를 에워싸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엔 두려움이 없었다. 그저 피트와 헌뉴웰을 내려다볼 뿐.

피트는 팔꿈치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억지로—쉽지 않았지만—미소를 지었다. “좋은 아침이야, 얘들아. 조금 일찍 일어났구나?”

마치 큐가 떨어진 듯, 어린아이들이 맏아이인 소년을 바라봤다. 그는 몇 초 머뭇거리며 말을 고르고 나서 입을 열었다. “저와 동생들은 절벽 위 초원에서 아버지의 소를 몰고 있었어요. 우리는 당신들의—” 그는 잠깐 멈췄다. 얼굴이 텅 빈 표정.

“헬리콥터?” 피트가 말끝을 이어줬다.

“네, 맞아요.” 소년의 얼굴이 환해졌다. “헬리콥터. 우리는 당신들의 헬리콥터가 바다에 누워 있는 걸 보았어요.” 완벽한 북구인의 피부가 옅게 상기됐다. “제 영어가 서툴러서 부끄럽습니다.”

“아니야.” 피트가 낮게 말했다. “부끄러운 건 내가 해야지. 넌 옥스퍼드 교수처럼 영어를 하는데, 난 아이슬란드어로 두 마디도 못 하거든.”

칭찬에 소년은 활짝 웃었다. 그는 피트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도록 손을 내밀어 도왔다. “다치셨어요, 선생님. 머리에서 피가 납니다.”

“난 괜찮아. 정말 위중한 건 내 친구야. 가능한 빨리 의사에게 데려가야 해.”

“우리가 당신들을 발견하자마자, 제 여동생을 보내 아버지를 부르러 갔어요. 곧 트럭을 가지고 오실 겁니다.”

바로 그때, 헌뉴웰이 낮게 신음을 냈다. 피트는 허리를 굽혀 그의 대머리 머리를 받쳐 들었다. 노인은 의식이 돌아왔다. 피트의 얼굴을 잠깐 스쳐 보더니,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숨이 가빴다. 말을 하려 애썼지만, 목에서 걸렸다. 그의 눈엔 이상한 평안이 어려 있었다. 그는 피트의 손을 꽉 쥐고 애써 속삭였다. “하느님이… 그대를—” 그러고는 미세하게 몸이 떨리며 작은 숨을 토했다.

윌리엄 헌뉴웰 박사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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