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1젊은 금발의 승무원이 밧줄을 풀자, 26피트 길이의 양끝이 뾰족한 고래잡이 배는 브래디 비행장 근처 임시 부두에서 천천히 밀려나 파란 물결 위로 ‘퍼스트 어템프트(First Attempt)’를 향해 나아갔다. 네 기통 부다(Buda) 디젤 엔진은 분당 여덟 노트의 속도로 튼튼한 배를 밀어냈고, 익숙한 디젤 연료 냄새가 갑판 위로 퍼져갔다. 아침 아홉 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태양은 이미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약간의 바람조차 더위를 식혀주지 못했다.피트는 서서 해안이 점점 멀어지는 걸 바라보다가, 부두가 파도선 위에 더러운 점처럼 보이게 되자 190파운드의 몸을 배 선미를 두른 튜브 모양 난간 위로 끌어올렸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물보라를 일으키는 배의 꼬리물결 위에 걸터앉았다...
2 - 4“그래요, 지난달 런던에서 새 차로 사서 르아브르에서부터 직접 몰고 왔어요.”“삼촌 댁에 얼마나 계실 건가요?”“세 달 휴가를 냈으니 앞으로 최소한 여섯 주는 더 있을 거예요. 그다음엔 배를 타고 돌아갈 거예요. 대륙을 횡단한 드라이브는 재미있었지만 너무 피곤했거든요.”피트가 차 문을 열어주자 그녀는 운전석에 미끄러지듯 앉았다. 그녀는 잠시 앞좌석 밑을 더듬더니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그중 하나를 시동구멍에 꽂고 돌리자 엔진이 켜지며 배기구가 한 번 기침하듯 뱉더니 날카로운 으르렁거림을 토해냈다.피트는 먼지 낀 차문에 팔을 괴고 그녀에게 가볍게 입을 맞췄다.“당신 삼촌이 산탄총 들고 날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죠?”“걱정 마세요, 아마 말로만 당신 팔이 빠지게 하실 거예요. 삼촌은 공군 출신들을..
2 - 3피트는 그녀의 슬픈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다.“얼마 전 일인가요?” 그가 단순히 물었다.“벌써 팔 년 반이 되었어요.” 그녀가 속삭이듯 대답했다.피트는 멍해졌다. 곧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낭비라고 그는 생각했다. 거의 아홉 해 동안 죽은 남자를 두고 슬퍼하다니, 아름다운 여자로서는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낭비인가. 곱씹을수록 화가 났다. 그녀의 눈에 회상의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자 역겨움마저 느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그녀의 눈이 번쩍 뜨이고 온몸이 총탄에 맞은 듯 경직되었다.“왜 저를 때리셨죠?”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필요했으니까. 아주 절실히 필요했어.” 피트가 날카롭게 내뱉었다. “당신이 붙들고 있는 그 불씨는 낡아빠진 외투만큼이..
2 - 2"2등병 무디입니다, 상사님.""나는 피트 소령일세."헌병의 얼굴이 멍해졌다. "아, 죄송합니다, 소령님. 장교인 줄 몰랐습니다. NUMA 소속 민간인인 줄 알았습니다. 이번에는 그냥 보내드리겠습니다, 소령님, 하지만 기지 통행증을 받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아침 식사 후에 가장 먼저 처리하겠습니다.""제 교대조는 0800에 나옵니다.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으시더라도, 문제없이 들여보내 주라고 전달해 놓겠습니다.""고마워, 무디. 나중에 보게 될지도 모르겠군." 피트는 손을 흔들고 몸을 돌려 해변을 향해 길을 걸어갔다.피트는 좁은 포장도로의 오른쪽으로 걸었고, 약 1마일 만에 크고 험준한 바위들이 옆에 있는 작은 만에 도착했다. 달빛이 길을 비춰주었고, 그는 발이 모래사장을 부드럽게 밟을 때까지 ..

2 - 1피트가 잠에서 깼을 때, 여전히 어두웠다. 그가 얼마나 잤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잠시 눈을 붙인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몇 시간 동안 깊은 잠에 빠졌을 수도 있다. 그는 알지 못했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 더 편안한 자세를 찾으려 뒤척이자 공군 간이침대의 금속 스프링이 삐걱거렸다. 하지만 깊은 잠의 편안함은 그를 피해갔다. 그의 의식은 희미하게 이유를 분석하려 했다. '에어컨의 꾸준한 웅웅거리는 소리 때문인가?'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는 비행기 엔진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잠드는 데 익숙했으므로 그것 때문일 리는 없었다. '어쩌면 바퀴벌레들 때문일지도.' 하느님도 알다시피 타소스는 바퀴벌레로 가득했다. '아니, 다른 무언가야.' 그러고는 그는 알았다. 그 답이 그의 몽롱한 뇌의 안개를..

1 - 2더크 피트는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그의 그을린 얼굴은 남성미 그 자체였다. 그는 영화배우처럼 잘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여자들은 그에게 좀처럼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의 존재 앞에서 여자들은 어쩐지 위압감을 느끼고 불편해했다. 여성의 교활한 속임수나 시시한 시시덕거림에 굴복하지 않는 남자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자들과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의 부드러운 몸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지만, 보통의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 필요한 속임수, 거짓말, 그리고 그 외의 모든 터무니없는 작은 술책들은 싫어했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를 침대로 데려가는 수완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전문가였다. 하지만 그는 억지로 게임을 해야만 했다. 그는 솔직하고 정직한 여성을 선호했지만,..
1 - 1더크 피트 소령은 짙은 검은 머리에 헤드셋을 고쳐 쓰고 라디오 채널 손잡이를 천천히 돌려 수신 상태를 맞추려 했다. 그는 몇 분 동안 귀를 기울였고, 짙은 바다색 녹색 눈에는 약간의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그의 그을린 가죽 피부에는 주름이 여러 겹 새겨지며 미간을 찌푸렸다.지직거리는 수신기에서 들려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이해는 되었다. 단지 믿을 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는 PBY 카탈리나 쌍발 엔진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뚫고 다시 한번, 열심히 들었다. 그가 들은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분명 강해져야 할 터였다. 볼륨은 최대로 올려져 있었고, 브래디 기지는 겨우 30마일 떨어져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관제사의 목소리는 피트의 고막을 찢을 듯해야 했다. '관제사는 전력을..

프롤로그찜통같이 더운 일요일이었다. 브래디 공군기지 관제탑에서 관제사는 피다 만 담배에 불을 붙이고, 휴대용 에어컨 위에 양말 신은 발을 올린 채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아주 따분해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일요일에는 항공기 통행이 뜸했다.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지중해 작전지구에서는 특히나 국제적 정치 문제가 불거지지 않은 이상 군용기 조종사와 항공기들이 일요일에 나는 일은 드물었다. 가끔 비행기가 착륙하거나 이륙하기도 했지만, 대개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이동하는 VIP의 급유를 위한 짧은 경유지일 뿐이었다.관제사는 근무를 시작한 이래로 열 번째로 커다란 비행 일정 칠판을 훑어보았다. 출발 항공편은 없었고, 예정된 도착 시간은 ..