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에 글로 씌어진다고, 아니 모니터상에 활자로 박힌다고 모두 같은 글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서류와 책은 아주 다른 계통에 속하는 글이어서, 그것을 쓰는 데 아주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나는 논문이나 책을 쓰는 데는 매우 숙련되어 있어서, 글 한편 쓰는 것은 별로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구계획서나 보고서 같은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에는, 무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미숙해서 너무도 고생을 한다. 반면 학교나 관청의 관료들이라면 정반대일 것이다. 서류나 문서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항목에 동일한 내용을 써넣을 것을 요구한다. 갖추어야 할 서류도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어서 하나라도 빠뜨리면 내용이 아무리 훌륭한 거라도 영락없이 퇴짜다. 반면 논문이나 책은 남과 동일한 내용..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를 가리킬 때는 흔히 ‘포디즘’이라는 말을 쓴다. 포드주의는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과 결합하여 대량생산 시대의 대표적인 시스템으로 자리잡는다. 과학적 관리법의 핵심 내용은 노동자의 동작을 표준화하고 기준점에 근거하여 성과급을 차등 지급한다는 것이다. 생산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활동을 단순한 단위로 쪼개고, 노동자는 그것을 몸으로 행하기만 하면 되며, 얼마나 많이 했느냐에 따라 잘했다 못했다를 따지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생각은 경영자가 하고 노동자는 몸만 쓰게 만든다.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이 성공하려면 일관 작업에 적합한 노동자 유형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이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람시의 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로운 형태의 문명과 새로운 형태의 생산, 새로운 형태의 ..
아파트 단지안에서 쓰레기 발효시켜 퇴비로 만든다면‥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 엿장수의 가위치는 소리가 들려오면 아이들은 집에 모아두었던 빈병이나 종이 상자, 찢어진 고무신, 찌그러진 양은냄비 등을 들고 와 엿과 바꿔 먹곤 했다. 마당 한켠에는 음식물 쓰레기나 덤불 등을 모아 퇴비화해 농사에 이용하고, 수명을 다한 물건들은 따로 모아두었다가 다른 물건과 바꿔 재활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많은 물건들이 목적없이 섞여 있으면 ‘쓰레기’가 되어 소각이나 매립을 해야 하지만 분리수거가 되면 쉽게 ‘원료’로 이용되어 우리 생활에 요긴한 용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요즘 한 가정의 연간 배출 쓰레기양은 4인 기준으로 1.2t이 넘는다고 한다. 이 가운데 약 60%..
자연소재 단열재로 건강한 집을 짓자 한참 언론을 통해 ‘새집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소개되면서 일반인에게까지 친숙하게 되었다. 새집으로 이사 간 이후로 원인 모를 두통과 구토를 경험한 사람들도 ‘아, 그것이 새집증후군이었구나’ 싶을 게다. 그 원인은 건물 마감재와 건축자재 등에서 배출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독성이다.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건축재료 중 단열재로 쓰이는 것은 화학제품이 대부분이다. 인체에 유해하고 버릴 때 자연으로 쉽게 돌아갈 수 없는 재료들인 것이다. 전에는 건물 전체를 난방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난방을 하다 보니 단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나 요즘은 대부분 건물 전체를 냉난방하기 위해 단열재를 많이 쓰게 된다. 그러다 보니 더욱 화학재료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
영하 10도 한겨울 목욕하고 나와 창문에 기댔는데… 중세 유럽의 유명한 성당이나 건축물을 보면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판유리가 생산되기 시작했던 산업화 이전 시기에는 창문 소재로 작은 조각유리를 이어붙여 만들었던 것이다. 그만큼 유리는 귀했고 가공과정도 세밀했기 때문에 유리로 만든 창문이 있는 집은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 시대에 이사를 갈 때는 유리창을 떼어 갔다고 하니 그 만큼 귀한 소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주로 창호지를 이용하였는데 옛날 건물이 춥고 에너지 소비가 많았던 것은 창문으로의 열손실이 많았기 때문이다. 건물에서의 열손실은 창문이 차지하는 면적과 창문의 성능에 따라 차이가 크며, 공동주택의 경우 일반적으로 창문을 통해서 빠져나가는 ..
태양전지판 지붕뿐 아니라 벽에도 붙인다 한낮의 나른함이 싫지 않은 요즘 벚꽃이 만발한 봄 풍경을 보면 태양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낀다. 모든 생명체의 근원인 태양은 밝은 빛으로, 따스함으로 그동안 잠들어 있던 생물을 일깨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다. 요즘처럼 환경과 더불어 에너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태양을 이용한 대체에너지다. 대체에너지원으로서, 청정에너지로서 태양만큼 전세계적으로 유용할 수 있는 것은 없는 듯하다. 태양광전지는 헨리 베크렐이라는 물리학자가 규사를 포함하는 물질에 빛이 비추면 전기가 발생한다는 데 착안해 발명했다. 식물이 광합성을 하듯이 인공적으로 빛에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혁명적 발견이었다. 현재 지구상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는 평방미터당 약 342W로 이 가운데 ..
정화조 대신 정화연못을…조경시설로도 가능 예전 전통 마을에는 하수관이 없었다. 대신 마을을 관통하거나 돌아서 흘러 나가는 냇물이 있었고, 냇가에서는 낮 동안 동네 어린이들이 멱을 감고 밤에는 아낙네들이 목욕을 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각 집에서 나오는 생활하수를 집 근처에서 정화시킬 수 있는 텃밭이나 미나리가 심겨 있는 도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의 수용력 안에 사는 삶의 형태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겠지만 자연이 갖고 있는 정화능력을 생활 속에서 적용하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는 물이 깨끗하다고 해서 시골마을 냇가에서 선뜻 멱을 감기는 어려울 듯 싶다. 이는 각 집 정화조를 거쳐간 하수가 하천으로 직접 흘러들어 오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집마다 또는 마을 안에 정화연못을 설치한..
겨울에 자른 목재를 써라 건축을 하는 나로서는 나뭇결이 살아 있는 고색창연한 옛 건축물을 만나면 마치 오래 된 연인을 만난 듯 반갑다. 더욱이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로 반들반들해진 나무를 쓰다듬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인지 건축재료로도 목재를 선호하는 편이다. 목재는 인간과 같은 유기체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사람과 동일한 생체리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돌이나 철과 같은 차가운 느낌의 재료보다 자연적인 나뭇결이 살아있는 목재를 선호하고 신체도 다른 재료들과는 달리 목재에 대하여 좋은 감각을 느낀다. 그러나 언제부터 나무는 콘크리트와 철에 밀려 건축재료로서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지난 1960~70년대 헐벗은 산을 녹화하는 데 주력한 나머지 나무를 벤다는 것..
돌아온 태양열 주택 두마리 토끼를 잡아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태양을 생명의 근원으로 하고 있다. 태양광선을 받는 모든 물체는 근본적으로 열에너지를 흡수하여 자신의 체열로 바꾸었다가 다시 방사한다. 특히 해바라기는 자동적으로 태양을 향하다가 태양이 비치지 않으면 폐쇄하는 자연형태의 집열기이다. 인간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무한한 에너지원인 태양을 누가 더 빨리 내것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경제와 환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확실하게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릴 적 동네에 한 채 밖에 없었던 태양열주택. 너무나도 생소하고 신기하기만 했던 그 집에 대한 기억은 훗날 그 때가 오일쇼크로 인해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던 때임을 알았다. 한 때 유행처럼 지어졌던 태양열 주택은 그 후 기름가격이 다시 하락하..
2004-05-23 00:23:39 어린 시절 우리 집 주변엔 야트막한 담장너머로 붉은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던 것을 기억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짙푸른 잎사이로 손가락 굵기만한 벌레들이 기어다니고 그 사이로 바쁘게 왔다갔다 하며 지저귀던 새소리 또한 기억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건물들이 그 자리를 메우기 시작하면서 나무도 새도 벌레도 자취를 감추고 그곳엔 콘크리트 벽과 주차장들이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일렬로 늘어선 많은 콘크리트벽들은 그저 무표정한 색깔을 뒤집어 쓴 채 도시를 채우고 있다. 건축물에서 일반적으로 북쪽으로 난 벽을 제외한 다른 벽들은 계절적인 일광 리듬 속에서 햇볕을 받고 데워진다. 특히 남쪽 벽면은 동서벽면과 달리 태양열을 가장 많이 받게 되며 겨울철에 수평면의 3~4배 정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